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정부와 시민단체 그리고 삼성그룹 간에는 소리없는 전쟁이 진행중이다.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일은 늘상 그렇듯이 물론 언론매체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고 있는 전쟁이다.
사건의 발단은 에버랜드의 대차대조표에서 시작되었다. 최근에 확정 발표된 에버랜드의 자산 현황에 의하면 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생명의 주식이 에버랜드 전체 자산가치의 50%를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혹자는, 그리고 어쩌면 일부 둔감한 변호사들 역시, 이것이 무슨 대수냐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로 큰 일이다.
당초 시민단체에서는 금융지주회사법을 떠 올렸다. 왜냐하면 우리 나라의 금융지주회사법에 의하면 어떤 회사가 금융기관을 지배할 뿐만 아니라 그런 지배가 그 회사의 가장 중요한 영업행위인 경우에는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금융지주회사의 인가를 받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버랜드는 그런 신청을 한 적이 없다. 문제는 이런 무사안일한 행동에 대해 현행법이 벌칙 조항을 두고 있다는데 있다. 금융지주회사법 제70조에는 인가없이 이런 행위를 하는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정부와 시민단체 그리고 에버랜드간의 총성없는 전쟁은 이렇게 하여 시작되었다.
막상 전쟁이 시작되고 보니 온갖 구석에서 뜻하지 않은 문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발생하기 시작했다. 아마 관심있는 독자들은 이 사건을 주의깊게 보면서 우리 나라의 금융규제법이 얼마나 엉성하고, 또 우리 나라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삼성의 지배구조가 얼마나 얼기설기 되어 있는지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첫 번째 문제는 이 벌칙조항이 형사처벌 조항이어서 사법적 강제의 주체는 검찰이라는 점이다. 이 조항에 의한 사법적 강제는 검찰이 움직여주어야 제대로 기능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금감위는 이런 현실에 대해 아무런 시정권한이 없는가.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아니 금감위가 그래도 명색이 통합 금융감독기구인데 그런 권한이 없겠는가”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 나라의 법은 예측을 불허하는 반전의 연속이다. 금융지주회사법이나 기타 다른 금융감독 관련 법을 이잡듯이 찾아도 적어도 필자의 눈에는 그런 시정권한이 보이지 않는다. 즉 금감위는 그냥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점은 향후 법개정을 통해 하루빨리 시정되어야 할 문제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금융지주회사법의 공백을 공정거래법이 부분적으로 커버하고 나선 것이었다. 여기서는 훨씬 문제가 심각하다.
문제의 핵심은 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이라는 자회사에 대해 금융지주회사법상의 (사실상) 지주회사일 뿐만 아니라 공정거래법상의 (이 경우에는 명실상부한) 지주회사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금융지주회사법상의 지주회사는 금감위의 인가를 받아야 하지만, 공정거래법상의 지주회사는 법에 규정된 형식요건만 충족하면 추가적 행정행위 없이 자동적으로 성립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에버랜드는 지난 1월 1일자로 공정거래법상의 명실상부한 지주회사가 되었다.
이것은 무슨 문제를 초래하는가. 아주 많은 문제를 초래한다. 공정거래법상의 지주회사는 여러가지 해야 하는 행위와 하지 말아야 하는 행위의 제약을 받는다. 이런 행위는 대략 공정거래법 제8조의 2에 규정되어 있다. 그중 해야 하는 행위의 예를 들어 보면 이왕 어떤 회사를 자회사로 소유하여 지배하려고 할 때는 돈을 조금만 투자하고 주인행세를 하지 말고 충분한 돈을 투자하라는 규정이 있다. 구체적으로 삼성생명과 같이 비상장기업인 경우에는 삼성생명 발행주식의 50% 이상을 소유해야 한다. 에버랜드는 현재 이 조항을 충족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위의 충분한 자본 투자 조항은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일정 기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숨통을 터주고 있다. 그런데 유예기간이 전혀 없는 금지조항이 있다. 공정거래법 제8조의2 제1항 제4호에는 금융기관을 자회사로 소유하는 지주회사(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을 자회사로 소유하는 지주회사이므로 이에 정확히 해당된다)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라는 정책목표에 의거해 다른 국내 산업자본의 주식을 또 소유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만일 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추가로 다른 산업자본 주식을 또 가지고 있다면 이 조항을 위반하게 된다.
이 조항을 위반하는 경우 어떤 제재조치가 가능한가. 공정거래법 제16조에는 이런 위반행위가 있거나 그럴 우려가 있는 경우에 공정위는 당해 행위의 중지나 해당 회사 임원의 사임, 해당 주식의 매각 등 각종 시정조치를 명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 제17조 제4항 제3호에는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 원칙을 위반한 지주회사에 대해서는 위반액의 최대 1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처음에는 매우 조용하게 시작된 이 총성없는 전쟁의 끝이 어디가 될 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특히 공정위의 경우에는 검찰만 바라보아야 하는 금감위와는 달리 직접 칼을 빼들 수 있는 형국이어서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에버랜드가 감독당국이나 사법당국으로부터 어떤 처벌을 받을 것인가라는 점이 아니다. 보다 중요한 점은 수많은 지배와 피지배의 거미줄 연쇄를 통해 복잡하게 구축되어 있는 재벌의 지배구조를 어떻게 교통정리하여 의결권의 과다사용에 따르는 의사결정의 비효율을 교정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참고로 에버랜드의 경우만 보더라도 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의 주주이고 삼성카드는 에버랜드의 주주이고, 삼성생명은 삼성카드의 주주인 그야말로 속보이는 순환출자의 연쇄를 통해 가까스로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순환출자는 또한 당장 현실적인 문제를 초래하기도 한다. 만일 공정위나 금감위가 에버랜드에게 초과보유중인 삼성생명 주식의 매각을 명령할 경우 원론적인 입장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에버랜드의 주주에게 이 주식을 넘기는 것이다. 그러나 삼성카드의 경우에는 이런 주식을 받을 수 없다. 왜냐 하면 그렇게 되면 삼성생명과 삼성카드는 직접적인 상호출자 관계에 놓이게 되고 이는 우리 나라 공정거래법의 금지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번 에버랜드 케이스는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지주회사 제도에 대한 일대 정비의 필요성을 일깨워주는 사례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나라 재벌의 지배구조가 얼마나 후진적인가를 다시 한 번 만천하에 드러낸 계기가 되었다. 정부는 즉각 이런 모순을 시정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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