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논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것은 평안과 풍요의 약속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듯 아름다운 논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공업입국’의 이름으로 문전옥답이 뭉텅뭉텅 사라지더니, 또 다시 ‘지구화’의 이름으로 그렇게 되고 있다. 논이 사라지면서 농민도 사라지고 있다. 정부 정책은 오로지 논을 없애고 농민을 없애는 쪽으로 치달리고 있다.
‘농자천하지대본’. 농사는 이 세상의 근본이라는 뜻이다. 그렇다. 농사는 식량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먹는 것이 생명의 근원이니 식량을 만들어내는 농사는 이 세상의 근본일 수밖에 없다. 혹시라도 우리가 먹지 않고도 살 수 있게 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은 한, 농사는 언제까지고 이 세상의 근본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늘날 ‘농자천하지대본’은 가뭇없이 사라진 옛시대의 문구일 뿐이다. 우리는 농사를 우습게 여기고,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웰빙’을 둘러싼 호들갑이며, ‘황우석’을 둘러싼 야단법석은 그 자체로 극히 모순적이다.
2005년 11월 23일 40대 중반의 한 농민이 죽었다. 한 농민, 전용철 씨는 11월 15일에 서울의 여의도에서 열린 농민집회에 참가한 뒤에 이렇듯 죽음을 맞고 말았다. 그런데 그의 사인을 둘러싸고 커다란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논란의 근원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가 자리잡고 있다. 24일의 부검 직후에 국과수는 “(머리 뒤쪽의 상처가) 정지된 물체에 부딪혀서 생긴 것”이지만, “누가 밀쳐서 정지된 물체에 부딪힌 것인지, 스스로 넘어져서 부딪힌 것인지는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하루 뒤인 25일에 국과수는 기자회견을 자청해서 “가격에 의한 상처는 찾을 수 없었다”며 “넘어져 머리 뒤쪽에 손상을 입고 뇌출혈, 두개골 골절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결국 국과수는 경찰의 폭력으로 죽었다는 농민단체의 주장이 아니라 혼자서 집에서 넘어져서 죽었다는 경찰의 주장을 지지한 것이다. 왜 국과수는 하루만에 결론을 번복했을까? 경찰의 로비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여기서 사람들이 국과수의 존재 자체에 다시금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국과수는 저 악명높은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의 증거를 조작한 의혹을 받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11월 27일 ‘전용철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경찰의 진압 뒤에 쓰러진 전용철 씨를 사람들이 옮기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민중의 소리> 기자가 중요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겼던 것이다.
경찰의 행태는 여러모로 유감스럽다. 폭력적 시위진압은 이미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2003년 가을의 부안항쟁에서도 경찰의 폭력은 큰 문제로 떠올랐다. 군사독재시대처럼 최루탄이며 ‘지랄탄’을 쏘는 일은 없을지라도 방패와 장봉의 폭력은 사라지기는커녕 줄어들지도 않았다. 이것 만이 아니다. 우리는 서울 시내 곳곳에서 흉물스런 ‘닭장차’며 무장한 전경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민주화가 되었어도 우리는 여전히 ‘경찰국가’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우리는 어떤 민주화를 이룬 것인가? 흉물스런 닭장차와 무장한 전경들을 보지 않고 거리를 걸을 수 있게 될 날은 언제일까?
전용철 씨의 죽음은 농업과 농민의 대대적인 감축을 강행하는 정부와 국회의 정책방향을 여실히 보여주는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살농정책’이 ‘살인진압’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실상 농업을 포기하는 ‘농업정책’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대다수 농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1월 2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쌀 관세화 유예협상에 대한 비준동의안이 통과되었다. 이로써 쌀 수입량은 2005년의 22만 5575톤(국내소비량의 4.4%)에서 2014년의 40만8700톤(국내소비량의 7.96%)까지 늘어나게 되고, 수입 물량의 14%(2006년)에서 30%(2010년~2014년)까지 밥쌀용으로 시판하게 된다.
이미 쌀값은 개사료값만도 못한 상황이다. 쌀은 kg당 1750원이나 개사료값은 kg당 3500원이다. 더욱이 애완견의 사료값은 kg당 6700원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쌀 관세화 유예협상에 대한 비준동의안이 통과된 것이다. 쌀값은 더욱 떨어질 것이고, 농업은 더욱 피폐해질 것이며, 농민은 더욱 빠르게 줄어들지 않겠는가? 농업의 포괄적 구실을 생각하면 대단히 어두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전용철씨의 죽음은 단순히 한 농민의 죽음이 아니다. ‘농자천하지대본’은 언제까지나 진리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언제까지고 이 진리를 지켜야 한다. 우리와 후손의 삶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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