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4-02-20   1014

<안국동 窓> 한-칠레 FTA 광풍이 지나간 자리

한-칠레 FTA(자유무역협정)가 국회를 통과한 2월16일은 우리사회가 아직도 야만이 지배하고 있음을 증명한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지난해 7월8일 국회에 제출된 이후 세 차례 본회의 처리가 무산되면서 한-칠레 FTA에 대해 우리사회가 보인 모습은 한 마디로 이성의 마비 그 자체였다.

보수언론과 정치인, 정부와 재계, 학계가 한 목소리로 한 칠레 FTA가 처리되지 않으면 마치 한국경제가 무너질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여 국민 여론을 호도하였다. 시체말로 FTA 국회 비준에 올인한 것이다. 정치적 입장에서는 사사건건 대립해온 ‘참여정부’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보수언론이 한 칠레 FTA에 대해서는 너무도 호흡이 잘 맞았다. 보수언론의 거짓보도, 사실왜곡, 자의적 해석은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

무엇보다도 비극적이면서 희극적인 장면은 한-칠레 FTA가 통과된 순간에 수천의 농민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그 소식을 접한 청와대는 회의 중에 환호의 박수를 쳤다는 것이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참여정부’인가. 낯선 서울 땅에 올라와 지하도에서 잠을 자면서 한-칠레 FTA를 반대해온 수십만의 농민은 이 땅의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한-칠레 FTA는 과연 농민들을 우리사회의 ‘왕따’로 만들면서까지 밀어붙일만큼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 정부가 칠레를 FTA의 첫 상대로 잡은 것은 다른 나라들과 FTA 체결을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연습상대로 잡았다고 하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우리의 실익은 작고 농업부문에 대한 피해가 예상보다 크다는 것이 밝혀졌다.

칠레에 대한 우리나라의 수출액은 4-5억 달러로 전체 수출액의 0.3%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칠레는 이미 다국적 기업의 무한경쟁시장으로 우리의 공산품이 수출이 늘어날 여지도 많지 않다. 반면에 정부의 당초 예상과는 달리 칠레는 농업강국으로 FTA가 체결되면 과수 뿐 아니라 축산, 시설원예에 커다란 피해가 발생할 것이 알려지면서 농민들의 반발이 시작된 것이다.

정부가 칠레와의 FTA 체결에 따른 농업부문에 대한 피해에 대한 충분한 연구없이 한-칠레 FTA를 추진한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그러나 정부는 그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협상을 중단하기는커녕 이해 당사자를 배제한 밀실 협상을 하더니 결국에는 문제가 생기면 사후적으로 대책을 수립하겠는 밀어붙이기식 태도로 일관하였다. 농민들이 반발하면 FTA 지원금을 늘려주는 식으로 원칙없는 정책을 되풀이하였다.

한-칠레 FTA를 둘러싼 우리사회의 갈등은 국회를 통과하면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한-칠레 FTA는 우리사회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우선 FTA는 국익증대에 기여하고, FTA에 반대하는 것은 집단이기주의라는 식의 잘못된 이데올로기가 형성된 것이다. FTA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FTA가 경제성장, 물가안정, 국민후생의 증가 등 국익을 증대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FTA는 반드시 경제성장과 국민후생의 증가, 국제수지의 개선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그 반대의 사례도 우리는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또한 FTA가 설사 경제성장이나 수출증대를 가져온다 해서 반드시 국민대중의 삶의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동아시아 및 남미의 거듭된 경제위기에서 보듯이 무분별한 개방과 자유화는 초국적 금융자본에 의한 종속 심화와 국민경제의 불안정성의 증대를 가져오고, 노동자의 권리, 인권, 환경 등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한-칠레 FTA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한다. 정부는 당장 올해 안에 싱가포르, 일본 등과 FTA 체결을 서두르고 있고, 그 외에 아세안, 멕시코, 호주, 미국 등과 FTA를 준비하고 있다. 자유무역협정은 무조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유무역협정은 국제경쟁력을 가진 초국적 대기업(예,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의 이익은 극대화하는 반면에 경쟁력이 없는 부문(중소기업이나 농업부문)에는 심각한 타격을 준다.

그렇지만 FTA는 이익과 비용의 배분이나 부담에서 공정성을 담보한 메커니즘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지금 사상 최대의 수출을 기록하고 있다. 경제성장률도 과거의 고도성장에 비하면 낮지만 매년 3-5% 이상의 안정적 성장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경기는 장기침체에 빠져있고, 농민들이 빚더미에 허덕이고 빈부격차는 날로 심해지고, 신용불량자가 400만 명을 넘어서고, 실업자가 날로 늘어나고 동시에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하고 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대외적으로 개방과 자유화를 추진하면서 그에 대응하기 경쟁력을 앞세운 무리한 구조조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구조조정을 통해 사람을 짤라내고 경쟁력을 키워야 기업이 산다고 하는데, 그 기업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미 우리 나라의 주요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주인은 외국인이 아닌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개방이며 누구를 위한 경쟁력인가. 일반 국민들의 생활은 IMF 경제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고 하는데, 연일 상종가를 기록하는 주가 상승의 과실은 어디로 누구에게 가고 있는가.

한-칠레 FTA의 광풍은 지나갔다. 이성을 찾아 무엇이 국익이고, FTA와 같은 신자유주의 적 경제정책이 과연 국민대중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차분히 공개적으로 따져보아야 한다. 만약 한 칠레 FTA와 같은 우를 앞으로 전개될 한 일 FTA 등에서 되풀이 해서는 안 된다.

박진도(참여사회연구소 운영위원,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