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던 작은 도시, 위트레히트
그로닝겐을 떠나 위트레히트(Utrecht)로 가는 길은 2시간 정도 걸렸다. 위트레히트가 암스텔담보다 약간 남쪽에 있는 도시이기 때문에 전날 왔던 길을 거의 다시 돌아가는 셈이었다. 출발할 때만 해도 그렇게 날씨가 나쁜 게 아니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빗발이 점차 거세어졌다. 다행히도 위트레히트 역에 내렸을 때에는 약간 주춤하기는 했지만 우산을 받쳐들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 위트레히트대학 생물학상점 코디네이터인 마이크 루슨(Maaike L rsen)이 예약해준 곳까지 찾아가야 했는데, 일단 홈페이지에서 지도는 찾았지만 모르는 동네에서 길찾기는 쉽지가 않았다.
시내버스를 타고 내려보니 집들만 잔뜩 있는 골목이어서 도저히 호텔이 있을 것같지 않는 동네였는데, 이리저리 골목을 들쑤시다 보니 집들이 연이어 있는 사이에 조그만 간판이 보였다.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들었고 가족들이 운영하고 있는 것같았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틀을 묵기로 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경비절감을 위해 네덜란드에서 여름 3일 동안 두 명이 무제한 기차를 탈 수 있는 ‘서머투어(summer tour)’ 티켓을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월 : 암스텔담→그로닝겐’ ‘화 : 그로닝겐→위트레히트’ ‘목 : 위트레히트→트웬테→암스텔담’으로 이동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젖은 옷들을 간단히 수습하고 쉰 다음에 거리로 나섰다. 우리가 있던 곳이 도시 외곽의 주거지여서도 그랬겠지만 암스텔담보다는 훨씬 조용하고 안정된 느낌이 드는 도시였다. 위트레히트에도 운하가 많았는데, 암스텔담에서 보던 것과는 약간 달랐다. 암스텔담의 운하가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운하였다면 위트레히트는 마치 우리나라의 반지하집들처럼 운하 옆에 가게들이 있어서 맥주를 팔거나 식사를 팔기도 하고 있었다. 날씨만 좋았다면 운하 바로 옆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도 나름대로 운치가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위트레히트 과학상점 코디네이터들을 만나기로 한 곳이 어딘 지 미리 알아둘 필요도 있었기 때문에 도심 쪽으로 옮겨갔다. 길은 좁았고 서울 강남에서처럼 직각으로 교차하는 사거리가 없어서 방향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헨젤과 그레텔’에서처럼 돌이나 빵을 이용하는 방법을 이용할 수도 있었겠지만 일단 찾아가기로 했다. 다행히도 다음 날 찾아가야 할 약속 장소는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저녁을 먹고 동네 산책을 하다가 돌아오는 길에 내가 잘못된 길을 주장하는 통에 약간 헤매기는 했지만, 어쨌든 돌아왔다. 약간 젖은 몸을 씼은 후에 서울에서 가져온 남아있던 죽엽청주와 라면을 나눠먹고 다음 날 일찍 일어나야 했기에 비교적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시차적응이 되어서 그런지 제 시간에 잠들 수 있었다.
아침에도 추적추적 계속 비가 내렸다. 다행히 위트레히트에서 하루 더 묵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가벼운 가방만 들고 나올 수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10분 앞서 도착하니 이미 몇 명의 코디네이터들은 도착해 있었다. 위트레히트 대학의 과학상점은 그로닝겐 대학의 과학상점처럼 분산형[학과별로 독립적인 과학상점이 있는 형태]이지만 중앙사무국이 있다는 점에서 그로닝겐 대학과는 차이가 있다. 위트레히트 대학 과학상점의 중앙사무국은 과학상점의 홍보와 대외적인 네트워크 활동을 하고 있으며 7개 분과별 과학상점이 있다.
마이크 루슨은 우리의 기대보다 훨씬 넘어서 치밀하게 프로그램을 준비해주었다. 오전에는 과학상점에 대한 프로그램이었고 점심식사 후에는 위트레히트의 과학박물관과 복원한 풍차를 돌아보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위트레히트 대학의 코디네이터들은 모두 여자였고 나이도 젊은 편이었으며 전일제로 근무하는 사람들보다는 1주일에 3∼4일 정도 일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같았다.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강조되어서 그런지 과학상점 코디네이터도 다소 여성적인 직업이 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 프로그램은 우리의 예상과는 약간 어긋나는 주제에서부터 시작했다. 과학상점도 대학 내의 기관이고 과학상점 활동이라는 것은 대학 외의 기구와 공동으로 사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트레히트 대학의 계약연구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과학상점에서 중요한 것은 교수, 학생, 시민 또는 사회단체라고 생각했던 내게 이런 경험은 매우 신선했지만 다소 대학 내부의 기술적인 문제들을 많이 다루는 바람에 그리 흥미롭지 않았다. 이어서 위트레히트 과학상점에 대한 일반 현황을 들었는데, 매우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었고 그 이후에는 실제로 과학상점을 이용했던 고객의 얘기를 듣는 기회가 있었다. 이번 네덜란드 방문기간 내내 우리는 히딩크를 비롯한 월드컵 ‘특수’효과 때문에 우호적인 대접을 받을 수 있었는데, 이 고객도 히딩크 바로 옆동네에서 산다고 해서 분위기를 훨씬 부드럽게 해줬다. 이 고객이 위트레히트와 상당히 거리가 떨어져 있었지만 ― 2시간 정도 거리 ― 관련을 맺을 수 있었다는 게 흥미로운 점이었다.
이후 이영희 대표님이 우리 모임에 대해 간단히 소개를 하고 몇 가지 질문을 받고나서는 오전 프로그램이 끝났다. 그리고 나서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중년 코디네이터께서 말을 걸면서 자기가 한국 아이를 입양해서 키우고 있다는 얘기를 했는데, 순간 부끄러워졌다. 그동안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보고 듣던 일을 직접 겪으니까 어떻게 말을 해야 할 지 어려웠다. 그쪽에서 어떤 의도에서 말을 한 걸까, 아마도 친근감을 보여주려고 했던 게 아닐까? 왜 이렇게 아이를 “수출”하느냐고 질책을 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서로가 처해있는 맥락 때문에 그런게 아닐까라는 등의 생각이 짧은 시간에도 머리 속을 오고갔다. 다행히도 이영희 선생님이 적당한 선에서 답을 해주셔서 넘어갔지만 쉽지 않은 얘기였다.
오후에는 두 명의 코디네이터와 함께 ‘위트레히트 과학문화투어’를 시작했다. 처음 찾아간 곳은 과학박물관이었다. 과학박물관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매우 깔끔하고 아담한 건물이었다. 과학박물관은 위트레히트의 역사박물관의 기능도 약간 갖고 있으면서 초등학생들을 위한 체험학습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서 박물관도 고정물을 전시할 수 있는 부분과 여러 프로그램을 순환시킬 수 있는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 번 돌아보고 나서는 과학박물관 관장하고 대화하는 시간이 준비되어 있었다. 여기에서는 대중의 과학이해(PUS, 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에 대한 전통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좋은’ 과학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과학자)이 ‘잘 모르는’ 대중에게 가르쳐주는 형태를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에는 풍차구경을 갔다. 처음에는 갑자기 무슨 풍차구경인가라는 생각을 했는데, 나름대로 과학상점과 관련이 있었다. 위트레히트 대학의 역사학상점에서 수행한 프로젝트를 통해 과거에 있었던 풍차를 복원한 것이었다. 우리는 흔히 풍차라고 하면 밀을 빻는다고만 알고 있지만 이 풍차는 톱질을 하는 풍차였다. 어떤 할아버지의 안내를 받으면서 풍차 내부에 들어가서 내부 원리를 살펴보니 상당히 재미있었다. 풍차가 한 방향으로 돌게 하기 위한 장치, 회전운동을 직선운동으로 바꾸기 위한 장치, 그리고 운하를 타고 들어온 목재를 이송하기 위한 동력연결부 등은 “전직 공대생”인 나로서는 매우 재미있었다.
오후 다섯시 정도가 되어 헤어졌다. 이메일 하나만 보내고 찾아온 우리들에게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을 제공해준 이들에게 매우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말 우리나라에서 과학상점이 잘될 수 있도록 하는 게 고마움에 답하는 거라는 “모범생”같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착한” 생각도 들어야 하는 게 아니겠는가.
위트레히트 과학상점은 그리 특이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는 이미 과학상점이 아주 일상적인 활동의 하나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과학상점이라고 하면 “헌신”이라는 게 뒷받침되어야 하는 활동처럼 생각되지만 위트레히트에서 우리가 본 과학상점은 부러울 정도로 안정되어 있었다. 우리에게 ‘환영합니다’라는 한국어로 오전 프로그램을 진행해준 코디네이터가 기억난다. 내일은 지난 여름 만났던 물데르나 루슨에게 메일을 보내야겠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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