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논쟁 2_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는 것
장 은 주 _ 영산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I. 들어가는 말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을 소리 높여 외치기 시작했다. 아마도 확연하게는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 열풍이 불었을 때부터였을 것이다. 그 때부터 ‘대한민국’이라는 말이 일상어가 되고, 태극기가 패션 소재가 되었다. 황우석 박사는 자신의 거짓 연구를 ‘대한민국의 기술’이라는 포장을 통해 온 국민을 줄기세포라는 이름의 비루한 욕망에 사로잡히게 하더니, 드디어 8․15를 광복절 대신 대한민국의 건국절로 하자는 정치 세력이 나라의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대한민국을 사랑하자’는 그 보무당당한 권력의 외침을 사람들은 그저 박태환과 김연아에 대한 칭찬쯤으로 여기는 듯하다. 물론 다른 종류의 대한민국 소리도 우렁차다. 역시 태극기가 거리를 수놓았던 87년 6월 항쟁에서는 무슨 ‘애국청년동맹’ 같은 학생운동조직들이 앞장섰었고, 지난 2003년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 시위를 거쳐 2008년의 촛불 집회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다름 아니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소리 높여 외치며 정치적 저항의지를 불태웠었다. 가히 ‘대한민국주의’의 탄생이라 할 만하다.
이건 단순히 민족주의는 아니다. 민족주의와 유사하거나 연결될 부분이 있긴 한데, 대한민국주의는 어떤 맥락에서는 반북적이고 반민족주의적이다. 국가주의의 냄새가 나긴 한다. 그러나 혐오스러운 전체주의적 국가주의자들만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외치는 시민들이, 그것도 아주 자발적으로 그리고 매우 명랑하게 대한민국을 소리 높여 외치기도 한다. 그렇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눈여겨보아야만 하는 대목이 있다. 이 대한민국주의는 단지 분단국가의 (엉뚱한) 반민족(주의)적 ‘보수 우파’의 새로운 이데올로기만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또한 어떤 시민적 열정 또는 희망의 표현이기도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누군가처럼 이를 모종의 전체주의적-국가주의적 DNA의 고집스러운 발현의 징표 정도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우리에게는 거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나는 이 대한민국주의가 민족주의만큼이나 불온하고 위험스러운 요소들을 갖고 있다고 본다. 그 국가주의 냄새는 역겹기까지 하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다른 한 편으로는 때때로 ‘친북 좌파’라는 부당한 공격을 당하곤 하는 우리 대한민국의 초라한 진보적 민주주의자들이 이제는 결코 회피할 수 없는 문제들에 맞닥뜨리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대한민국은 무엇인가? 우리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가? 사랑해야 하는가? 또 그렇다면 어떻게? 말하자면 어떤 ‘민주적 애국주의’ 또는 ‘진보적 애국주의’의 가능성과 필요에 관한 문제라 할 수 있다.
나는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민주주의자는, 그가 세계시민주의자든 사회민주주의자든 자유민주주의자든 보수주의자든, 대한민국이 자신들이 터할 수 있는 유일한 공동의 대지임을 인식하고 그 대한민국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진보적 민주주의자는 더 더욱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애국주의는 민족주의적이어서도 국가주의적이어서도 안 된다. 그러니까 철저하게 보편적 인권과 개인의 자율을 보호하고 신장시키는 것을 지향하는 애국주의여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의심하겠지만, 나는 이런 애국주의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매우 절실하게 필요하기까지 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애국주의가 지금 지리멸렬한 상태로 방향감각을 상실한 듯이 보이는 이 땅의 진보 정치의 재구성을 위한 좋은 출발점도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무엇보다도 뉴라이트라는 뚱딴지같은 이름을 달고 있는 우리의 품위 없는 속물적 우파의 문화적, 지적ㆍ도덕적 헤게모니를 깨기 위한 결정적인 무기를 손에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뉴라이트’에 맞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뉴레프트’ 같은 정치적 대립구도를 형성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런 생각은 상식적이고 통념적인 생각은 아니다. 내 생각의 바탕에는 민주공화국으로서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한 특별한 이해가 놓여 있다. 우선 진보적-민주적 애국주의의 가능성과 정당성을 따져본 뒤(II), 그것은 결국 민주공화국의 원리와 제도들에 대한 헌신 위에서 그 이념을 더 완전하게 실현시키기 위한 공화주의적인 ‘헌법애국주의’의 기본 지향 속에서 표현되어야 함을 살펴보고(III), 나아가 그런 헌법애국주의의 참된 현실적 착근 가능성을 위해서는 우리가 민주공화국의 이상을 단지 정치적 이상으로서만이 아니라 또한 하나의 ‘인간적 이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함을 주장할 것이다(IV). 마지막으로 이런 고찰을 바탕으로 우리 진보 정치가 뉴라이트의 대한민국주의가 갖는 부정적 영향력에 맞서 새로운 민주적 애국주의를 추구해야 할 필요를 논의해 보고자 한다(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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