사법권의 독립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는 것이다. 재판의 독립을 보장하려면 균형 잡힌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법관이 돼야 한다. 법관의 임명에 시민참여나 대의기관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그리고 “편견과 독선, 비뚤어진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힌 양심”이 법관의 양심이 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배심제나 참심제와 같은 시민참여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편집자주
연재순서
1. 양성평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존중
2. 진정한 대통령제를 위하여
3. 관료사법의 혁신
4. 시민참여 헌법을 만들자.
법대 위에서 법복을 입은 판사가 재판을 진행하고 판결을 선고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끔 이런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판사의 권력은 어디로부터 나온 것일까. 젊은 판사가 민사법정에서 나이 많은 시민에게 반말을 쓰는 것을 보았을 때,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에서 사회에 전혀 위험을 끼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피고인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는 것을 보았을 때 떠오른 의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에 따르면, 그 판사가 행사하는 권력도 분명히 국민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국민이 권력을 행사할 사람을 선출하거나, 최소한 그 권력의 행사에 참여하거나 그 권력을 통제할 수 있음을 뜻한다. 그래서 행정권을 행사하는 대통령은 5년에 한번씩 선출되고, 입법권을 행사하는 국회의원은 4년에 한번 선거를 통해 심판 받는다. 그런데 한국의 법관은 국민이 선출한 것도 아닌데, 3권 중의 하나인 사법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들이 행사하는 사법권은 어디에 민주적 정당성을 두고 있는가?
많은 나라들이 법관을 선거로 뽑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미국의 일부 주가 법관을 선출하고 있고, 한국의 헌법도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선거로 뽑도록 한 때가 있었다. 4·19혁명 직후인 1960년 6월 15일 개정된 제3차 개정헌법에서는 법조인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이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선출하도록 규정했다. 법원의 관료화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관료화된 법원조직에 위협받는 재판의 독립
그러나 사법권을 행사하는 법관을 선거로 선출하는 것은 부작용이 많다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만약 그런 이유로 법관을 선거에 의해 선출하지 못한다면, 최소한 시민의 참여와 다른 기관에 의한 감시와 견제는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법권이 법률전문가 집단에 의해 폐쇄적이고 독단적으로 행사되고, 사법권에 의해 소수자의 인권이 짓밟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법권이 그렇게 행사된다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배심제, 참심제와 같은 시민참여제도의 도입과, 적어도 최고법원의 구성에 있어서는 법원 스스로 임명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시민참여제도가 보장되어 있지 않다. 대법관 임명권도 사실상 대법원장이 행사한다. 헌법상 대법관 임명권자는 대통령이고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되어 있지만, 대법원장에게 제청권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대법원장이 제청을 한 사람만 임명할 수 있고, 국회도 소극적으로 동의여부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난 2월 대법관 1명을 새로 임명할 때에도 개혁적인 외부인사를 임명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지만, 부질없는 것이었다. 대법원장이 현직 지방법원장을 대법관으로 제청해 버렸기 때문이다.
한국의 법관들은 자신들이 행사하는 사법권이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국민에 의해 감시되고 통제되어야 하며,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사법연수원을 마치면 판사가 될 수 있고, 판사가 된 뒤에도 사법연수원 성적과 서열에 따라 승진도 할 수 있고, 대법관까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에서 한국의 법원처럼 폐쇄적이고 관료적으로 운영되면서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또 있을까? 필자가 알기로 선진국가에서 이런 예는 없는 것 같다. 미국은 배심재판을 받을 권리가 헌법에 의해 보장되어 있다. 연방대법원의 대법관은 상원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하며, 대법원장이 대법관을 제청하는 제도는 없다. 물론 대법관이 아닌 법관도 변호사 경력자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하며, 한국처럼 시험만 잘 봤다고 해서 법관이 될 수는 없다.
세계 각 국 법원의 관료화 정도를 평가한다면, 아마도 한국이 단연 상위권에 속할 것이다. 철저한 위계질서와 승진제도, 법관의 신분 불안정, 합의재판의 유명무실화 등 한국의 법원은 행정부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관료화된 조직이다. 관료화가 재판의 독립을 위협하고, 국민의 사법 불신을 부채질하고 있다. 대법관을 제외한 한국의 법관은 10년으로 임기가 제한되어 있고 재임용이 되지 않으면 퇴직해야 하는 처지다. 이러한 신분상의 불안정은 소신 있는 판결과 조직 내에서의 건전한 비판을 어렵게 만든다. 실제로 법원 내에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판사들이 재임용에서 탈락한 사례들이 있어 왔다.
길을 걸을 때도 부장판사가 앞에 서고 배석판사들이 좌우로 따라간다는 한국법원의 합의부는 말이 합의부이지, ‘토론에 의한 합의’라는 당초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승진에서 탈락하면 법관들이 무더기로 퇴직하고, 퇴직 후에는 법관 출신이라는 것을 이용해 사건을 수임하는 ‘전관예우’는 최악의 관료조직이 보일 수 있는 행태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는 마비된 윤리의식이 있을 뿐이다. 이런 관료집단에게 사법권을 맡기고 있는 국민들이 어리석어 보일 정도이다.
사법 시민참여 제도 절실
한국의 보수언론이나 법원은 사법권의 독립에 대해 큰 오해를 갖고 있다. 사법권이 독립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법권은 외부로부터의 감시나 견제를 전혀 받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장에게 법관 인사권을 전적으로 주는 것으로 사법권 독립을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사법권 독립의 요체는 재판의 독립이다. 즉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는 것이 사법권의 독립인 것이다. 재판의 독립이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에 균형 잡힌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법관이 되지 않으면 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 법관의 임명에 있어 시민들의 참여나 대의기관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그리고 ‘편견과 독선, 비뚤어진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힌 양심’이 법관의 양심이 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 배심제나 참심제와 같은 시민참여 제도가 필요한 것이다.
지금 재판의 독립은 법원 외부로부터의 감시나 비판, 견제에 의해 침해되는 것이 아니다. 외부의 감시와 비판, 견제는 오히려 재판에 대한 부당한 개입과 통제를 어렵게 하여 재판의 독립을 촉진시킨다. 재판의 독립을 위협하는 것은 오히려 관료화된 법원조직이다. 법원조직이 폐쇄적으로 되고 위계구조가 정착되면서 재판의 독립이 내부에서부터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관료사법의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헌법상의 제약 때문에 배심제와 참심제를 도입하기 어렵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리고 고위법관의 정년을 보장해주고 퇴직 후에는 변호사 개업을 금지하는 규정을 헌법에 두어야 한다. 또한 대법관 임명에 있어서 대법원장의 제청권을 폐지하거나 대법관 제청을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서 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헌법개정 사항은 아니지만,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을 폐지하고, 성적이 아니라 경력과 인격, 세계관의 균형성을 기준으로 법관을 임용하도록 법관임명제도가 전면적으로 개혁돼야 한다. 근본적인 사법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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