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6년 06월 2006-06-01   1023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오늘은 ‘침략’전쟁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전쟁의 반대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민주주의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을 통해 일어나는 물리적 폭력과 함께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와 과정에 초점을 맞춘 생각이죠. 대화나 협력을 통해 민중의 이해를 실현하기보다 거대한 폭력을 동원해 소수의 이익을 실현하는 거죠.

1492와 911, 상이한 기억들

길을 다니다보면 ‘1492’라는 숫자가 적힌 상품을 가끔 보게 됩니다. 1492, 과연 어떤 숫자일까요? 콜럼버스가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한 뒤 유럽 제국주의가 아메리카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7천여 만 명이 굶주림과 학살 등으로 죽어갔습니다. 다양한 문명과 역사를 가진 거대한 대륙이 철저하게 파괴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한쪽 편에서 1492는 신대륙 발견을 축하하는 숫자가 되었지만 다른 한쪽 편에서는 정복당한 역사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계속 되고 있는 차별과 억압에 저항해야 하는 숫자로 기억합니다. 여러분의 기억은 어떻습니까? 혹시 ‘오오오~~~’하며 이상한 소리를 내고, 말을 타고 달리면서 백인들을 공격하는 인디언들을 더욱 크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다른 기억을 들여다보죠. 2001년에 ‘9·11’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두고 많은 사람들은 테러의 시대, 문명의 충돌 등을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9·11이 일어나기 7년 전인 1994년 4월 아프리카 르완다에서는 한 달 동안 80만 명 또는 100만 명이 학살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 가운데 하나는 벨기에가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 생김새나 역사와 문화의 차이가 거의 없던 후투인들과 투치인들을 구별 짓고 차별하면서 서로를 싸우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점령이 서로 증오해야 할 인종을 창조해낸 것입니다.

아무튼, 여러분의 기억 속에는 9·11과 르완다 대학살 가운데 어느 것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습니까? 독일의 유대인 학살은 ‘학살’로 기억되지만 미국의 이라크인 학살은 ‘뜻하지 않은 피해’로 기억되는 것을 보면 전쟁이라는 것도 누구에 의해, 어떻게 기억되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증오, 폭력, 대물림되는 상처

저항을 약하게 만들고, 미군의 주둔 필요성을 퍼뜨리기 위해 미국이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 이라크인들을 수니파와 시아파로 나누는 것입니다. 어제의 이웃과 가족이었던 이들을 오늘의 적으로 만들어 싸우게 만드는 거죠. 이렇게 전쟁 피해는 인명살상, 사회시설 파괴 등과 함께 민중들끼리 서로 증오하게 만드는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증오는 전쟁이 끝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고 사회구조로 뿌리 내리기도 합니다.

여성에 대한 폭력도 전쟁이 만드는 큰 고통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를 들어 수단 다르푸르 지역에서 비정규 우파 군사 조직인 잔자위드가 흑인 여성들을 공격하면서 수많은 강간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한 가해자가 ‘검둥이들의 피를 바꿔주겠다’고 했다는 피해자 증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전쟁 과정에서 일어난 강간과 그에 따른 임신 및 출산으로 부모와 아이들에게 대를 이어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전쟁이라고 하면 군대나 군인의 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비전투원들에게까지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왜일까요? 예를 들어 미국은 베트남을 침략하면서 적에게 이로울지 모른다는 이유로 사람뿐만 아니라 마을과 숲까지 무차별 파괴했습니다. 전쟁의 목적과 수단이 전투에 그치지 않다보니 전쟁 피해의 범위가 전투 과정에서 벌어진 일보다 훨씬 크고 넓어지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군사주의 내버려두고 평화는 없다

소련이 무너지면서 미국에게는 적이 공산주의에서 테러로 바뀌었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러시아-체첸, 터키-쿠르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등 공격하는 쪽은 언제든지 상대에게 테러리스트라는 이름을 붙이고 전쟁을 벌이면 그만입니다. 석유를 목적으로 해도, 권력 교체를 목적으로 해도, 저항운동 탄압을 목적으로 해도 대테러전쟁이 되어 버립니다.

냉전이 해체되었지만 세계는 조금도 안전해지지 않았습니다.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미국이 이란을 핵공격 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21세기가 되어도 이렇게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하나는 이윤추구 중심의 경제체제 때문입니다. 폭탄을 퍼부어야 무기회사의 주가가 올라가게 되는 거죠. 1만이 죽든 100만이 죽든 석유만 차지하면 된다는 겁니다. 다른 이유 하나는 군사주의입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서로를 핵공격 하겠다고 위협해야 양쪽 정부가 자국민으로부터 힘을 얻게 되는 거지요. 그리고 국제정치를 움직이는 것은 대화가 아니라 여전히 군사력에 바탕을 둔 힘이기도 하구요. 따라서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군사주의 정치체제가 어떻게든 바뀌지 않으면 ‘평화로운 세상’이란 우리의 마음속에만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전쟁 골짜기 너머 삶의 들판에 눈길을

전쟁에 관한 얘기를 하다보면 누가 누구를 어떻게 공격했고, 사망자는 몇 명이고 하는 이야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우리의 생각 속에는 현장의 사람들을 오직 피해자로만 보려는 경향도 있습니다.

하지만 쉬운 예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 몇 십 년 뒤에 한국 사회가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여전히 부정적인 부분이 크지만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했습니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증오와 비탄만이 가득할 것 같은 곳에서도 자식들만은 굶기지 않겠다는 부모들과 이 사회를 제대로 된 방향으로 바꿔야겠다는 사람들 등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라크나 팔레스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배하는 이들이 전쟁으로 은행 통장에 동그라미 개수를 늘려가는 동안 무너진 집 더미 속에서 이부자리와 냄비를 찾아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는 사람들이 있는 법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전쟁으로 불쌍해진 이들에게 적선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난리통 속에서도 생존의 끈을 이으며,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은 이들과 함께 우리의 문제를 함께 풀어간다는 연대의 정신이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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