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4년 07월 2014-07-01   1593

[듣자] 클래식 음악과 친해지기

클래식 음악과 친해지기

 

이채훈 MBC 해직 PD

 

구두 만드는 동네 아우 녀석, 고된 하루가 가고 술이 한잔 오르면 밤늦게 우리집에 불쑥 들어와서 음악을 틀어 달라 한다. 오랜 타향살이에 쓸쓸한 녀석은 내가 돌아가신 형을 닮았다며 함께 음악을 듣자 한다. 신청곡은 초등학교 동창이었다는 주현미, 20대 때 좋아했다는 배호, 최근 <헬로>로 주목받은 ‘가수왕’ 조용필…. 유튜브에 접속해서 조용필의 <한오백년>을 틀어 준다. 기분이 좋아진 녀석은 너그럽게 웃으며 말한다. “이제 형이 좋아하는 클래식도 틀어 봐요.” 

 

“클래식 음악이 도대체 뭘까요?” 요즘 진행하고 있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청취자 한분이 질문하셨다. 누구나 마음속에 사랑하는 음악이 하나쯤 있다, 힘들고 외로울 때 위안을 주는 곡을 듣고 평생 사랑한다면 그게 각자의 클래식 아니겠는가…. 이렇게 대답했는데, 물론 청취자가 듣고 싶은 대답은 아니었을 것이다. 클래식을 정의하려면 꽤 말이 길어질 것이다. 수백년 검증에도 살아남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음악이니 좋은 곡들인 게 분명하다. 그러나 클래식과 친해지기 어려운 이유가 하나둘이 아니다.

 

클래식은 많은 사람에게 아직도 낯설고 어렵다. 클래식을 내 삶의 ‘축복’으로 만들 묘책은 없을까?

어릴 적부터 들어서 귀에 익어야 좋아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사람은 누구나 친숙한 음악을 반가워하고, 낯선 음악을 부담스러워 한다. 골 아픈 이론만 가르치고 음악 사랑하는 마음을 키우지 못하는 교육도 문제다. 따라서 묘책은 없다. 일단 자꾸 들어서 익숙해지는 수밖에…. 클래식을 모른다고 부끄러워하거나 알려고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다. 음악이 사람을 위해 있지, 사람이 음악의 노예가 돼서야 쓰겠는가. 그냥 편안히 듣다 보면 어느 새 좋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도움 되는 책도 많고, <듣자> 같은 글도 참고할 수 있다. 

 

우리 것을 놔두고 왜 서양 걸 듣느냐 질문할 수 있다. 클래식은 서양에서 발달한 게 사실이지만, 지역과 인종을 초월해서 감동을 주는 인류 공통의 유산이다. 윤이상, 강석희, 진은숙처럼 우리 전통 가락을 승화시킨 음악도 클래식에 속하니 꼭 서양음악이라 할 수 없다. 정명훈, 장영주 등 한국 핏줄을 가진 세계적 음악가를 가리켜 서양 것으로 먹고 사는 이상한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클래식이 서양 것이라서 안 듣는다면 아파트와 빌라를 거부하며 한옥만 고집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참여사회 2014년 7월호

 

글루크의 <멜로디> http://youtube/4UYxPae5O8o (바이올린 레오니드 코간)

이 음악을 듣고 싶다면?  유튜브에서 Gluck Melodie Kogan을 검색하세요.

 

글루크의 <축복받은 정령들의 춤>

이 음악을 듣고 싶다면? 유튜브에서 Gluck Orfeo Blessed Spirits를 검색하세요. http://youtube/xTZgMQ7TVes

 

돈과 시간이 있는 유한계층의 사치품이라는 시각도 있다. 클래식이 중세 교회의 의례와 봉건 귀족의 여흥에서 비롯된 것은 맞다. 아늑한 응접실에서 와인 한잔 놓고 들어야 클래식이라고 고상 떠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게 사실이다. 세상이 바뀌어도 과거의 통념과 유습이 오래 살아 있기 때문이다. 18세기 후반, 시민민주주의 혁명과 함께 모차르트는 봉건 속박을 박차고 최초의 자유 음악가가 됐다. 모차르트는 황제 요젭 2세부터 고아원 어린이들까지 동등한 친구로 대했고, 자기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몇 시간이고 연주해 주었다. 베토벤 등 위대한 작곡가들의 음악혼은 언제나 개인의 자유와 함께 꽃피었다. 

 

“클래식이 특권층의 전유물”이란 생각은 낡은 편견일 뿐이다. 오히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으로 상처 입은 사람이 너무 많은 요즘, 99% 시민들을 위로할 수 있어야 좋은 음악이다. 20세기엔 녹음 기술의 발달로 약간의 돈만 들이면 집에서 LP, 카세트, CD로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요즘은 유튜브에 없는 음악이 없기 때문에 누구든지 아무 비용 없이, 무한정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그래도 클래식이 어렵게 느껴지는 건 길고 지루하기 일쑤라는 점 때문이다. 따라서 짧은 곡부터 듣는 게 좋은 방법이다. 세월호 참사의 슬픔을 여전히 기억하는 요즘,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못해 저승으로 길을 떠난 오르페우스 이야기는 어떨까.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음악의 신神 아폴론의 아들이었던 오르페우스, 그는 죽음의 경계를 너머 사랑하는 에우리디체를 살려 낸다. 글루크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오페라다. 

 

죽음을 초월하는 사랑의 힘, 오르페우스는 에우리디체를 찾아 지하 세계로 떠난다. 분노의 정령들이 저승 입구를 막고 있다. 오르페우스가 리라를 연주하자 이들의 마음이 부드러워진다. 이 때 나오는 음악이 ‘축복받은 정령들의 춤’이다. 글루크의 오페라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체> 중 가장 잘 알려진 대목이다. 

 

음악이 얼마나 달콤하고 아름다웠으면 지옥의 신 하데스와 복수의 신 네메시스마저 감동시켰을까. 죽음을 두려워 않은 오르페우스의 길에 함께 해 준 음악의 위대한 힘이다. ‘축복받은 정령들의 춤’ 중간 부분은 애수어린 선율이 눈물을 자아낸다. 이 부분만 크라이슬러가 바이올린 독주로 편곡한 게 바로 글루크의 <멜로디>인데, 요즘도 자주 연주된다.

 

오페라에 나오는 원곡도 클래식이고 바이올린 독주로 편곡한 <멜로디>도 클래식이다. 별로 길지 않은 원곡, 그보다 더 짧은 <멜로디>…. 아무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곡이다. 고단한 나날, 클래식에서 위로받을 수 있다면 누구나 ‘축복받은 정령’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글루크의 이 선율을 사랑하고 마음 깊이 간직한다면 휘파람으로 불든, 어설프게 따라 부르든, 그 사람에게 소중한 클래식이 될 것이다. 

 

 

이채훈 MBC에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와 클래식 음악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2012년 해직된 뒤 ‘진실의 힘 음악 여행’ 등 음악 강연으로 이 시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다. 저서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 『우리들의 현대 침묵사』(공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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