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4-02-12   943

<진한이의 폭력디비기> 이리 와봐 내가 팔베개 해 줄게

평생의 고통으로 기억될 수 있는 “성희롱”

성별에 따라 극명하게 나눠지는 범죄가 있다. 성희롱을 비롯한 성 관련 범죄이다. 일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가해자의 대부분은 남성이고 피해자는 여성이다.

지금도 많은 여성들이 수많은 장소에서 성희롱을 경험하고 있다. 다른 범죄와 달리 성희롱 가해자는 별다른 죄책감도 가지지 못한다. 그냥 좋은 감정으로 한 것이라고 치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금방 기억 저편으로 잊어버리고 만다.(나 자신도 인식을 못한 채 가해자가 되어 있는지 모른다)

반면에 성희롱을 경험한 사람들은 정신적 충격으로 오랜 시간동안 그 기억을 잊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끄럽게도 남성인 나 자신도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은 지금까지 생생하게 머리 한 곳에 저장되어 있다.

성희롱을 당한 장소는 다름 아닌 군대였다. 이 얘기는 가끔 술자리에서 농담으로 얘기 한 적은 있지만 진지하게 누구에게도 밝힌 적이 없는 얘기이다.

21살 때였다. 당시 격투기의 매력에 푹 빠져 있던 때라 몸을 만들기 위해 무던히도 많은 운동을 했다. 특히 멋있는 가슴을 만들려고 평행봉을 위시로 해서 수많은 웨이트트레이닝을 했었다. 생각처럼 멋있는 가슴은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상당히 튀어나오긴 했던 것 같다.(체계적인 훈련을 못한 결과였다) 하지만 입영 날짜를 앞두고 수많은 회식자리에 그 근육들은 점점 살로 변해가고 있었다.

입영하는 당일에는 그동안 길러왔던 가슴의 근육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비계덩어리로 변하고 말았다.(지금까지 회복이 안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비극의 씨앗이 될 지는 몰랐다. 6주 동안 힘들었던 훈련소를 마치고 자대로 가게 되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내가 2년 동안 지내야 할 내무반을 배정 받았다.

내무반에 들어서는 순간 13명의 내무반 선임 병들이 일제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환호와 함께 말이다.

“야,,,이 새끼 귀엽게(?) 생겼네. 사회에서 뭐하다 왔어?”

“(거의 악을 쓰며) 학교 다니다 왔습니다”

“(음흉한 눈 빚으로) 흐흐 그래? 너 침상 내 옆자리로 써. 알겠지?”

“(겁을 집어먹은 말투로)네,,,, 알겠습니다”

당시 필자의 내무반에는 새로 입대한 신병들이 고참들 옆에서 자는 것이 암묵적 합의였다.

며칠은 별 다른 문제없이 지냈던 것 같다. 근데 어느 날이었다. 옆에서 자고 있는 선임 병이 갑자기 내 옆에 바짝 붙어서 귓가에 속사였다.

” (손을 펼치며) 이리 와바 내가 팔베개 해줄게”

자연스레 내 머리는 그의 팔로 가 있었다. 그 고참은 팔베개를 한 채 이러 저런 얘기를 해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선임 병은 느끼한 목소리로 나에게 한마디했다.

“야 근데 너 목욕할 때 보니까 가슴이 장난 아니더라. 왜 그렇게 커”

“사회에서 운동을 하다 쉬어서 그렇게 됐습니다”

” 그래? 이리 와봐 내가 한번 만져보자”

그리고는 가슴을 손바닥으로 주무르기 시작했다. 고참들에게 말 한마디 못하던 이등병 때라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있어야 했다. 점점 만지는 수준이 아니었다. 나로 인해 어떤 희열을 느끼는 것 같았다. 수치심이 밀려 왔다. 온 몸에 뱀이 휘둘러 있는 느낌이었다. 서러운 생각까지 밀려왔다.

선임 병의 횡포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 한 채 그렇게 절망 할 수밖에 없었다. 무기력하게만 느껴지는 나 자신이 너무나 싫었다. 선임 병에게 맞거나 얼차례를 받는 것은 수치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마도 그 순간이 군 생활에서 가장 큰 위기였던 것 같다. 조금만 더 그런 상황이 지속되었더라면 탈영병으로 전락해 사회적 미아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서서히 세월이 지나 조금씩 후임 병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중 압도적인 몸매와 외모를 가진 후배가 들어왔다. 그 친구는 내가 경험한 몇 배의 고통을 맛보아야 만 했다. 그 친구가 괴로워하던 모습을 지금까지 잊을 수가 없다.

군대에서의 경험은 지금까지 내 삶에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가끔은 그런 기억들이 떠올려질 때가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좋은 경험으로 남아 있다. 성희롱의 경험이 얼마나 끔찍하고 몸서리 쳐지는 것인지 생생하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회사, 지하철, 술집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성희롱이 발생하고 있다.

가해자의 변명은 대부분 비슷하다.

“너무나 아끼는 후배라 나도 모르게 그랬다”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러냐”

“술이 과해서 생각이 안 난다”

난 그런 변명을 하는 사람에게 그 고통이 어떤지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그렇게 쉽게 생각하는 그 행위들이 평생을 고통으로 기억될 수 있는 폭력이라는 사실을 가해자들은 알기나 하는 걸까?

오늘따라 신문 한 곳을 장식하고 있는 카피가 유달리 눈에 들어온다.

“중·고교 여성교사 22% 성희롱 당한적 있다”

전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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