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님, 세상이 온통 뒤죽박죽입니다. 나라의 경제가 엉망이고 사회가 어수선합니다.
물론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시아가 다함께 경제위기에 처해 있고 미국과 유럽도 안전지대만은 아닌 것으로 보여집니다. 세기말이라 더욱 그런 느낌을 받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정부마저 그런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현상중의 하나는 국민의 정부가 과거 야당시절에 내놓은 많은 공약들이 뒤집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그렇게 철저하게 공약했던 일들이 정권을 잡자말자 뒤집으니 국민들은 혼란스러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들이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님을 선택할 때는 다른 지역감정, 대통령님의 개인적 역정등을 고려하여 표를 찍었을 수도 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국민회의의 공약사항이 한나라당 또는 자민련보다 훌륭하고 국가 장래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라를 위기에 내몬 한나라당보다는 국민회의가 훨씬 깨끗하고 책임있는 정부를 이끌 것이라는 판단을 한 데에는 바로 그러한 공약들의 참신성을 보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한 공약들이 바로 부패방지법 제정, 인권법 제정, 정치개혁등 맑고 밝은 사회를 향한 조치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요공약들이 대부분 변질되거나 철회, 또는 지연되고 있는 것은 바로 국민회의의 개혁의지의 실종이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부패방지법의 핵심조항이라 할 특별검사제(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의 포기라든가 인권법에서의 인권위원회의 독립성 보장 포기등이 그러한 예입니다. 이러고서는 당초 예상한 법의 정신을 살릴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바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고사성어가 그대로 해당될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할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개혁의 실종 또는 지지부진이 바로 대통령님의 공과로 귀결된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법무부장관, 정책위의장이 총대를 매고 앞장선다고 하더라도 그 최종적 책임은 대통령에게로 모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대통령께서는 사사건건 사안을 직접 챙기시는 것으로 소문이 나 있는데 그러한 개혁입법의 부진은 바로 대통령의 의지로 보지 않을 수 없지 않습니까?
이미 적지 않은 국민들이 이 정부의 개혁성에 대해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IMF경제위기가 그 터널을 벗어나고 있는 느낌을 줍니다만 그것이 다행스러운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이 위기 국면에서 그동안 경제위기와 국가붕괴의 원인이 된 개발 독재의 잔재를 완전히 벗겨내고 새로운 사회패턴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2건국을 주창하신 배경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런데 그러한 근본적 국가개혁의 노력을 등한시하고 경제회복의 임시적인 땜빵식 손질에만 연연한다면 결코 이 위기를 근본적으로 타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 경제지표가 조금 좋아지는 것을 반가워하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개혁의 시즌입니다. 개혁은 타이밍이라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한없는 세월이 대통령님께 남아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월은 화살같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기득권층의 저항과 언론의 비판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 나라가 튼튼한 기반 위에 설 수 있도록 개혁의 고삐를 당겨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님, 이제 늦추어진 개혁작업을 서둘러주십시오. 온 국민의 간절한 바람입니다.
1998.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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