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1년 09월 2001-09-01   1833

서울의 골목

초라한 골목길, 그러나…

내가 서울의 도심을 일상적으로 접하기 시작한 것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1년 봄에 나는 당시 서울역 뒤 만리재 어귀에 자리잡고 있던 양정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 무렵 나는 청량리에서 살고 있었는데, 다른 학군에 배정되었던 것이다. 중학교까지는 걸어서 통학했으나 고등학교는 차를 타고 가게 되었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직장인들과 등교하는 학생들로 버스는 만원이었다. 꽉꽉 들어찬 사람들 속에서 창 밖으로 도심을 구경하는 나날이 3년이나 계속되었다. 지하철을 타기도 했지만 답답해서 주로 버스를 타고 다녔다. 사람들로 꽉 찬 버스는 남대문 시장을 지나면서 얼추 한가한 버스가 되었다. 이때쯤에는 안내양도 자리에 앉아 아픈 다리를 잠시 쉴 수 있었다. 서울역 옆 염천교를 지나면 약현성당이 보였고, 곧 이어 버스는 만리재 어귀의 고려인쇄소를 지났다. 나는 거기서 내려 문방구와 분식점들이 늘어서 있는 언덕길을 올라 봉래산 자락에 자리잡은 학교를 향해 걸음을 재촉하곤 했다.

돌이켜보건대 나의 고등학교 통학길은 서울의 동부 부도심인 청량리에서 시작해서 600년이나 묵은 서울의 도심을 지나 서울역 너머에 이르는 흥미로운 여정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통학길이 아니라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는 탐방로였다. 내가 탄 버스는 왕산로, 종로, 돈화문로, 율곡로, 화신로를 통해 소공동으로 들어가 남대문을 지나고 염천교를 건너 만리재를 넘어 공덕 오거리로 갔다. 그 길은 동묘, 동대문, 광장시장, 종묘, 세운상가, 비원, 화신백화점, 종각, 한국은행, 남대문, 약현성당 등을 지나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 길 주위에는 대광고, 중앙고, 덕성여고, 풍문여고, 중동고, 양정고, 환일고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도심을 통과하는, 3년에 걸쳐 반복된 여정은 때로 지겹기도 했지만 대체로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 길을 지나는 게 전혀 즐겁지 않은, 오히려 괴로운 일이 되어 버렸다. 늘 막히는 길도 괴롭지만,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더 괴롭다. 길가의 가게들은 예외 없이 모두 악을 쓰는 것처럼 커다란 간판들을 이고 있다. 그것으로도 모자란다는 듯 창이란 창은 온통 울긋불긋한 글씨들로 메워져 있다. 시끄럽고 어지러운 풍경이 싫어서 이제는 주로 지하철을 이용해 도심을 지나다닌다.

3년 간의 통학길은 ‘찻길’에서 도심을 지켜보는 길이었다. ‘찻길’과 그 옆의 보도와 건물은 도심의 경관을 이루는 기본 요소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어느 지역을 잘 알기 위해서는 ‘찻길’ 안쪽의 ‘사람 길’을 다녀보아야 한다. 최근에 도심을 더 잘 알기 위해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광화문의 교보생명에서 시작해서 종로3가의 서울극장까지 ‘사람 길’을 걸어 보았다. 나는 평소 도심의 경우 ‘찻길‘보다 ‘사람 길’이 더 엉망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는데, 함께 했던 사람들도 대체로 내 생각에 동의하게 된 것 같다. 왜 그럴까?

서울에서 가장 엽기적인 장소 피맛골

‘사람 길’이란 차가 주인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인 길이다. 비좁아서 차가 다닐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걸었던 종로지역에는 이런 ‘사람 길’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종로 옆에 나 있는 ‘피맛골’이고, 다른 하나는 건물들 사이로 어지럽게 나 있는 ‘골목길‘이다. 이 ‘사람 길’을 걷는 일은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지나다니고 있다. 이 길이 깨끗하고 아름다워진다면, 그만큼 서울 도심도 걸어다니는 것이 즐거운 곳이 될 것이다.

교보문고 입구 앞쪽에는 건물들 사이로 비교적 곧게 골목길이 나 있다. 입구에 ‘피맛골’이라는 작은 나무팻말이 붙어 있다. ‘말을 피해다니는 길’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 길은 조선 시대 양반들의 행차를 피해 중인 이하의 사람들이 편하게 다닐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지금의 종로 거리는 이처럼 옛날의 종로에 바탕을 두고 있다. ‘피맛골’은 이 사실을 잘 보여주는 ‘역사적 장소’인 셈이다. 그러나 지금 이 길은 늘 어둡고 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 결코 유쾌하다고 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런데도 이 길의 한쪽은 온통 음식점들이 차지하고 있다. 틀림없이 이곳은 음식을 즐기기에는 그다지 좋은 장소가 아니다. 먹는 일은 단순히 빈 위장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삶을 즐기는 일이고 문화를 느끼는 일이다. ‘피맛골’의 음식점이 이런 의미에서의 ‘먹자골목’이 되려면, 우선 그 어둡고 눅눅한 환경을 크게 바꿔야 한다.

‘피맛골’에서는 서울이 안고 있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길의 다른 한쪽은 바로 종로를 따라 줄지어 서 있는 건물들의 뒷면이다. 그러니까 이곳의 음식점들은 이 건물들의 뒷벽을 마주보고 있는 것이다. 어디서나 그렇듯이 건물들의 뒷쪽은 더럽고 지저분하다. 앞쪽에서 볼 수 없던 건물의 또 다른 실체를 거기에서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피맛골‘은 서울의 실체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차를 타고 지나가며 보는 종로의 건물들은 요란하게 치장을 하고 있지만, ‘피맛골’에서 보는 그 뒷면은 음침하고 지저분한 몰골을 하고 있다. 더운 김을 내뿜는 환풍구들이며 어지럽게 뒤엉킨 전깃줄들이 눈을 괴롭힌다. 그리고 그 앞에 음식점들이 줄지어 서 있다. 지독하게 착잡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피맛골‘이라는 간판을 달아 놓고 안내판을 세워 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풍경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일이다.

종로2가에 이르러 ‘피맛골’은 삼성이 화신백화점을 허물고 세운 ‘밀레니엄 타워’ 옆골목에서 다시 시작된다. 이 골목은 종로에서 공평동으로 들어가는 길인데, 이곳도 역시 서울의 유명한 ‘먹자골목‘이다. ‘피맛골’보다 나은 환경이기는 하지만, 시끄럽고 낡은 곳이기는 마찬가지다. 이 골목과 연결된 ‘피맛골‘로 들어서면 주차장을 만나게 되고 그것을 빙 둘러싸며 음식점들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주차장 안쪽 벽에 붉은 페인트로 화장실이라고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근처의 여러 음식점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동화장실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화장실은 문이라고는 없이 벽에 남자용 소변기를 붙여 놓은 형태이다. 이곳에서 볼일을 보노라면 지나가는 사람은 누구라도 그 뒷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해야 할까? 서울에서 가장 엽기적인 장소를 꼽으라면 나는 단연 이곳을 들고 싶다.

키작은 한옥들 사이로 어지럽게 이어진 골목

음식점 사이로 난 좁은 길을 지나면 역시 음식점과 술집이 있는 커다란 건물을 만나게 된다. 한때 극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우미관이다. 우아한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나는 이 건물이 아직 남아 있는 게 큰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미관은 무참하게 헐려 버린 화신백화점과 함께 식민지시대 종로의 근대화를 상징하던 건물이기 때문이다. ‘장군의 아들‘ 김두한 씨가 주먹으로 이름을 날린 곳도 여기였다. 이런 점에서도 우미관은 우리가 기억할 만한 ‘역사적 장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장군의 아들’과 연관시켜 흥미롭게 꾸며 볼 수 있는 곳이 아닐까? 그러나 지금 이곳은 그저 지저분하고 낡은 곳일 뿐이다. 밤이면 휘황한 불빛이 사람들을 불러들이지만, 구태여 찾아가고 싶지 않은 그런 종류의 장소일 뿐이다.

군데군데 훼손되기는 했지만 동대문까지 이어지는 ‘피맛골‘에서 가장 붐비는 곳은, 종로2가 YMCA 뒷골목에서 인사동 입구까지 이어지는 부분이다. 해가 지면 이곳은 밝은 불빛과 젊은이들로 가득 찬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지나가기가 힘들 정도이다. 이곳의 음식점들은 대체로 건물 자체가 대단히 부실하고 결코 훌륭하다고 할 수 없는 음식들을 판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이 이곳으로 몰려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교통이 편리한 도심은 젊은이들이 서로 만나기에 좋은 곳이다. 그리고 뒷골목에 자리잡은 값싼 음식점들은 가난한 젊은이들이 술잔을 나누기에 좋은 곳이다. 가난한 늙은이들이 탑골공원 옆의 싼 음식점들을 찾듯이, 가난한 젊은이들은 이곳의 음식점들로 모여드는 것이다.

종로 안쪽에 ‘피맛골‘이 있고, ‘피맛골’ 안쪽에 ‘골목길‘이 있다. 키 작은 한옥들 사이로 어지럽게 이어져 있는 골목길은 한국의 전통적 공간구조의 한 상징이다. 세상을 떠난 가수 김현식 씨가 불러서 널리 알려진 <골목길>이라는 노래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애창곡이 된 데에는 그의 뛰어난 노래솜씨뿐만 아니라 이런 사정도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잘 알다시피 그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골목길 접어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

커튼이 드리워진 너의 창문을

말없이 바라보았지

그러나 다소 감상적인 이 노랫말에서 그려진 골목길은 우리의 골목길이 아니다. 우리의 골목길에 커튼이 드리워진 창문 따위는 없다. 도둑을 막으려고 설치해 놓은 방범용 창살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노랫말은 어쩐지 잘 지어진 2층 양옥을 떠올리게 하지만, 종로의 골목길에서는 이런 집을 거의 볼 수 없다.

‘피맛골‘에 이어진 종로 1가의 골목길은 작은 음식점들로 가득 차 있다. 그 길은 키 큰 건물들에 가린 ‘피맛골’처럼 어둡지는 않지만, 깨끗하지 않고 좋은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다. 음식점들이 큰 간판을 내걸고 창을메뉴로 도배해 놓은 것도 마찬가지다. 그 좁은 길에 간판들을 어지럽게 세워 놓은 것도 마찬가지다. 음식이 맛있는 곳들도 많이 있지만,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는 곳은 드물다. 분위기도 그렇고 위생도 그렇다. 비닐봉투에 담아 길에 내놓은 음식물 쓰레기들은 속을 거북하게 할 정도다. 이런 걸 ‘한국식‘이라고 하기에는 영 개운치가 않다. 이리저리 휘어도는 길 자체는 좋지만, 그 길의 풍경과 분위기는 좋지 않다. 이 좋은 골목길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무엇인가 분명히 바뀌어야 한다.

종로의 골목길이 놓여 있는 상황을 더 잘 알기 위해서는 위에서 내려다볼 필요가 있다. 무교동에 새로 들어선 SK빌딩 대회의실은 이곳을 내려다보기에 안성맞춤이다. 이곳에서 열리는 심포지엄을 참관하러 갔다가 심포지엄은 안 보고 창 밖으로 도심 풍경을 한참 보다가 온 적이 있다. 저 앞의 인왕과 백악은 정말 보기 좋았다. 그러나 바로 앞의 종로는 참으로 희한한 모습이었다. 높이며 방향이 제각각인 건물들 사이로 한옥지구가 보였다. 해장국으로 유명한 청진동이었다. 지붕에 가려 골목길은 잘 보이지 않았다. 골목길을 가리고 있는 지붕의 모습이 가관이었다. 기와 대신 시커먼 남루를 뒤집어쓰고 있거나 기와를 쓰고 있더라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 주위의 건물들도 형편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어설프게 지은 건물들이 세월이 흐르면서 낡고 때를 탄 모습들이었다. 그 사이를 어지럽게 누비고 다니는 까만 전깃줄의 모습이라니.

깨끗하고 즐거운 길로

인사동을 지나 낙원상가 아랫길을 건너 또 다른 골목길을 찾아간다. 묘동, 와룡동, 낙원동 등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아마도 현재 도심에 남아 있는 가장 커다란 한옥지구일 것이다. 동쪽으로 종묘와 이어지고 북쪽으로 운현궁과 이어지는 이곳의 골목길은 입구를 빼고는 주택가로 지나간다. 그런 만큼 종로 1가의 골목길보다는 한결 깨끗한 모습이다. 종로 3가의 ‘피맛골‘에서 한 블럭 정도 떨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우선 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살기에는 아주 불편한 곳이다. 열린 문 틈으로 언뜻 엿보니 툇마루며 마당에 내놓은 이런저런 세간들로 다소 어지럽다. 근처의 영세상인들이 이곳에서 살지 않을까? 종로의 보도에 줄지어 있는 그 수많은 노점상인들이 이곳에서 살지 않을까?

종묘에서 낙원상가로 이어지는 길을 건너 종로 3가의 ‘피맛골‘과 곧바로 이어지는 쪽의 골목길은 조금 다른 모습이다. 이곳의 주택들도 대체로 영세상인들의 집으로 보이는데, 탑골공원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에는 여관들이 줄지어 서 있다. ‘먹자골목‘이 아니라 ‘여관골목‘인 것이다. 서울에서 여관은 잠을 자는 곳보다는 성교를 하는 곳으로 더 잘 활용된다. 뒷골목에 음침하게 자리잡고 있는 이 여관들을 도 그런 인상을 짙게 풍긴다. 이 부근에서 잠을 자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여관들 사이에는 손수레 보관소도 있다. 노점상인들이 힘든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 손수레들은 이곳으로 돌아와 내일을 기다린다. 이 언저리에서 숨어 있듯 자리잡고 있는 ‘남과 남’이라는 이름의 카페를 보았다. 한글 이름 아래 일어로 쓰여진 글귀를 보니 ‘남자와 남자가 만나는 곳‘이란다. 골목길은 이렇듯 고단하고 다채로운 삶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자동차가 지배하는 서울에서, 그것도 도심에서 골목길은 이채로운 장소이다. 그러나 그것의 구실은 이채로운 것을 훨씬 뛰어넘는다.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생태적으로 그것은 서울의 도심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귀중한 하부구조이다. 그러나 그 미래는 밝지 않다. 무교동과 신문로 등을 거쳐 현재 수송동을 몰아친 변화는 도심의 골목길이 맞이하게 될 미래를 보여준다. 과거의 모든 자취를 완전히 지워 없애고 수직으로 우뚝 선 높고 큰 건물들이 들어서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영세상인들의 집들은 거대 자본의 빌딩이나 ‘경희궁의 아침’처럼 부자들을 위한 아파트 단지가 된다. 지저분한 골목길은 깨끗한 차도와 보도로 바뀌어 버린다. 그러나 이와 함께 도시가 오랫동안 간직해 온 역사와 문화와 자연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이다.

서울이 그 역사성을 제대로 살리려면, 큰 변화가 아니라 작은 변화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큰 변화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박정희(다카키 마사오) 이래 지속되어 온 ‘채우기‘가 아니라 잘못 들어선 것들을 없애는 ‘비우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도심의 골목길은 초라하지만 서울을 이른바 ‘문화도시’로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것을 깨끗하고 즐거운 길로 만드는 데에 서울의 희망이 있다. 그것을 없애버리는 것은 서울을 죽이는 것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문화연대 공간환경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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