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4-02-23   562

<안국동 窓> 최대표 퇴진선언이 한나라당 살릴 수 있나

거대 야당 한나라당은 어디로 갈 것인가. 최병렬 대표 퇴진 요구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심각한 내분 양상을 보이던 한나라당의 당내 갈등이 수습국면에 접어들었다. 퇴진요구를 거부하던 최 대표가 가까운 시일에 전당대회를 열어 새 대표에게 대표직을 이양하고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병렬 대표의 퇴진과 새 대표 체제의 출범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최병렬 대표 때문에 한나라당이 위기를 맞은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의 위기의 뿌리는 창당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97년 신한국당과 민주당의 합당으로 창당된 한나라당이 지금까지 잘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하나도 없다. 한나라당은 활력적이지 못하고 무기력한 모습만 국민에게 보여주었다. 북풍, 안풍, 세풍, 차떼기, 방탄국회, 면책특권을 남용한 무책임한 폭로와 선동, 비리의원 체포동의안 부결, 비리의원 구출작전 이외에 한나라당이 과반수를 넘는 원내 1당으로서 한 일이 무엇인가.

15대 대선에서 패배해 야당이 된 뒤 정권상실감에 빠져 야당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거의 ‘사보타지’에 가까울 정도로 사사건건 국정에 훼방만 놓았고, 그 태도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IMF 체제에서 정권을 넘겨받은 김대중 정부가 IMF 체제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한나라당은 무엇을 했는가. 복지 확대 정책을 두고 한나라당은 ‘사회주의’라고 색깔론 공세를 폈다. 민족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6.15 남북공동선언의 발표로 한반도에 평화의 분위기가 고조될 때 한나라당은 무엇을 했는가. 김영삼 정부 때보다도 적은 액수의 대북지원을 ‘퍼주기’라고 몰아쳐 남남갈등을 불러오는데 앞장섰다.

야당은 ‘정치의 소금’이며 동시에 ‘정치의 등불’이다. 정권이 썩지 않도록 만드는 소금의 역할이 야당의 존재가치이다. 동시에 국민이 현 정권에 대해서 실망하고 좌절했을 때 다음 선거에서 야당을 뽑아주면 된다고 하는 희망을 갖게 만드는 등불의 역할이 야당의 존재 의의인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원내 제1당이면서도 소금의 역할도 등불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지난 김대중 정부 기간 내내 정책대안을 제시하거나 합리적 비판을 하지 못하고, 무조건적인 ‘DJ 때리기’에만 의존했다. 특정 정치인을 보호하기 위한 방탄국회와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지지기반인 영남정서에 기대는 모습, 각종 선거에서 지속적으로 자극하던 지역감정 등 지역정서와 ‘반DJ 정서’에 기댄 이 같은 모습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었지만 결정적 국면에서 패배를 할 수밖에 없었다.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기에 ‘이회창 대세론’이 끝내 좌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97년 대선에서 떨어진 뒤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는 줄곧 1위를 달려왔다. 2002년 3,4월 민주당의 국민 경선이 치러지는 동안 노풍이 강하게 분 데다가 호화빌라 파문, 박근혜 의원의 탈당 등이 겹치면서 지지도가 20%대로 곤두박질했던 때를 제외하면 이회창 후보의 지지도는 늘 선두였다. 그러나 이것은 ‘반사이익’의 성격이 강했다. 한나라당이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거나 정책을 내세워 지지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만으로 지지가 유지되었던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민주당의 지지도가 떨어져도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크게 올라가지 않았던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최근에 한나라당의 위기가 악화된 것은 패배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잇달아 패배했으면서도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민심을 읽지 못했다. ‘DJ 때리기’가 ‘노무현 때리기’로 바뀌었을 뿐 한나라당의 태도는 이전과 다름이 없었다. 내부개혁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일과성이었고, 찻잔 속의 태풍이었을 뿐이다.

불법대선자금 문제가 불거지고, 차떼기의 진상이 밝혀졌을 때에도 한나라당은 요지부동이었다. 국민에게 석고대죄한다고 말하고, 정치개혁을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반성의 기미도 없고,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대선자금의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검찰수사를 방해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10분의 1 발언을 문제삼아 정치공세를 했을 뿐이다. 비리관련 의원들의 체포동의안을 거부하고, 구속된 비리혐의 의원을 전격 석방시켜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고, 정치개혁도 선거가 50여일밖에 남지 않은 지금까지 표류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철저한 자기 개혁이 없다면 대표의 교체만으로 한나라당의 위기가 해결되지 않는다. 자기 개혁이 없다면 새로운 대표 체제의 등장은 새로운 문제의 시작이 될 뿐이다. 일단 시급한 과제는 당의 정체성과 당의 얼굴을 재정비하는 것이다. 개혁적 보수, 합리적 보수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 한나라당의 이미지는 ‘기득권세력 중심의 수구 보수’이다. 이래서는 국민에게 미래를 제시할 수도 희망을 약속할 수도 없고, 역동성을 국민에게 보여줄 수도 없다. 21세기의 이미지를 심어주기에 부족하다. 언제라도 찾아갈 수 있는, 늘 내 곁에 있다고 믿을 수 있는 따뜻한 이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당의 얼굴도 마찬가지이다. 이회창 후보로 상징되던 대쪽 이미지는 차갑고 완고한 이미지로 비친다. 국민이 선뜻 다가가기가 주저스러운 것이다. 서청원 의원과 최병렬 의원으로 이어진 이회창 이후의 한나라당의 얼굴은 국민에게 뚜렷한 인상을 주지 못했다.

어쩌면 국민들은 한나라당 하면 서청원 대표나 최병렬 대표보다는 정형근 의원이나 김용갑 의원을 먼저 떠올릴 지도 모른다. 한나라당이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국민이 믿을 수 있도록 이회창 이후의 얼굴을 내세우는 일이 필요하다. 그래야 최 대표가 말한 것처럼 한나라당이 “미래지향적이고 건전. 합리주의에 바탕을 둔 새로운 국민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그렇게 환골탈태하리라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손혁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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