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5년 03-04월 2025-03-04   8604

[여는글] 불확실한 봄날의 약속

Aaron Burden, Unsplash

이 글을 읽어보실 즈음이면 봄비가 지나고 완연한 봄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들 많이 기다리고 기대하셨을 거라 짐작합니다. 겨우내 주말마다 광장에서 함께 나눈 시간이 차디찬 얼음을 깨고 새잎을 틔우는 거름이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앞서 경험했듯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기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저절로 씨앗이 뿌려지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건 아니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다시 마주한 따뜻한 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기도 합니다. 이런 마음에 마침 도착한 책이 한 권 있습니다. 미국의 소설가 시그리드 누네즈의 장편소설인데 제목은 《그해 봄의 불확실성》입니다. 이야기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지구를 뒤덮은 2020년 봄을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도시가 봉쇄되고 이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는 그곳 그때, 노년의 소설가는 앵무새와 대학생을 만나 제목처럼 ‘불확실’한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주인공은 “나는 기억한다.”를 반복하며 삶을 반추합니다. 그 가운데 중학교 1학년 때 받은 숙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날에 대해 쓰는 작문 숙제”로 “자신에게 그날이 왜 중요했는지, 그리고 지금은 그날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쓰라는 과제였습니다. 훗날 소설가가 되는 당시 중학생은 이렇게 적습니다. “행복한 날이자 슬픈 날, 시작의 날이자 끝의 날이었으며, 새로운 세계가 손짓해 부르는 날이자 옛 세계가 시간 속으로 사라진 날이었다.” 우리가 마주한 올해 봄날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월이 흘러 더 인상적이고 더 치명적이고 더 화려한 날을 겪어 다른 날을 떠올리게 되더라도 그날을 묘사하는 방식은 이와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날을 어떻게 시작할 수 있을까요. 아니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이 소설은 주인공이 오래전에 읽어 내용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유일하게 머릿속에 남아 있는 문장 “불확실한 봄이었다.”로 시작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이어가도 될 적절한 출발이겠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소설에 등장하는 또 다른 첫 문장을 전하고 싶습니다. “〈매우 불완전한 글이 될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새 소설을 시작하면서 일기에 쓴 말이다. 그럼에도, 열정적이었다.” 완벽한 계획이 아니어도, 모든 게 준비된 시도가 아니어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더라도, 시작해야 하고 출발해야 하는 때가 있고, 불완전한 무엇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열정적으로 달려가야 하는 일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봄이 당도한 까닭 아닐까요.

그저 즐기면 충분할 봄을 굳이 운명처럼, 숙명처럼 풀어낸 사연이 있습니다. 바로 〈참여사회〉가 전해드릴 ‘그해 봄의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편집위원장 역할을 맡고 처음 전해드린 지난 10월호 여는글에서 “시민사회 전체를 우리의 독자로 확장해 가고자” 한다는 방향을, “발행의 주기, 전달의 방식, 소통의 방법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더 나은 방향을 위한 방법을 찾아 시도”해 보겠다는 다짐을 전해드렸습니다. 그리고 이번 봄 첫발을 내딛으려 합니다. 우선 이번에 발행하는 3월호부터 〈참여사회〉는 격월 발간으로 전환합니다. 기존의 역할과 내용을 유지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할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고자 합니다. 이로 인해 생길 소통의 틈새는 참견레터, 카카오톡 메시지, 문자 등 다변화된 매체를 통해 더욱 신속하고 보기 쉽게 전달할 예정입니다.

물음표가 많으실 줄 압니다. 저를 비롯한 편집위원과 편집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나름의 답을 내보려 과감하게 물음표를 세웁니다. 하나의 답을 찾으려 하지 않겠습니다. 함께해주시는 회원 그리고 독자와 깊고 넓게 이야기를 나누며, 떠올린 답안의 의미와 가치를 축적하여 다양한 필요와 요구, 기대와 요청에 부응할 유연하고 다양한 답들을 마련하겠습니다. 모두가 대번에 수긍할 답에 얽매이지 않겠습니다. 마침표가 아니라 다음 물음표를 부르는 궁금하고 기대되는 답안들을 궁리하여, 점차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지지하며 참여하는 과정과 단계를 착실히 밟겠습니다. 의도를 알 수 없고 결과를 평가할 수 없는 애매한 답을 내지 않겠습니다. 틀리더라도 명확한 이유와 방향을 바탕으로 수정과 조정이 가능하도록, 더 나은 답으로 가는 의미 있는 과정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훗날 이 시기를 돌아보며 ‘그해 봄의 불확실성’ 속에서 ‘그럼에도, 열정적’이었음을, 그리하여 ‘새로운 세계가 손짓해 부르는 날이자 옛 세계가 시간 속으로 사라진 날’로 기억될 수 있게 하겠습니다. 저희의 약속과 더불어, 모쪼록 여러분의 응원과 지지를 기대합니다.


박태근 〈월간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책을 만들고, 온라인 서점에서 MD로 책을 팔고, 여러 매체에서 책을 알려왔습니다.

〈월간참여사회〉 ‘읽자’ 코너에서 필자로, 편집위원회에서 편집위원으로 오래 활동하다 편집위원장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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