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대위원회 아시아 2003-07-07   1764

공공개발사업의 정치경제

오랫동안 토목과 건설은 한 나라의 경제 개발을 주도하는 제일 산업이었다. 사업이 시작된 이후 각국의 유역개발 및 댐정책 모델이었던 미국의 테네시강유역 개발사업은 대공황을 탈출하는데 있어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전후 일본의 고도성장이 지속된 수십년 동안 토건부분은 공공사업의 중심이었고, 국가예산의 많은 부분이 이 부분에 할애되었다. 현재 낙후한 개발도상국들의 지도자들은 세계은행과 같은 초국적 자본의 원조를 바탕으로 하는 대규모 개발사업을 유치하는 것을 제일 목표로 추구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에서 1962년에 시작된 국토종합개발계획은 1950년대 일본의 국토종합개발계획에서 그 모델을 찾고 있으며, 댐이나 도로건설, 다양한 하천공사, 해안매립을 통한 간척사업 등의 대규모 공공개발사업들은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투자부문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다양한 국토개발사업들은 과연 그 기대했던 효과를 달성했는가? 대답은 그렇게 긍정적이지는 않다. 테네시강 개발공사는 운영상의 비효율로 인해 이제는 다른 생존방식을 강구하고 있고, 일본의 국토개발사업들

은 결국 국토환경의 파괴와 부동산 가격 폭등의 결과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정·관·재계 부패의 가장 큰 온상을 제공하고 있다. 선진국에서 이미 포기한 많은 댐건설 개발 사업들은 ‘원조’라는 이름으로 개발도상국에서 그대로 진행되고 있지만, 이러한 개발들은 지역의 토착적 관계시설과 생활방식의 파괴를 초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형 국토개발 사업들은 여전히 ‘경기부양’과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끊임없이 그 규모를 불려가고 있다. 도대체 무엇이 이 힘을 잃지 않게 만드는가?

창작과 비평사에서 비교적 오래 전에 번역되어 나온 호주 학자 개번 매코맥1)의 『일본, 허울뿐인 풍요』 (원제: The Emptiness of Japanese Affluence, 한경구외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8) 제1장 ‘토건국가’에 보면 대규모 공공개발 사업을 통해 유지되는 그 이면의 정치경제구조가 잘 설명되어 있다. 이것은 비록 일본의 사례를 분석한 것이지만, 오랫동안 일본의 근대화와 경제개발 방식을 모델로 삼고 있는 한국과 제3세계의 공공개발 사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맥코맥은 전후 미국의 정치경제의 핵심 구조의 성격의 특징으로 “군산복합체”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건설업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일본의 정치경제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관·재계의 왜곡된 담합과 유착관계를 “토건국가(土建國家)”라는 표현으로 설명한다. 여기에서 토건국가는 건설이라는 행위를 통해 경제개발을 주도하면서, 권력의 재생산과 이윤의 분배가 이루어지는 체계를 가리킨다.

흔히 토건국가라 불리는 체계에서는 대규모의 “나눠먹기 체계”가 자연스럽게 나타나는데, 여기에는 어마어마한 공공자금의 분배를 결정하는 국가의 행정부와 관료, 지방과 중앙수준의 정치조직, 사업을 발주하는 회사간의 강력한 결속―흔히 이를 “철의 삼각”이라 한다―을 통해 그들만의 “공동이익”이라는 고리를 완벽하게 형성한다. 따라서 이러한 공공사업에서는 어떠한 정책이 얼마나 합리적으로 정당하게 진행되는가가 아니라 사적인 목적이나 이익, 즉 흔히 말하는 정치적 고려가 주요한 결정 근거가 된다. 그리고 일단 사업이 발주되면 유착과 가격조작, 뇌물이 오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매코맥이 여기에서 지적하는 토건국가의 문제는 단순히 이 관계에서 나타나는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를 탓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이와 같은 체계가 가지는 가장 큰 문제는 경제 팽창의 추진이나 건설의 목표 및 우선순위가 사회나 공동체의 욕구를 대변하는 사회세력에 부응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 자체가 스스로의 확대재생산을 목표로 하는 건설업계 자체의 필요에 의해 결정됨으로써 경제적인 자원을 낭비하고 사회적으로 왜곡된 분배체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즉 한 국가의 공공 개발사업들이 시장에 대한 고려나 사회적 요구와 무관하게 이루어지고, 이것은 과거 냉전시기에 미국이나 소련의 군산복합체와 유사하게 국가의 부를 빨아들여 이를 비효율적으로 소비하면서 마치 암세포와 같이 성장하면서 국가의 재정위기와 환경파괴를 남겨놓는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오랫동안 토목과 건설을 통한 대규모 국토개발계획들이 2차대전 이후 일본이 이룩한 경제 성장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지만, 그것은 지속가능하지도, 모방할 수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경제성장과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내세워지는 대규모 개발사업의 파괴력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인도의 여성 작가인 아룬타티 로이2)의 『생존의 비용』(최인숙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3)중 「공공의 더 큰 이익」 부분에도 잘 기술되어 있다. 로이는 나르마다 강 유역에서 대규모 댐건설을 두고 벌어진 일련의 갈등과 수몰민들의 희생과 공공개발 사업의 효과에 대한 과대망상적 집착의 허황함을 아주 상세하면서도 신랄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공공의 더 큰 이익」은 인도의 나르마다 강위에 건설될 3,200개의 댐 가운데 하나인 사르다르 사로바르 댐 건설 계획과 추진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도에서 이 계획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인류 역사상 가장 크고, 야심적인 하천 유역 개발 계획이라고 내세운다―많이 들어본 이야기다. 그러나 이러한 야심찬 계획과 대단한 공익 추구라는 명분 뒤에는 “개발원조금”을 둘러싼 이권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야기인즉 이렇다. 제3세계의 공공개발 사업은 대개 차관에 의존한다―여기에 가장 적극적인 투자자는 세계은행이다. 이때 투자자들은 대개 개발 프로젝트의 컨설턴트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이들은 이 컨설턴트를 통해 개발원조금의 명목으로 차관을 빌려준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 댐을 건설하는데 필요한 설비와 기술 및 인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배려(!)한다. 결국 “개발 원조금” 가운데 대부분은 그것을 제공했던 나라나 투자자에게 다시 돌아간다. 이렇게 해서 대규모 개발원조를 통한 공공사업 추진으로 인해 인도가 세계은행에 갚아야 할 돈은 자신들이 빌린 돈을 훨씬 상회하게 되었고, 이들의 경제적 종속을 강화한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대부분의 개발기금은 인도의 특권층의 부를 늘리는데 이용되고, 그 나머지 희생은 개발사업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는 빈민층들에게 강요된다.

매코맥과 로이의 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공공사업의 정치경제는 한국의 사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에서 국토 개발을 기본으로 하는 대규모 공공개발사업, 소위 국책사업은 일단 한번 결정되면 엄청난 규모의 예산이 투입되기 때문에 지역주민의 지지가 아주 높다. 이러한 이유로 지방이나 중앙 정치인들은 국책사업 추진을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것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그의 정치적 생명을 유지한다. 그리고 일단 사업이 시작되면 대규모 개발업자와 투자자본들이 끼여들게 되고, 기존의 이권에 덧붙여 새로운 이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 이것은 대규모 개발업자와 정치인, 관료, 지역의 유지들 사이에 강한 결속력을 만들어내고 대부분의 공공개발사업들이 가지는 비효율성과 경직성의 기초를 만들어낸다. 이리하여 대규모 공공개발 사업들은 마치 발 아래에 깔려 숨소리도 내지 못하는 작은 것들을 보지 못하고 먹이를 찾아 나서는 거대한 공룡처럼, 스스로의 재생산과 팽창전략에 따라 앞으로 나아간다.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새만금사업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 그러나 매코맥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사회나 공동체의 욕구를 대변하지 못하는 공공개발사업은 결국 국가 자원의 왜곡된 분배를 초래하고, 결국은 국가의 재정위기와 되돌릴 수 없는 환경파괴를 남겨놓는다는 사실을 이제 직시해야 한다.

매코맥과 로이의 글은 공공개발사업의 폐해를 고발한 책이 아니다. 이 글들은 그 폐해의 고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경제성장과 공공이익이라는 이데올로기 아래 간과되는 다양한 가치들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두 책 모두 각종 공공기관 및 국제기구의 통계수치에 근거하여 글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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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기획서평에서는 “개발의 정치경제”를 다룬다. 따라서 개번 매코맥의 책에서는 제1부 ‘정치경제’, 아룬다티 로이의 책에서는 1부 ‘공공의 더 큰 이익’이 주로 다루어졌다.

1) 개번 매코맥: 1974년 영국 런던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 받음. 현재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 태평양·아시아사학과 교수. 오스트레일리아 학술원 회원. 1962년이래 일본을 꾸준히 방문. 쿄오또대학, 코오베대학, 리쯔메이깐 대학 객원교수 역임. 일본·한국·중국의 현대사에 대한 저서 다수.

2) 아룬다티 로이 (Arundhati Roy): 1961년 인도에서 태어나 건축을 공부하였으며 시나리오 집필 및 영화 연출 이력이 있다. 1977년 소설 『작은 것들의 신 The God of Small Thing』으로 영국 부커 상을 받으며 유명작가가 되었으며, 환경·반핵·반세계화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 정치평론집 『권력의 정치학 Power Politics』, 『무한 정의의 대수학 The Algebra of Infinite Justice』등이 있다.

오은정 | 시민과학센터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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