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4-03-01   674

<경제프리즘> 경제 우등생 ‘삼성’ 이제 땅으로 내려와야

얼짱과 몸짱 열풍이 온 나라를 한바탕 흔들었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나라에 변함없이 존재하는 ‘짱’이 있다면 성적짱이 아닐까. 성적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집에서 우등생인 아이가 어른에게 예의가 없다 해도 ‘공부한다고 너무 힘들어서’라면서 부모님은 그냥 넘어가는 것이 다반사다. 하지만 그 아이가 성적이 안 좋은 아이였다면 ‘공부도 못하면서 예의도 없어’ 라는 시선과 함께 찬바람이 몰아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성적중심’현상은 학교에서는 더 하다. 일반학생들은 지각을 하거나 숙제를 안 해오면 혼쭐이 나지만 우등생은 ‘늦게까지 공부한다고 힘들었나’ 하는 괜한 동정이 앞선다고 한다. 그 아이가 전교1등을 다투는 최우등생이거나 전국경시대회에서 큰 상이라도 받은 학생이라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분위기다. 특히 그 아이가 ‘떵떵거리는’ 집 아이라면 더 이상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나라 경제에도 이 우등생 이야기는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나라 경제에서 보면 삼성그룹은 최고우등생이다.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규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른바 넘버원이고 특히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의 15%를 차지할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의 자랑이자 국가대표기업이다. 그래서 그런지 삼성과 이건희회장과 관련된 일은 찬사와 칭찬 일변도다. 물론 삼성의 경쟁력 등 찬사를 받아야할 부분도 많지만 건전한 감시업무를 맡고 있는 공권력이나 언론까지도 삼성 앞에만 서면 웬지 작아지는 것은 문제다.

이 사회 다수의 사회지도층(?)은 ‘그래도 돈 버는 기업은 삼성밖에 없잖아’라면서 삼성의 여러 가지 문제점은 별거 아니라는 태도다. 뛰어난 제품경쟁력으로 돈을 잘 버는 우리나라의 최고우등생 기업이기 때문에 다른 문제들은 가능하면 덮어주자는 논리다. 하지만 우등생 기업이라고 불법과 부패를 용인한다면 경쟁력이 좀 떨어지는 일반기업이나 돈 못 버는 중소기업들도 향후 잘 나가기만 하면 다 봐주겠다는 논리가 아닌가. 우리나라의 최고기업이라고 해서 불법정치자금, 정경유착, 탈세, 전근대적 지배구조, 부당경쟁, 노조탄압 이런 문제를 그냥 넘어간다면 이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논리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삼성에 대한 특별대접은 언론도 마찬가지다. LG카드 이슈가 언론에서 대문짝만하게 다루어질 때도 삼성카드 문제는 거의 다루지지 않았다. LG카드 문제에서 대주주의 책임론이 심심찮게 나올때도 삼성카드의 실질적 대주주인 이건희회장의 책임을 논하는 언론은 없었다. 사실 많은 인쇄매체들이 삼성의 돈(광고)에 목이 매였다는 이유로 삼성 대주주에 대한 비판을 금기시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은 모든 신문에서 지겨울 정도로 보지만 이건희 회장에 대한 제대로 된 비판은 눈을 씻고 찾아도 없다. 실제로 삼성 대주주의 문제점을 지적한 상당수의 기고 컬럼들이 그대로 실리지 못한 예를 필자는 잘 알고 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과 이건희 회장의 비교는 애초부터 의미가 없다. 때가 되면 떠날 힘없는 대통령보다는 영원한 ‘삼성공화국’ 황제에 대한 사회지도층과 언론의 애정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그래서 삼성은 뒤가 구린 사안도 힘으로 밀어부친다. 작년 생명보험회사의 상장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위촉된 정부의 생보상장자문위원회가 결국 ‘안’을 제시하지도 못한 채 사르르 사라진 것도 삼성생명이 상장안을 강력히 거부하였기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사실상 자본잠식상태인 삼성카드 증자에 보험계약자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삼성생명이 출자하겠다고 하는 것도 삼성이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다. 한 때 삼성은 보험업법까지 개정해서 삼성생명이 더 많이 출자하도록 시도했는데, 이 또한 삼성의 파워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지난 2월 27일 삼성전자의 주주총회는 삼성의 힘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섬뜩한 장이었다. 불법정치자금 제공과 연류된 이건희 회장, 이학수 본부장 김인주 이사 등이 등기이사로 있는 삼성전자의 주총에서 윤종용 부회장은 자사 이사들이 이 문제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에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었다. 오히려 ‘모든 기업이 다 했는데 왜 삼성을 비난하냐’는 공세가 있었을 뿐이다.

불법정치자금 제공에 대한 주주의 질문이 원천봉쇄당하는 모습을 보며, ‘당신 주식 몇 주나 가지고 있어’라고 회사대표가 소액주주를 나무라는 장면을 보며, 주주총회장 안과 밖에서 삼성측에 의해 소액주주들이 고기짝처럼 끌려가는 장면을 보며, 삼성의 거대한 권력을 체감할 수 있었다. 소액주주들이 떠들어도 국가대표기업 삼성을 건드릴 사람은 이 땅에 없다는 자만심, 대한민국 법 정도는 주무를 수 있다는 오만함을 소액주주들의 흩어진 머릿결, 찢어진 하의벨트, 밀려나가 떨어진 소액주주의 모습에서 알 수 있었다. 원칙보다는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누구든 밀어버리겠다는 삼성의 해결방식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불법정치자금을 수사하는 검찰이나 노무현 대통령까지도 기업인에 대한 처벌은 ‘최소한으로’ 라고 입을 맞추고 있다.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특히 검찰이 ‘경제에 대한 충격을 고려해서’ 기업인(아마 삼성관계자?)은 처벌 흉내만 내겠다는 시나리오라면 이는 80년대의 정치검찰로 회귀하는 것이다. 1995년 노태우씨 비자금사건때에도 유사한 논리로 돈을 제공한 경제권력을 사면해 준 적이 있지 않는가. 서민의 돼지저금통으로 정권을 잡았다는 참여정부에서조차 정경유착 부패에 이렇게 대응한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결단코 없다. 어떤 나라도 부패한 상태에서 선진국이 된 경우는 결코 없기 때문이다.

1959년 국민소득 400달러였던 싱가포르는 현재 30,000달러를 능가하는 선진국이 되었는데 이 나라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부패와 어떤 전쟁을 치렀는지, 국가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정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청렴도(부패지수)는 세계 130여개국 중 50위이며 OECD30개국 중에서 24위이다. 우리의 경쟁국인 싱가폴은 5위, 홍콩은 14위, 일본 21위, 대만은 30위인 것과 비교하면 우리의 부패정도가 어느 정도 심각한 상황인 지 알 수 있다. 진정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위해서라면 경제권력의 부패는 엄격하게, 특히 경제권력이 클수록 더 엄격하게 처벌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대응방식이다. ‘경제충격을 고려해서 최소한 처벌’하겠다는 것은 동업자의 고충을 이해한다는 식의 태도로 경제권력의 도덕적 해이만 조장할 뿐이지 결코 부패를 척결할 수 없을 것이다.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문화, 정치, 검찰에 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제우등생 삼성은 대한민국 권력사슬의 핵심이다. 하지만 경제권력의 정점에 있는 삼성은 이제 지상으로 내려와야 한다. 부패없는 나라를 위해서,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 삼성 스스로 강조하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위해서라도 겸허하게 땅으로 내려와야 한다. 삼성 이건희회장은 부패를 암으로 비유하면서 ‘비정도 경영으로 1등을 하는 것보다 정도경영으로 5등을 하는 것이 낫다’라고 강조한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세계적 기업이 되려면 생산경쟁력에 앞서 윤리경쟁력이 더 절실하다는 사실을 이건희회장은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적 기업으로 나아가는 삼성, 이제 땅으로 내려와 겸허하게 윤리경영을 솔선수범하길 기대한다.

김헌수 (순천향대 교수, 경제개혁센터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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