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만들어 낸 새로운 ‘싸움의 기술’
작은 용산 ‘두리반’을 지켜낸 사람들의 기록
강지나 『참여사회』 시민기자
6월 여름밤의 명동 한복판, 카페 마리의 철거현장에 사람들이 모였다. 촛불행사 같기도 하고, 공연 같기도 한 이 집회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왈츠-일명 두리반 왈츠’가 흘러나왔다. 폐허로 변한 황량한 건물 앞에서 듣는 감미로운 기타와 아코디언의 연주. 이 감동을 선사한 이들은 바로 두리반을 지켜낸 사람들이다.
2011년 6월 8일, ‘작은 용산’ 두리반에 대한 이주대책과 관련 분쟁에 대한 타결이 있었다. 두리반은 안종녀 씨가 운영하던 서울시 동교동에 위치한 칼국수집이다. 마포구가 동교동 167번지 일대를 ‘지구 단위 계획 지역’으로 지정하고 건물주가 재건축 시공사인 남전DNC에 건물을 팔면서 2009년 12월 24일 철거가 이뤄졌다. 하루아침에 생계수단을 잃은 안종녀 씨는 흉물스럽게 변한 건물 안에 들어가 531일 동안 농성을 벌였고, 긴 싸움 끝에 적정한 수준의 이주보상금과 그간의 모든 민형사상 고소 고발을 취하하는 조건에 합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큰 승리는 두리반 주인의 투쟁만으로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쓸쓸한 철거현장, 말벗이라도 되겠다며 모여든 그 곳
531일 동안 농성을 하면서 두리반은 비어 있었던 적이 없었다. 주인부부의 후배들, 지인들부터 시작해서 알음알음 소식을 전해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 홍대거리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인디밴드와 예술가들이 매일같이 드나들었다.
“2년 전 처음 방문했을 때 유채림, 안종녀 부부와 후배 두 분만 있었다. 어둡고 흉물스런 가게 안에 언제 또 용역들이 들어올지 모른다는 공포와 추위에 떨면서 계셨다. 처음에는 그저 오가면서 말벗이라도 해드려야겠다 생각했다.”(김성섭 씨, 성미산주민대책위)
김성섭, 김미영 부부는 홍대거리에서 인쇄와 홍보물제작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두리반을 알리고 싶어 한겨레신문에 실린 유채림 씨의 기고 글을 크게 인쇄해서 벽보로 붙이는 일부터 시작해 부부는 각종 홍보물 제작, 대책위 활동, 기금 모금 등등의 활동을 통해 전격적으로 두리반에 결합하게 되었다.
매주 월요일, 생존권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엄보컬, 김선수 부부. 대학시절 밴드활동을 했고 2008년 촛불집회 때 기타와 아코디언을 들고 거리에서 음악회를 연 이후 용산농성장, 기륭전자, 두물머리 등 투쟁 현장이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달려가 연주와 노래를 했다. 이들은 두리반에서 매주 월요일 ‘하늘지붕음악회’를 열었다.
“용산참사를 겪으면서 반성한 것이 저분들이 망루를 짓기 전에 ‘우리는 뭐했나?’였다. 망루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을 때 짓는 것인데, 적어도 그런 절박감을 느끼기 전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두리반에서는 그럴 수 있어서 다행이다.”
우리의 저항은 밤공기를 가득 채운 기타 선율로
엄보컬, 김선수 부부에 이어 홍대 인디밴드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두리반이 위치한 곳이 인디밴드들의 주요 활동무대라는 특성과 촛불과 용산참사 등의 사건들을 겪으며 형성된 저항문화가 잘 맞아떨어졌다. 어느새 두리반에서는 ‘하늘지붕음악회’, 영화상영, ‘칼국수음악회’, ‘사막의 우물-두리반’ 등 매일 다채로운 행사가 열리기 시작했다.
“두리반에서 공연 할 때면 각자 자기 방식으로 지지하고 연대한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지금까지 두리반을 오고가면서 본 것들을 영상으로 찍었는데 거기서 얻은 영감과 이미지로 음악도 작곡했다. 내가 작곡한 게 아니라 두리반이 내게 준 거 같다.”(멍구스틱 밴드 젤리 씨)
이들은 올해 노동절, 두리반을 매력만점 농성장으로 만든 ‘51+뉴타운 컬쳐파티’를 기획했다. 유료관객 3000여 명이 공연을 즐겼고, 참여한 인디밴드만도 70여 개에 달했다. 이 일을 기점으로 두리반에 자발적으로 남아 농성장을 지키는 사람들이 늘었고, 이런 연대의 힘이 결국 협상타결에 큰 원동력이 되었다.
“인디 친구들도 두리반을 통해 개발과 철거에 대해 생각하면서 인디밴드들이 죽어가고 있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인식이 생겼다. 그런 인식들이 자립음악가 조합을 만들고 상호작용을 하게 했다. 두리반은 폭력사태 없이 온전히 문화만 가지고 싸움에서 이겼기 때문에, 철거투쟁을 해왔던 사람들에게도 싸움의 방식에 대해 다시 한 번 환기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엄보컬 씨)
민주, 문화, 연대- 폭력 없이 이기는 힘
두리반의 승리를 만든 요인은 이뿐이 아니다. 성미산대책위, 진보신당, 민노당, 한국작가회의, 기독교장로회 등의 인사들로 구성된 대책위는 두리반의 정치사회적 역량을 탄탄하게 했다. 철거용역이 물리력으로 쉽게 부술 수 없는 사회적 연대의 힘을 형성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결정이 대책위 단독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매주 열리는 반상회가 의사결정을 주도했다.
“참여한 모든 이들에게 열려있는 반상회에서는 토론을 통해 이런 원칙을 확인했다. 누군가 어딘가에 살고 있을 때 그곳이 개발된다면 살고 있던 사람들의 생존권은 유지시켜야 한다는 것과 이 원칙이 모든 건축과 관련된 법에 적용돼야 하고 이번 두리반싸움에서 실현돼야 한다는 것이었다.”(김성섭 씨)
이런 민주적인 운영구조, 문화와 연대의 힘은 6개월에 걸친 지난한 협상과정 동안 뒷심을 발휘 했다. 보상은 물론 그간 있었던 사태에 대한 사과도 받아냈고 이런 사태를 방관한 마포구청과 경찰서가 조인식에 참여하게 했고, 최초로 철거민이 직접 합의문을 작성하는 일도 가능하게 했다. 심지어 협상 후 바로 퇴거하는 게 아니라 미리 계획돼 있었던 토론회, 축하파티 등의 행사를 하면서 투쟁을 정리할 수 있는 한 달간의 유예기간도 확보했다.
두리반의 성공사례는 지금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재개발 철거 농성장 곳곳에 영향을 줄 것이다. 벌써 제2의 두리반으로 불리고 있는 명동 3구역 카페 마리에서는 펜스를 뜯고 철거된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인디밴드들이 연대농성을 위해 하나둘 모여들고 있다. 대한민국 곳곳이 사막의 우물-두리반이 되는 그날까지 이들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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