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4-02-26   1382

<진한이의 폭력디비기> 우리 사회 보이지 않는 힘 “빽(background)”

우리사회는 유난히 자신의 빽 그라운드가 중요시되는 곳이다. 학연, 지연, 혈연을 모두 끌어들여 자신의 사회적 입지를 견고하게 다지려고 한다. 심지어 자가용을 몰다가 접촉 사고만 나더라도 자신의 배경을 자랑하며 어떤 식으로든지 상대방을 제압하려고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나는 학창시절 우리나라는 실력만 있으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사회라고 배워 왔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러한 말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얘기인지 알게되었다. 모든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회의 점 조직이 어떠한 힘을 발휘하는지 몇 가지 사건으로 생생하게 경험했기 때문이다.

장면 1

고등학교 3학년 입시 철이었다. 우리 반 친구들은 다들 어떤 학교를 지망할지를 고민하며 소위 말하는 눈치작전을 한참 벌이고 있었다. 나도 그 틈바구니에서 마감직전에 지원률이 낮은 학과를 지망했다. 그러나 나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대다수였는지 지원 할 때까지만 해도 미달이었던 학과가 무려 5대 1이 넘어 버렸다.

실망한 마음으로 학교로 돌아왔는데 친구에게 놀라운 들을 수 있었다.

” 야 넌 지원한 학과 경쟁률이 어떠냐? 난 5대 1이 넘는다. 휴….”

” 흐흐 난 빽좀 썼지. ”

” (놀란 눈으로) 무슨 빽?”

” 아는 분이 내가 지원한 대학에 있어서 창구 뒤로 가서 원서를 냈어. 지원한 학생들 내신성적을 다보고 평균이 낮은 데를 냈지”

당시 선지망 후시험 이었던 학력고사 시절이었다. 그 친구는 학과를 지망하기 전 미리 접수창구 뒤로 가서 지원한 학생들의 내신성적을 미리 볼 수 있었고 평균적으로 제일 낮았던 과를 지원했던 것이다.

도무지 믿기 힘들었던 그 소리에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후에 그 친구는 당당하게 그 과 에 합격할 수 있었다. 12년 지난 지금까지도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장면 2

군대 훈련소 때였다. 정말 훈련소 생활만큼 세상에서 비참한 삶을 사는 곳도 없을 듯 하다. 박박 기며 훈련소 생활을 하고 있는데 조교가 우리에게 희소식을 전해주었다.

“너희들 훈련 열심히 받아라. 열심히 하면 훈련소 생활 끝나고 상이 있다”

“(놀란 눈으로) 뭔 데요?”

“훈련 성적 상위 10등까지 4박 5일 휴가를 보내준다.”

놀라운 소식이었다. 고향에 두고 온 애인도 보고 싶고 사회에서 먹던 음식도 먹고 싶었던 시절이라 휴가는 우리에게 어떠한 선물보다 큰 것이었다.

그 뒤로 부대원들은 죽으라고 열심히 훈련을 받았다. 오직 집에 가겠다는 일념하나로 훈련병들은 죽을힘을 다해 경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유독 다 같이 열심히 하는데 한 동기생만 계속해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심지어 다같이 얼차례를 받는데도 조교들은 이런 발언들은 했다.

“○○○ 훈련병 빼고는 다들 군기가 너무 빠졌어?”

훈련병들은 다들 의아해 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 진한아 쟤가 군기 들었냐? ”

” 아니 제일 빠진 것 같은데. 왜 조교가 저렇게 두둔하는지 모르겠다.”

동기 중에서도 그다지 모범적이지 않았던 그 친구는 유독 조교들의 귀여움을 받았다. 결국 그 친구는 사단에서 1등으로 훈련소를 마쳤다. 멋있는 4박 5일 휴가의 받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의문은 얼마가지 않아 풀렸다. 퇴소식 하기 전 그 친구의 아버지가 고위공무원이라는 사실을 친한 조교로부터 알 수 있었다.

퇴소식 날 그 친구는 멋있는 금메달을 받고 유유히 애인의 손을 잡고 휴가 나가는 장면을 허탈한 심정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장면 3

군대 병장 때였다. 어느 날 부대가 이상한 소문이 들리기 시작했다. 다른 포대(일반적으로 중대)에 거물급 정치인(지금도 거물급이다) 조카가 들어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당시 우리부대에는 수도권에 있고 보병부대가 아니라는 이유로 웬만한 빽이 없으면 못 들어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난 단연코 아무런 빽 없이 운 좋게 들어갔다).

동료 병사들의 반응은 대체로 냉소적이었다.

“여기 그만한 빽 없는 놈이 어디 있어. 그런 놈일수록 더 조져야 해”

“아마 뻥 일거야. 나도 처음 들어올 때 그런 말했다”

그리고는 별탈 없이 지나가는 듯 했다. 그러나 그 친구가 들어 온 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부대에 광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훈련중에 동료들과 함께 선임병 들에게 얼차례를 받았고 그 사실을 아버지께 편지로 말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흥분하여 정치계 거물이라는 그 분에게 아들이 얼차례를 받았던 얘기를 했고 거물급 정치인이었던 그 분은 부대 대대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그러한 사실에 대해 항의를 했다.

그 이후 그 대대는 난리가 났었다. 몇 일 동안 조사가 이루어졌고 때린 선임병과 그 주위에 있었던 모든 병사들은 다 영창으로 끌려갔다. 또한 가혹행위 근절에 대한 정신교육이 그 뒤로도 몇 달은 지속되었던 같다. 난생 처음으로 빽의 위력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그 사건이 있었던 후 그 친구는 우리포대로 전입을 왔었다. 모두다 그 친구를 경계했다. 그 친구는 자신도 일이 그렇게 커 질지 몰랐다고 후회하면서 얘기하던 장면이 머리 속에 떠오른다. 요즘 가끔씩 언론에 나오는 그 정치인을 볼 때마다 그때 일이 생각난다.

아직도 이 사회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각종 인맥을 이용하며 살아가고 있으며 때로는 공정한 경쟁의 원칙을 깨면서 까지 자신의 이권을 차지하고 있다. 그로 인해 피해자들은 평생을 고통스러워하며 지내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가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면 주위에 별다른 빽이 없는 것이 무섭게 느껴 질 때가 있다.

누구나 공정한 경쟁이 보장을 받을 수 있는 나라. 누구나 공정한 판결을 받을 수 있는 나라. 그런 사회가 속히 왔으면 좋겠다.

전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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