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기자에게.
그 동안 잘 지냈는지요. 바야흐로 봄이 절정입니다. 오랜 겨울을 버텨온 목련이 소담한 꽃망울을 터트리면, 뒤질세라 개나리와 진달래가 노란색, 분홍색으로 세상을 물들이고, 다시 그 뒤를 이어 벚꽃이 봄바람에 날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골목 어귀의 라일락이 진한 향기를 뿜어내고, 감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가 연초록 작은 잎새들을 키우는 시간입니다.
봄은 언제나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갈수록 봄이 짧아진다지만 봄은 꽃과 풀과 나무로, 갈색에서 초록으로, 초록에서 녹음으로 바뀌는 경이로움으로 다가옵니다. 그러기에 모처럼 오늘은 봄을 찾아 길을 나섭니다. 강북 강변도로를 올라타서 방향을 일산 쪽으로 잡습니다. 밤섬과 선유도를 왼쪽에 두고, 상암 경기장과 난지도를 오른편에 두고 자유로로 향해 나갑니다. 성산대교와 가양대교를 지나면 북서 방향으로 곧게 뻗쳐 있는 이 자유로는 언제나 시원함을 안겨주는 길입니다.
저편으로 행주산성이 보이면 이편은 능곡입니다. 신촌에서 문산까지 경의선을 잇고 있는 수색, 능곡, 백마역은 대학 시절의 애틋한 추억이 깃든 곳입니다. 강의가 없는 날이면 어떤 날은 친구들과 함께 어떤 날은 혼자서 신촌 기차역에서 경의선을 타고 저기 능곡역까지 놀러 오곤 했습니다. 그리하여 흙먼지 이는 제법 거센 봄바람 속에 역 앞 꾸불꾸불한 논둑 길을 걸어 행주산성 아래까지 와서 유장하게 흐르는 한강을 말없이 바라보곤 했습니다. 1980년대 초반 까닭 없이 서럽고 상처뿐인 젊은 날이 어서 지나가기를 갈망했던 그 봄날들이 이 길을 갈 때면 가끔 떠오르곤 합니다.
모든 단단한 것은 대기 속으로 사라진다
길을 가다가 생각합니다. 제가 공부하는 현대성이라는 것도 기실 길에 대한 새로운 발견입니다. 마차가 다니던 시골길이 자동차가 다니는 신작로로 바뀌고 신작로가 다시 고속도로로 바뀌어 온 것이 우리의 지난 현대사입니다. 그 고속도로에 더하여 이제 보이지는 않으나 실재하는 정보고속도로가 열리고 있는 게 우리의 삶입니다. ‘모든 단단한 것은 대기 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은 누구의 말이었는지요. 더불어 사는 정겨운 공동체를 꿈꾸는 ‘농경사회적 상상력’은 이미 스쳐가 버린 그리움의 풍경인지요. 언제나 정주민의 삶을 꿈꾸지만 우리 앞에 펼쳐 있는 것은 그 어느 곳에도 머물 수 없는 유목민의 삶인지요.
일산으로 들어가는 장항 인터체인지를 지나고 이산포 인터체인지를 지나서 한강 하류 철새 도래지 옆을 지납니다. 오래 전 읽었던 허목 선생의 『미수기언』에 실린 짧은 여행기가 떠오릅니다. 마포 나루인가 어딘가에서 배를 타고 이 한강을 내려와서 임진강을 거슬러 올라가 선생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입니다. 한양에서 연천까지 한강과 임진강의 시원한 풍광에 대한 선생의 기품 있는 심사를 느낄 수 있는 글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철조망과 초소로 이어진 분단의 서글픈 현실을 느끼게 하는 강변입니다. 겨울철새들이 오래 전 시베리아로 돌아갔는지 썰물이 빠진 벌이 펼쳐져 있는 강변에는 아무 것도 눈에 띠지 않습니다. 오래 전에는 강화만에서 조강을 거쳐 여기 한강 어귀로 들어오던 황포돗대의 뱃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지만, 지금 들리는 것은 자유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이 이따금 내는 경적소리 뿐입니다.
오두산 전망대를 지나 임진강을 바로 눈앞에 두고 철책선 옆에 차를 세워 둡니다. 강 건너 멀리에는 북녘의 산하가 펼쳐 있습니다. 아래쪽으로는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해 흐르는 조강이 끝없이 이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위쪽을 보면 임진강이 굽이쳐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시야에서 멀어집니다. 이 강을 거슬러 가면 문산, 적성을 지나 어느 지점에서인가 DMZ을 넘어 북한 땅으로 들어갑니다. 그리하여 한번도 가보지 못한 북녘 땅 아호비령 산맥 두류산의 깊은 골짜기까지 강은 계속 이어져 있습니다.
냉전의 빙벽을 녹일 봄을 기다리며
K 기자, 올해는 바로 정전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53년 7월 27일 저 임진강 너머 판문점에서 비극적인 한국전쟁을 마감하는 정전협상이 체결된 지 50년이 지났습니다. 50년이면 짧지 않은 세월이건만 여전히 우리 한반도는 긴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3년 전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건만 지난해와 올해에는 긴장이 오히려 고조되어 왔습니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평화공존을 그토록 열망함에도 50년 동안 굳어 버린 냉전의 빙벽은 쉽게 해빙되고 있지 않습니다.
대체 누구의 책임입니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소박하지만 자유롭고 평화롭게 사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누가 우리의 작은 행복을 가로막는 것입니까. 첨단 군사력을 앞세워 주권 국가를 무너뜨리고 자유와 평화를 참칭하는 거대 권력의 목소리가 요란한 야만의 시대입니다. 권력의 궁극적인 원천은 인간에게 있건만 인간 위에 군림하며 인간을 부정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이 한반도에서 냉전적 질서를 걷어 내고 평화공존을 이루어 내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중대한 과제입니다. 한반도의 평화공존 없이는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도 불가능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합니다. 그러기에 정전에서 평화체제로 가는 것은 우리가 다음 세대에 가져야 할 당연한 책무입니다. 임진강은 우리의 심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도 그저 흘러가고 있을 뿐입니다. 강변으로 이어진 철책선, 그 철조망 아래에는 민들레, 질경이, 제비꽃, 그리고 이름 모를 들꽃들만 무심하게 피어 있습니다. 임진강변에도 봄은 이렇게 오고 있건만, 한반도의 봄은 대체 언제 올 수 있는 것입니까.
저녁 노을이 임진강에 내리고 있습니다. 두 세 마리 물새들이 북쪽 하늘로 날아갑니다. 혹시 일본 친구들인 포크 크루세이더스가 부른 ‘임진강’이란 노래를 아는지요. 1968년 일본에서 발표되었으나 정치적 이유로 방송이 금지된 이 곡은 얼마 전에 해금되었습니다. 원래의 곡은 『산제비』로 유명한 카프 시인 박세영에 의해 쓰여진 북한 노래인데, 일본 친구들이 일본말과 우리말을 섞어 부른 작품입니다. “임진강 맑은 물은 흘러 흘러 내리고 물새들은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으건만”으로 이어지는 노래는 어설픈 우리말 발음 탓인지 잔잔한 감동을 일게 합니다. 남과 북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저 물새들처럼 언제 이 자유로가 저 임진강 너머로 이어져 개성과 평양과 신의주까지 달려 갈 수 있을런지요.
짧은 저녁 노을이 사라지자 강물은 이내 감청빛으로 물듭니다. 저녁 바람에 실려 대남 방송이 점점 크게 들립니다. 봄나들이 드라이브를 나온 자동차들의 헤드라이트가 켜지기 시작하고 속도가 더 빨라집니다. 한갓진 임진강변에서 홀로 맞이하는 또 하루의 봄밤은 이렇게 찾아오고 있습니다. 내내 건강하길 바랍니다. 다음 달에 다시 소식 드리지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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