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1L|1159586457.jpg|width=”150″ height=”20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희고 검은 만장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가운데 눈에 들어오는 노란 깃발. ‘율무차 커피 뻔 꿀차 필름’.작은 행상수레가 메뉴깃발을 펄럭이며 영결식장의 말미를 지키고 서 있었다. 행상아주머니는 손님이 뜸한 틈을 타 영결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결사반대,00투쟁,승리쟁취…그런 구호에 익숙한 대학로 행상 아주머니는 아마 속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오늘은 누가 죽었나보네, 그런데 저 양반은 아직 젊어 보이는데 일찍 가셨구만, 쯔쯔…인물도 좋고 인상도 아주 순하게 보이는구만. 아주머니는 바로 옆에서 침통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서있는 어느 진보 단체 젊은 활동가에게 물어봤을지도 모른다. 저 양반은 뭐하던 분이래요? 교수요? 대학교서 가르치는 선생님 말이지요? 근데 왜 돌아가셨나요? 저런, 저런…..아, 커피 한잔요? 예, 천원요. 일회용 커피봉지를 뜯어 종이컵에 따라 넣으며 아주머니는 슬픈 표정을 띤 조문객들 중에 커피 손님은 얼마나 될까 그런 짐작을 해보았을 것이다.
우수를 이틀 앞둔 대학로에는 봄기운이 스멀스멀 거리고 있는 듯도 했다. 하지만 만장 끝 너머로 보이는 하늘을 배경으로 서있는 나뭇가지는 움을 트려는 욕심을 잘 감추고 있었다. 어느 날 파랗게 폭발하듯이 퍼져나갈 기쁨을 아끼려는 듯 나무는, 겨울나무는 그냥 침묵을 지키고 서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모습을 무연히 지켜보고 서있었다.
‘민중의 스승 고 김진균 선생민주사회장’이라는 큰 글씨 아래 단상으로 지식인들이 올라가 고인의 살아생전을 헤아리는 동안 그 단상너머 가려진 곳에서 노숙자 몇몇이 조사를 듣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뭔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영결식 행사 리플렛이었다. 그 노숙자는 읽어 내려가는 중에 간간히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했다. 때 국물에 절은 그의 행색을 보건대 한데 잠을 잔지가 한참이나 된 것 같았다. 아마 이번 한 겨울 내내 공원을 방 삼아 지냈을지도 모른다. 그 노숙자 옆에 쪼그리고 앉은 배드민턴 할머니도 추모사를 듣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 할머니는 배드민턴 라켓을 빌려주고 돈을 받는데 30분이나 한 시간이나 그 가격이 같다. 그렇게 받아서 장사가 되겠냐고 올려 받으라 하면, 그냥 괜찮아요, 똑같게 받아요, 하면서 웃는다. 오가는 이 별로 없는 을씨년스런 한 겨울날에도 할머니는 한결같이 바람을 맞고 앉아 배드민턴 손님을 기다린다.
아마 영결식이 오후 5시 전후였다면 김진균 교수는 이 세상 마지막 길을 떠나기 전 더 많은 이들을 만났을 것이다. 긴 줄로 늘어서 한 선교 단체의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이들을 김 교수의 시선이 지나칠 리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진균 교수를 마지막으로 떠나보내는 영결식장에서는 이상하게도 식장 안에 앉은 사람보다 그 주변에 있는 이들이 그날의 진정한 조문객 같았다. 언제나 사회의 주변을 떠도는 이들이 그날은 한 중심을 차지하는 듯 보였다. 언제나 그들과 함께 하고 싶어 했고, 그들이 좀더 살만한 세상을 만들고자 노심초사했던 김 교수가 그들을 초대한 듯했다.
김진균 교수, 그가 그렇게 급히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 ‘좋은 날’이 더 앞당겨질지도 몰랐을 일이다. 너무 서둘러 그는 가버렸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고 기댈 곳 없는 사람들을 두고, 그는 떠나갔다. 그가 사랑하고 위해줘야 할 사람들은 아직도 저렇게 남아있는데…..그는 아마 많이 미안했을 것이다. 차마두고 가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시대 민중의 스승은 봄이 오는 길을 뒤로 하고 그렇게 떠나갔다. 그를 보낸 빈 마당에는 비둘기 떼가 다시 자리를 잡고 희망 없는 얼굴로 남은 노숙자들이 벤치에 몸을 누인다. 다시 빈 얼굴이 된 행상 아주머니는 하릴없이 뻔데기 냄비를 뒤적거린다. 그들은 아마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김진균 교수를 몹시도 보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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