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6-01-30   772

<안국동窓> 경제단체는 ‘인권맹’인가?

새해 초부터 이 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을 두고 활발한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 고도성장과 민주화를 통해 이룬 성과를 잘 활용해서 ‘참된 선진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정말 경제적 위기를 맞게 될 것이며, 커다란 정치적 혼란이 초래될 것이다. ‘참된 선진사회’는 무엇인가? 그 예는 서구의 여러 나라에서 찾을 수 있다. 요컨대 서구형 복지사회는 ‘참된 선진사회’의 좋은 예이다.

서구형 복지사회의 가장 중요한 기반은 무엇일까? 경제력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서구형 복지사회의 가장 중요한 기반은 다름아닌 인권이다. 1789년의 프랑스대혁명으로 터져나온 만민평등과 주권재민의 인권사상이야말로 근대 사회를 형성한 사회적 동력이었다. 여러 모순과 갈등이 있었지만, 이러한 인권사상에 의해 민주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고, 또한 ‘민주화의 민주화’가 진행될 수 있다. 인권을 무시하는 사회는 결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며, 사실 그 본질적 의미에서 근대 사회조차도 아니다.

오늘날 우리는 고도로 발달한 기업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 핵심에 인권의 존중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 나라의 많은 기업들은 아직도 인권을 무시해야 할 장애물로 여기는 듯하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에 대단히 유감스러운 기자회견이 열렸다. 전경련을 비롯한 이른바 ‘경제5단체’가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인권위원회에게 모진 비난을 퍼부었던 것이다.

2006년 1월 9일, 국가인권위원회는 3년 동안 준비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권고안’을 발표했다. 올해는 한국이 OECD에 가입한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우리의 인권 수준은 여전히 OECD 평균에도 크게 못 미치는 후진적 상태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권고안’이 마련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이 권고안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아 사회 전반에 걸쳐 인권 수준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를 이끌어 간다는 강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경제5단체가 나서서 이 권고안의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사실상 폐기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이다. ‘일부 진보세력의 주장만을 반영한 이상론(理想論)’이란다. 경제5단체의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가? 유엔이나 OECD는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미국에서도 상식일 뿐인 내용을 ‘이상론’이라고 우기다니. 상식 수준의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권고안’이 ‘이상론’이라면, 그 동안 경제5단체는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경제5단체가 이렇게 극렬히 반대하고 나선 이유는 노동시장 관련 조항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일가치 노동 동일 처우, 비정규직 고용 억제, 필수공익사업장 직권중재 폐지, 사회보험제도 적용 확대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조항들은 모두 상식일 뿐이다. 이런 조항들을 그대로 둔다면 언제까지나 ‘후진 한국’이 될 수밖에 없다. 경제5단체가 원하는 것이 그것인가? 유엔과 OECD도 한국의 노동시장이 국제규범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계속 해왔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벌써 9년째 한국을 ‘특별감시대상국’으로 다루고 있다.

새해 초부터 경제5단체는 그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의 내용에 대한 이해의 수준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편파적 시민단체와 노동계의 주장만 반영’, ‘독선적 결정’, ‘전문적 식견 부족’ 이라는 다분히 명예훼손적 표현으로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난했던 것이다. 여기서 나아가 경제5단체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안’의 작성에 관여한 수많은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을 모욕했다. 아무래도 경제5단체는 시민사회 전체를 사실상 ‘적’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정말이지, 무서워서 어쩔 줄 모르겠다.

이런 극렬한 표현이야말로 경제5단체에게 고스란히 되돌려주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유엔, OECD, 국제노동기구의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인권맹’의 판정을 받을 것이 분명한 경제5단체야말로 ‘일부 재계의 주장만 반영’한 ‘독선적 결정’으로 ‘전문적 식견 부족’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았는가? 경제5단체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화되고 있는 시대적 추세를 사실상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5단체가 과연 한국의 재계를 대표하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참으로 위험하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경제5단체는 ‘헌정질서와 시장경제 수호’를 내세우기도 했다. 인권을 지키는 것이 ‘헌정질서와 시장경제 수호’를 거부하는 것인가? 자연파괴/노동착취형 경제구조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이렇게 ‘유사 색깔론’까지 구사해야 하는가? 조중동에서 열렬히 지지해준다고 해서 세계의 추세와 시대의 요구를 거스를 수 있는가? 아무리 조중동의 박수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고속열차에서 뒷걸음질치기일 뿐이다. 인권을 존중하는 자연보호/복지사회형 경제구조로 나아가는 것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조중동-한나라당-경제5단체 연합’도 그렇다.

여기서 더 나아가 경제5단체는 아예 현 국가인권위원회의 해산과 재구성을 요구했다. 협박인가, 압박인가? 국가인권위원회는 경제5단체의 산하기관이 아니다. 법에 따라 설립되고 운영되는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해 경제5단체가 해산과 재구성을 요구한 것은 법을 무시하고 법 위에 군림하려는 초법적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위험천만한 의지가 아닐 수 없다. 경제5단체는 인권을 무시하기 위해 스스로 법의 제정자이자 집행자가 되고자 하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지금의 경제5단체가 한국의 재계를 대표한다고는 믿을 수 없다.

이 나라의 발전을 위해 정말 해체되고 재구성되어야 하는 것은 경제5단체인 것 같다. 경제5단체는 인권에 대한 완전한 무지를 드러내고, 이 나라를 ‘후진 한국’의 상태에 잡아두려 하고 있다. 여기서 나아가 경제5단체는 이런 잘못을 마음대로 저지르기 위해 아예 초법적 존재가 되려고 한다. 경제5단체는 세계의 추세와 시대의 흐름을 이끌고 가기는커녕 저 유신독재 시대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경제5단체, 거듭나거나 해체되기를!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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