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4년 05월 2014-05-02   1922

[역사]1974년과 2014년, 5.16을 보는 두 개의 눈

1974년과 2014년,
5.16을 보는 두 개의 눈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역사-web

5월 혁명과 5.16군사정변

 

5월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생시킨 역사의 시원이라 할 수 있는 사건이 일어난 달이다. 1961년 5월 16일 0시 15분 경 박정희 육군 소장 일행이 서울 제6구관구 사령부에 도착하면서 쿠데타는 시작되었다. 1974년에 처음 국정으로 발간된  『고등학교 국사』 에서는 그 사건을 이렇게 적고 있다.

 

박정희 장군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혁명군은 대한민국을 공산주의자들의 침략 위협으로부터 구출하고 국민을 부정부패와 불안에서 해방시켜 올바른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1961년 5월 16일 혁명을 감행하여 정권을 장악하였다.

 

‘혁명군’이 일으킨 쿠데타가 반공을 위한 혁명이었고, 민주주의를 위한 혁명이었다는 것이다. 같은 사건을 2014년에 검정으로 발간된  『고등학교 한국사』(천재교육)는 이렇게 적고 있다.

 

1961년 5월 박정희를 비롯한 일부 군인 세력이 장면 내각의 무능력, 사회의 무질서와 혼란 등을 내세우며 쿠데타를 일으켰다. 군사 정변 세력은 반공을 국시로 내건 ‘혁명공약’을 발표하였으며, 계엄을 선포하였다. 이들은 국가 재건 최고 회의를 만들어 군정을 실시하고 모든 정당과 사회단체를 해산하였다. 이에 따라 민주화를 지향한 4.19혁명 정신이 사실상 부정되었다.

 

이렇게 1974년과 2014년, 4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민주주의를 위한 혁명’은 4.19혁명 정신을 부정한 반민주적인 군사정변, 즉 쿠데타로 바뀌었다. 말썽 많던 교학사 교과서도 ‘헌정을 중단시킨 쿠데타’라 쓰고 있다. 혁명이란 개념이 군사정변으로 개조된 건 민주화의 바람 속에 탄생한 1990년 교과서부터였다.

 

부활하는 반공주의

 

1961년 5월 16일 쿠데타 세력은 혁명공약을 발표했다. 쿠데타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또한 대표하는 1항의 내용은 이렇다.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 반공 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

 

이승만은 반공제일국가를 꿈꿨다. 박정희 역시 반공을 국시로 내세웠다. 1974년부터 국정이란  제도로 단 하나의 교과서로 ‘국사’를 배워야 했을 때, 현대사는 반공주의라는 이념 교육에 충실한 내용으로 채워졌다. 반공주의에 입각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거듭 강조했다. 공산주의자들은 반민족인 세력이었고 제주4.3사건은 폭동이었다. ‘공산주의자들까지도 처음에는 반탁 운동에 참가하였으나, 소련의 사주를 받은 그들은 중도에 돌변하여 민족적 양심을 짓밟고 찬탁을 주장하여 국민을 실망하게 했으며 북한 공산주의자가 남한의 공산주의자를 사주하여 제주도에서의 폭동과 여수 순천에서의 반란을 일으키게 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2014년에도 반공주의에 입각한 대한민국 정통성을 주장하는 교과서가 등장했다.  바로 교학사 교과서이다. 어쩌면 1974년 교과서보다 더 노골적으로 반공주의를 드러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공산주의와 대립하면서 건국되었다. 대한민국은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하여 경제 성장과 민주화를 이룩하였다.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공산주의 체제보다 더 바람직할 뿐만 아니라 더욱 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박정희 정부의 경제 개발 계획 추진도 ‘박정희는 공산주의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려면 경제적으로 그들을 압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고 쓰고 있다. 10월 유신도 북한의 끊임없는 남한 공산주의화 시도에 대한 대응이란다. 세인의 공세를 의식해 ‘쿠데타’라고 했지만, 교학사 교과서가 철저히 신봉하는 건 바로 혁명공약 1항인 것이다. 쿠데타란 언급 뒤에 바로 이어지는  문장은 이렇다. ‘하지만, 반공과 함께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강조하였다.’ 교학사 교과서가 처음 공개되었을 때는 민정이양을 약속한 혁명공약 6항을 의도적으로 넣지 않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뉴라이트가 아니고 백back라이트일 뿐  

 

반공주의에 기반한 대한민국 정통성을 가르치고 싶어 하는 교학사 교과서를 들여다보며 뉴라이트에서 ‘뉴’는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뉴’보다는 ‘라이트’ 정신에 더 투철한 안목으로 반공주의 부활을 꾀하는 교학사 교과서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1974년에는 반공주의를 내세운 단 하나의 교과서가 있었다. 2014년에는 8개의 검정 교과서가 존재한다. 그 중 오직 하나 교학사 교과서가 1974년의 교과서를 답습하고 있다. 뉴라이트가 아니라 백back라이트인 것이다. 그렇게 5.16=쿠데타라는 상식에 심정적으로 동의하지 못하고 혁명을 혁명이라 부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며 1974년의 역사인식에 머물러 있는 1종의  교과서가 7종의 다른 교과서와 함께 2014년에 공존하고 있다. 누군가 책임져야 하는 퇴행일까? 아니면 시대의 다양성과 분화를 보여주는 징표일까? 각자 해석해 볼 일이다.

 

김정인

참여연대 창립 멤버, 현 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였다.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궤적을 좇는 작업과 함께 동아시아사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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