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3년 04월 2003-03-25   1088

대안과 가치정당 표방 “녹색당” 뜬다

녹색정치포럼 개최… 2004년 총선 참여키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와 학자, 지방의회 의원 등이 중심이 된 녹색당(가칭)이 2004년 총선 참여를 목표로 오는 3월 28일 녹색정치포럼을 여는 등 창당 준비에 여념이 없다. 보수-진보의 패러다임을 넘어 제3의 대안정당을 표방하는 녹색당의 태동은 최근 활발하게 전개되는 시민단체의 정치세력화 논의와 맞물려 벌써부터 시민사회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녹색당 준비모임에 맞춰 국내 녹색당 모색의 역사, 녹색당의 가치와 지향, 정치세력화 전망 등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국내에서 녹색당에 대한 고민은 지난 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배달환경연구소, 푸른한반도찾기, 한국녹색당 준비모임의 3개 단체가 녹색당 창당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93년 녹색연합이 출범한다. 녹색연합 중심의 녹색당 창당 논의는 잠복기를 거쳐 98년 다시 활력을 얻었다. 시민단체 활동가 중심의 ‘녹색정치시민포럼’을 통해 녹색당의 필요성, 창당 가능성, 시민운동의 정치세력화 등에 대해 깊은 논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시민사회에 정치세력화에 대한 입장 차이가 컸다. 환경연합은 환경자치후보 중심의, 녹색연합은 정당 형식의 세력화를 주장한 것이다. 녹색연합 역시 시기상조론과 함께 그간의 논의 성과가 축적되지 못하는 한계 속에서 운동조직인 녹색연합을 정당조직으로 탈바꿈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 결과 당시 박창화 인천녹색연합 대표, 임삼진 녹색연합 사무처장 등 일부 활동가들이 녹색연합을 나와 2002년 5월 창당한 것이 녹색평화당이다.

지금 창당을 준비하는 녹색당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환경연합 녹색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기초의원 15명이 녹색자치네트워크 결성을 준비하면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녹색자치네트워크는 2월 1차 실무회의를 거쳐 ‘녹색정치준비모임(이하 준비모임)’ 결성을 제안하고 3월 녹색평화당 면담과 ‘시민사회의 정치세력화’를 주제로 한 사랑방 포럼 개최 등 창당과정을 착착 밟아가고 있다. 여기에는 환경, 생태공동체, 여성운동 단체의 활동가들과 학계 인사들도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3월 28일 녹색정치포럼을 거쳐 정강정책, 조직 등 당의 골격을 가다듬을 계획이다.

녹색당의 정책과 이념은 아직 제안 단계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생태주의, 사회적 책임, 풀뿌리 민주주의, 비폭력·평화, 분권화, 성평등 등 독일 녹색당의 이념과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서형원 녹색자치네트워크 간사는 녹색당을 대안운동이자 가치운동이라고 말한다.

보수정당과 계급정당을 뛰어넘는 제3의 대안 주장

“대안운동이란 개발독재의 상처를 씻어내면서 동시에 시장주의와는 다른 가치가 작동하는 사회의 모습, 삶과 문화의 방식, 정치·경제의 원리를 제시하고 그 실현을 추구하는 운동이다. 대안운동은 가치운동이다. 몰가치적인 합리성이 아니라 여성, 환경, 사회연대의 시각에서 사회를 바라볼 때 대안의 설계가 가능하다. 이런 다양한 부분적 가치 지향을 연계해 가치의 연대를 이루고, 그것이 포괄적 대안으로 나타날 때만 그 대안이 실현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대안운동은 정치운동이다.”

녹색정치준비모임이 진보정당에 대해 갖고 있는 입장도 녹색당을 이해하는 데 유용할 것이다.

서형원 간사는 “민주노동당이 환경운동을 포함해 시민사회의 대안과 정책을 대부분 수용했다는 것에 동의한다”면서 “그러나 공기업 민영화 반대논리에서 보듯이 생산력주의, 성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부국강병론 비슷한 국가주의, 민족주의적 색채도 있다”고 지적한다. 노동자 권익과 지속가능한 발전이 이론적으로 배치되지는 않지만 현실에서 민노당은 성장력 지상을 주장하는 셈이며, 민족주의, 국가주의적 색채는 개인의 생활이익을 중시하는 녹색당의 철학과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사회정책연구원의 조현옥 박사는 “환경문제는 다른 정당에서도 다룰 수 있지만, 사후 해결 차원이 아니라 사회의 틀을 바꾸어 예방하는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정당은 녹색당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기존정당과의 차별성을 설명했다.

녹색정치준비모임은 녹색당의 특정 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시민운동의 정치세력화의 구체적인 모델을 보여주었으며 지역에서 시작해 제도권에 참여했다는 몇 가지 유사성을 들어 독일 녹색당 모델을 선호하는 듯하다.

조현옥 박사는 “유럽식 중에서도 독일 녹색당은 정치세력화에 성공하여 정치권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면서 “정치권이 압력단체나 시민사회보다 큰 힘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시민운동의 정치세력화 필요성이 독일과 합치하는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서형원 간사는 “특정 모델보다는 몇 가지 원칙을 지키려고 한다”며 “실제 시민사회에서 활동하면서, 철저히 분권화 되고 수평적인 구조를 지향하고, 위계적이고 권위적인 직제를 철폐하고, 성평등 원리를 엄격하게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녹색당의 정치세력화 전망

녹색평화당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총 26만 표를 얻어내 1.6%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광역후보를 낸 지역에서는 평균 2.7%, 전라북도 광역의회 후보는 4.9%의 지지를 얻기도 했다. 환경연합의 녹색후보 역시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15명의 기초의원을 배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에 대해 관계자들은 대체로 “서구 녹색당의 경험에 비추어 매우 긍정적인 결과”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녹색당의 정치세력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산적한 안팎의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우선 시민사회 안에 녹색당이 얼마나 뿌리내릴 수 있느냐는 문제가 있다. 서형원 간사가 강조한 “실제 시민사회에서 활동을 하면서”라는 단서 역시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

차명제 성공회대 NGO학과 박사는 “녹색평화당 역시 시민사회와 호흡을 같이 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충분치 못했다”면서 “시민사회의 아젠다를 정치사회에 전달해야 할 녹색당은 시민사회의 호응이 중요하고, 정치세력화에 대한 공감대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안정치세력으로서 녹색당의 출현을 당연시하는 흐름의 다른 한편에는 아직도 시기상조론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녹색당 준비모임이 시민단체가 아니라 개인 활동가 수준에서 추진되고 있는 현실은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한다.

지난 3월 5일 열렸던 사랑방포럼에서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녹색당을 출현시킨 서구와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사회구조적 상황에 놓여 있는 우리는 시민운동의 정치세력화 방법도 서구와 구별될 필요가 있다”면서 “진보정치가 걸음마 단계인 우리에게는 녹색당 방식의 정치세력화가 아니라 시민혁명적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서형원 간사는 “정치세력화의 목적이 무엇이냐 하는 가치지향이 없고, 전체 시민운동의 단결 주장은 이미 시민운동의 이념적 분화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맞지 않는다”며 들어 정 교수의 주장을 반박했다.

민노당 역시 녹색당의 출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시기상조론을 거들고 있다. 장상환 민노당 정책위원장은 “유럽에서는 마이너스 성장, 자동차 이용 안 하기 등을 녹색당이 주장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녹색당이 국민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결국 생태주의보다 덜 급진적인 환경관리주의 정도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장 위원장은 “이 정도의 주장은 기존 정당의 아젠다에 포섭된다는 얘긴데, 이는 녹색당 본래의 취지를 잃어버리는 딜레마”라고 지적했다.

장 위원장의 주장은 이제 첫걸음을 내디딘 민노당의 정치세력화가 범 진보진영의 분열로 무산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담고 있지만, 그것을 정파적 이해로만 폄하할 수 없는 선거제도의 문제도 있다. 소수정당의 원내 진출을 비롯한 정치세력화는 위헌판결을 받은 현행 1인1표 선거제를 대신하는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의 세부 시행방식에 따라 막대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비례대표 의석 분배의 최저 득표율 상한선이다.

지금 5%와 2% 안을 놓고 여야정당과 소수정당, 시민단체 간에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만약 5%로 결정이 된다면 “진보정당 혼자 10%를 차지하는 것보다는 진보정당과 녹색정당이 합쳐 12∼13%를 얻는 것이 전체 진보역량에 더 이익”이라는 녹색당의 계산이 현실적 의미의 정치세력화에 있어 정확하다고만 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총선을 바라보는 녹색당의 시각이 기존 정당과 동일하지는 않다. 서형원 간사는 “분권과 생활정치를 강조하는 녹색당의 입장에서는 중앙정치도 부문운동의 한 영역으로만 바라볼 수 있다”고 밝혔다.

녹색당이 시민사회와 정치 영역에서 어떤 성과를 거둘지 지켜볼 일이다.

장흥배(참여사회 기자)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