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내버스 풍경
오랜만에 내가 전에 운전하던 회사의 버스를 탔다. 아는 기사다. 나보다 서너 살 위인 형님뻘 기사인데 친하게 지냈던 분이라 날 보더니 반가워한다.
“오랜만이네. 요즘 잘 지내지?”
차비를 내지 말라고 손짓을 한다.
“아, 선배님, 여전하시네요.”
맨 앞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갔다.
그런데 이 선배가 자꾸 돈 통을 들여다본다. 가만 보니 손님이 카드를 찍은 뒤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데 현금을 내면 돈 통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왜 저럴까? 내가 운전할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내가 버스 운전을 그만 둔 지도 벌써 6년째이니 뭔가 변해도 많이 변했겠지. 왜 그럴까 하고 유심히 살펴봤다.
어떤 중학생이 돈 통에다 현찰을 내고 들어간다. 그 선배가 또 돈 통을 들여다본다.
“학생, 얼마 냈어?”
그 학생이 들어가다 말고 대답한다.
“800원이요.”
“800원 내면 안 돼. 학생도 현찰 내면 천 원이야.”
그 학생은 돈이 없는지 머뭇거린다.
“다음부터 현찰은 천 원 내야 돼.”
“네.”
선배 기사가 구시렁대면서 운전대 왼쪽에 걸어 놓은 점퍼 주머니에서 100원짜리 동전을 하나 꺼내더니 그 돈 통에 넣는다.
“아니, 선배님, 왜 선배님 돈을 넣어요?
궁금해 내가 물었다.
“말도 마. 요즘 골치 아파 죽겠어.”
까닭은 이렇다. 카드로 손님들이 요금을 내면 아무 상관이 없는데 돈으로 내면 정확히 내는지 확인해야 한단다. 종점에 들어가서 돈 통을 열었을 때, 현찰을 낸 사람들 숫자대로 돈이 맞지 않으면 기사들한테 불이익이 간다는 이야기다. 불이익이라고 해 봐야 고정 기사에서 스페어기사(대기 기사)로 내려가는 거지만 버스 기사들한테는 무척 중요한 일이다. 자기 고정 차가 없으면 여러 가지로 일하기가 나쁘다. 일하는 시간도 들쭉날쭉하고 쉬는 날도 일정하지 않고, 무엇보다 이 차 저 차를 하려면 버스가 몸에 익지 않아 운전하기 참 힘들다.
“아니, 손님이 돈을 모자라면 적게 낼 수도 있지, 그걸 어떻게 하란 말이죠?”
“그러니까 골치 아파서 내가 보태서 맞추는 거야?”
“그런데 왜 100원을 보태요? 그러면 맞아요?”
“어린이 두 명이 탄 걸로 하는 거지. 어린이는 450원이잖아. 그러니까 두 명 탄 걸로 하면 900원이잖아.”
아하, 그렇게 해서라도 돈을 맞추는 거구나. 참 많이도 변했다. 옛날엔 버스기사가 ‘삥땅’을 쳤는데 이젠 버스기사가 돈을 보태야 되는구나.
사실은 버스기사보다 회사가 문제였다. 내가 2004년 말에 버스회사를 나올 무렵 준공영제가 됐다. 그러니까 손님이 낸 돈을 자치단체인 서울시에다 다 내고 버스회사는 기사들 임금과 회사 운영비만 받는 형태였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버스카드로 돈을 내는 손님보다 현찰을 내는 손님이 더 많았다. 그러니까 버스 회사에서는 밤에 돈 통을 털어 현찰을 삥땅쳤다. 시에서 돈 통을 못 열게 뚜껑 따는 곳에 봉인을 해 놓는 등 관리를 했지만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거친 회사 놈들이 그런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그렇잖아도 시에서 회사로 주는 ‘운영비’(운송원가)가 너무 많아 시는 늘 적자였겠지. 그러다가 마을버스에서 회사가 돈 통을 털어간다는 것을 한 기사의 ‘고발’로 알려졌고, 시내버스에서도 그런 일이 있을 거라는 걸 시에서 짐작했겠지.
그 뒤부터는 시에서 더욱 현금 관리를 철저히 하게 됐다. 타는 손님 숫자와 낸 돈이 정확히 맞아 떨어져야 회사가 삥땅을 안 친 걸로 인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불똥은 버스기사한테 튀어 버렸다. 이렇게 버스기사가 돈을 채워 넣으면서까지 돈을 맞춰야 하니 말이다.
“아니, 선배님. 그럼 돈을 부족하게 내는 손님이 있을 거라는 걸 미리 계산해서 버튼을 한두 번 누르지 않으면 돈이 대충 맞기도 하고, 안 맞더라도 조금 남지 않나요?”
손님이 몇 명 탔는지 회사가 어떻게 아냐면, 손님이 탈 때마다 숫자를 세어 버스 기사가 버튼을 누르기 때문이다. 한 명이 타면 한 번, 열 명이 타면 열 번을 누르는데 어른 손님이 탔을 때 한 번 안 누르면 1,000원이 남는 거 아닌가. 그러면 아까처럼 돈을 부족하게 안 내는 사람이 있어도, 탄 사람 숫자보다 돈이 모자라지는 않을까 해서 물어본 말이다.
“남아도 골치 아파. 그것도 고과 점수에 들어가.”
하긴 어떤 사람은 돈이 모자라면 100원을 덜 낼 거고 어떤 사람은 200원, 300원 덜 낼 텐데 그것 또한 맞아떨어지기는 힘들겠다. 그렇다고, 돈이 맞아 떨어지지 않아도 ‘내’가 삥땅치지 않았는데 불이익이 온다면 그것 가지고 회사와 싸워야지, 버스 기사가 자기 돈으로 채우면서 일한다는 게 말이 되나? 내가 흥분해서 그런 이야기를 선배 기사한테 말했다. 그랬더니 그 선배 기사는 체념한 듯 말한다.
“회사랑 싸워봤자 나만 손해지. 뭐.”
“…….”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이제는 서민들이 버스를 타면서 돈이 좀 모자라도 슬쩍 내고, 기사가 눈치를 채도 아무 소리 하지 않고 태워 주는 그런 넉넉한 인심(?)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겠다. 그런데… 만일 내가 지금까지 버스 운전을 계속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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