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4-02-25   694

<경제프리즘>기업지배구조 개선안 ‘홍수’, 양보다 질이 문제

SK(주)가 며칠 전 기업지배구조개선안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SK텔레콤(주)도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등기이사의 대거 사임 의사를 발표하는 등 최근 기업지배구조와 관련된 뉴스거리가 많이 나왔다. 포스코의 사외이사 비중 확대도 그러했고, 또 집중투표제를 채택하기로 한 것도 그렇다. 이와 비슷하게 외에도 여러 기업에서 집중투표제를 정관에서 배제하기로 한 조항을 바꾸거나 사외이사를 대거 교체한다는 등 기업지배구조 변화와 관련된 소식이 많이 들려오고 있다.

그 내용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SK(주)의 지배구조개선안의 내용에는 사외이사의 비율을 통상 거론되는 과반수 이상도 아닌 70% 이상이라고 제안한 것이 있다. 그리고 이 발표와 비슷한 시기에 포스코도 사외이사를 60%대로 비중을 늘이고, 다양한 면모의 명망가들을 이사후보로 추천하였다. 또 이사후보를 선출하는 방식과 관련하여 경영진이나 대주주와는 독립적인 이사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높여주는 집중투표제를 채택할 수 있는 정관변경안이 두 회사에서 제출되었다.

IMF 위기로 인해 지배구조관련 제도가 많이 변화했던 98~99년도에 이어, 또 한 번의 위기를 겪으면서 위기는 기회라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기업들이 지배구조에 많은 변화를 주는 상황이다.

하지만 문제는 양이 아니라 질이다. 사외이사가 과반수 이하였을 때에도 사외이사가 제 기능만을 했다면 견제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 두 사람일지라도 이사회 구성원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일방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외이사 수를 늘이는 것만 보고 대단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사람이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되느냐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SK(주)에서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나 그 반대편에서 추천한 소버린측의 사외이사 후보나 일부를 제외하면 명망가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첨예한 문제사안이 발생했을 때 사외이사로서 경영진의 주장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역할까지 그들이 할 지는 그들의 이름만으로는 알 수 없다.

또 SK(주)가 발표한 정관개정안을 보면 눈가리고 아웅하는 얄팍한 수를 쓴 것이라는 비판을 받는 부분이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은 사외이사의 자격을 엄격하게 하겠다는 것으로 이것만 보면 제대로된 사외이사를 뽑겠다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든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형사처벌을 받은 사람은 사외이사가 되지 못한다는 규정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왜 이것이 사외이사의 자격에만 적용되도록 하는 것인지 납득이 안 된다. 현재 이와 비슷한 것은 SK텔레콤의 정관에 있는 규정에 있는데 SK텔레콤의 경우는 사외이사에만 적용하지 않고 사내이사의 자격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이다. 지배구조를 개선한다는 외양은 갖추면서도 SK주식회사의 지배주주가 이 조항에 걸리지 않게하게끔(최태원 이사는 형사처벌이 확정적인 상태이다) 하기위해 교묘히 사외이사로 범위를 제한한 것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리고 집중투표제를 시행할 수 있도록 정관을 고치겠다고 하는 것만 가지고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이미 집중투표제도를 정관에 도입하고 있는 KT의 사례를 보자. 최근 KT노조측이 우리사주조합 지분을 적극 활용하여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하고 집중투표제 방식을 통해 투표를 하자고 했더니, 갑자기 회사측에서는 이사회 규모를 줄이고, 이사선출과 관련된 안건처리 순서를 기존에 해왔던 것과는 다르게 뒤섞었다. 회사측은 이사회 규모를 줄이는 것은 효율적인 이사회운영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안건처리 순서를 바꾼 것은 법적 문제는 없다는 태도다.

하지만 새로 뽑아야 할 이사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효과가 발휘되는 집중투표 방식을 무의미하게 만들기위해서, 정관변경을 통해 이사회 규모 자체를 줄여 이번 주총에서 뽑아야 할 사외이사의 수를 줄이고, 게다가 사외이사중 감사위원이 될 사람들을 먼저 투표하게 하는 방식으로 안건 순서를 예년과 달리 바꾸어 노조가 관심을 기울였던 (감사위원 여부와 상관없는) 사외이사는 1명만 뽑게하는 ‘꼼수’를 부린 것 아니냐 하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회사측의 의도가 뭔지는 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지 못해 모르겠지만 정황을 보면 우리사주조합이나 노조가 주주권에 기반하여 경영참가 또는 지배구조개선에 참여하겠다는 것을 회사측이 세련되지만 교묘한 방식으로 차단하려고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결국 위의 사례들은 제도를 도입하는 것 못지않게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마인드 문제이다. 그래서 지배구조관련 정보나 발표가 홍수를 이루는 것 같지만 진짜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내용인지 아니면 의미없는 변화에 불과한 것인지 신중하게 분석해봐야 한다.

박근용 (참여연대 경제개혁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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