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6-01-13   1515

<안국동窓> 김미화 씨의 눈높이와 나의 A4 용지

내가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 중의 하나가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이다. 제목에 나와 있듯이 개그맨으로 알려진 김미화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어려운 시사문제를 쉽게 풀어주고, 방송에서나마 어려운 사람들의 입장을 헤아려 주려고 하는 점이 좋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점은 진행자의 눈높이에 있다. 진행자는 아는 체 하지 않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고, 그리고 늘 하던 말투 그래도 진행한다. 154cm의 작은 키로 세상을 본다고 해서 보통사람을 위한 눈높이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그렇다. 세상을 보는 눈은 참 다양하다는 생각이 든다. 높은 곳에 보는 세상과 낮은 곳에서 보는 세상이 같을 리 없고, 파란 안경으로 보는 세상과 노란 안경으로 보는 세상이 같을 리 없다. 세상은 분명 하나인데, 우리들은 제각각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는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간혹 사람들은 다툰다. 나름대로 깊은 속사정들은 다 있겠지만, 다투는 이유 중의 한 가지는 아마도 세상을 서로 다르게 보는 눈 때문이 아닐까 한다. 세상을 다르게 본다는 것은 결국 다른 느낌을 갖는 것이고,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이고, 다르게 평가하는 것이고, 그리고 결국에는 다른 세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사람간의 다툼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김미화 씨는 흔히 말하는 연예인이다. 늘 밝은 조명 아래서 활동하며, TV 브라운관에는 매우 화려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우리 같은 보통 사람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나를 포함한 많은 보통사람들이 김미화 씨의 프로그램을, 아니 김미화 씨를 좋아하는 것 같다. 왜 그럴까? 내 생각으로는 김미화 씨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높이 때문이 아닐까? 김미화씨가 바라보는 세상의 눈높이는 김미화씨의 눈높이가 아니라 어쩌면 바로 우리 보통사람들의 눈높이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김미화씨가 자신의 눈높이로 세상을 보고 있다면, 아마도 김미화씨는 오래전에 이 프로그램 진행을 그만 두었을 것이다.

내 눈높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눈높이는 세상을 본다는 것. 그것은 아마도 전혀 다른 세상을 바라보는 것일 것이다. 그 동안 내가 보아왔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내가 가졌던 생각, 내가 주장했던 진리, 내가 느꼈던 감촉, 내가 보았던 아름다음, 이 모든 것들이 달라질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라서 그런지 세상을 자기의 눈높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눈높이로 보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주변을 보면 자기 눈높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눈높이로 세상을 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수많은 성직자들. 구태여 오지와 낙도를 찾아 어린 꿈을 크게 만들어주는 수많은 선생님들. 어렵게 모은 전 재산을 아낌없이 기증하는 허리 굽은 할머니. 추운 길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모금활동을 하는 착한 어린 학생들. 무료 공부방을 운영하는 젊고 아름다운 학생들. 노숙자를 위하여 따뜻한 밥을 마음과 함께 전하는 자원봉사자들. 밝은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항상 밝고 힘차게 활동하는 수많은 시민단체 활동가들. 이들은 모두 자기 눈높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눈높이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눈에 비친 세상은 아마도 한없이 넓은 세상일 것이다. 자기만의 눈으로 보았으면 코딱지 만하였을 세상이겠지만, 다른 사람의 눈으로 봄으로서, 이제 이들의 세상은 끝없이 넓어졌을 것이다. 이들은 좁디좁은 그런 세상이 아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세상을 보고 있다. 그러기에 남을 이해할 줄 알고, 배려할 줄 알고, 자기 지식의 부족함을 알고, 다른 사람의 존귀함을 알고, 그래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필자는 가끔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혹 내가 바라보는 세상의 넓이는 A4 용지의 넓이가 아닌가? 필자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늘 연구실에서 세상을 본다. 좀더 좁히면 30cm× 21cm의 크기 밖에 되지 않는 A4 용지를 통해서 세상을 본다. 그래서 비유한다. 나는 혹 세상의 넓이를 A4 용지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내 책상위에 펼쳐있는 A4 용지를 보면서 세상을 다 알고 있다고, 세상의 진리를 알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물론 사람들마다 제각각의 생각을 갖고 있고, 이것이 가치관이 되고, 그래서 세상을 나름대로 재단하여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을 크게 탓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단지 내가 재단하여 보는 세상은 다른 사람이 재단하여 보는 세상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며, 따라서 내가 보는 세상을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고 있음을, 또 나는 다른 사람이 보는 세상을 보지 못하고 있음을 행여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걱정이다.

세상의 진리는 내 눈으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으로도 보일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 그럼으로써 오히려 우리는 세상의 진리를 제대로 알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의 눈높이로, 다른 사람의 세상을 보는 것이 바로 진리에 이르는 방법의 하나가 아닐까?

아마 나는 오늘도 김미화 씨의 방송을 들을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제대로 온전히 바라보지 못하는 세상을 김미화 씨를 통해서나마 바라보며 나름대로 위안을 얻을 것이다.

여러분은 몇 센티의 높이로, 어떤 색깔로, 얼마만한 크기로 세상을 보고 있습니까? 오늘 한번 다른 사람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시지 않겠습니까?

윤태범(방송대 교수, 맑은사회만들기본부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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