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에 서울시로부터 ‘제1호 아름다운 마을’로 지정된 은평구 진관내동의 한양주택이 영원히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거대한 개발주의의 물결이 이곳에까지 몰려왔기 때문이다. 그 주범은 다름 아닌 이명박 시장의 ‘뉴타운사업’이다. 이명박 시장과 서울시가 ‘뉴타운사업’의 이름으로 이 아름다운 단층 주택단지를 높다란 아파트 단지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이 사회의 참된 발전을 위해 우리는 한양주택의 위기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 한양주택이 사라지는 것은 이 사회의 귀중한 공간문화가 사라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현재도 대단히 소중한 곳이지만 더욱 커다란 미래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우리의 미래는 ‘타워 팰리스’와 같은 현대 문명의 괴물에 있지 않으며, 한양주택과 같은 생태문화적 공간에 있다.
이런 점에서 한양주택을 없애려는 계획이 강행되고 있는 것은 이 사회가 대단히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발독재의 가장 큰 문제는 이 사회를 반생태문화의 위험 속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민주화가 되었어도 개발독재가 심어 놓은 개발주의의 문제는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그 결과 이 사회는 더욱 더 깊은 반생태문화의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다.
서울시는 이러한 반생태문화성의 문제가 가장 명확하게 나타나는 공간이다. 서울시의 삶의 질 지수는 90위권에 머물고 있고, 환경의 질을 고려하면 150위권으로 떨어진다. 서울시의 공간적 개혁은 이미 절박한 과제이다. 그 방향은 투기와 난개발을 막는 것이면서, 또한 철저히 생태문화적 상태로 나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뉴타운사업은 생태문화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척하면서 반생태문화적 개발을 강행하고 있다.
한양주택의 위기는 이 사회의 위기이다. 이명박 시장의 잘못된 개발계획 때문에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한양주택이라는 생태문화적 주거단지가 아니다. 이명박 시장은 생태문화적 희망과 미래 자체를 없애려 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중대한 정치적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생태문화적 전환은 이 시대의 절박한 요청이기 때문이다. 이 요청을 무시하고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없다.
한양주택의 위기는 참된 선진국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되는 위기이다. 바로 이 때문에 시민사회는 한양주택지키기 시민사회네트워크라는 연대체를 만들었다. 우리는 이명박 시장이 초래한 이 파괴적 개발의 위기를 막고 참된 선진국으로 나아가야 한다. 새로운 시장은 반드시 이 잘못을 바로잡고 서울시를 올바른 발전의 길로 이끌어야 할 것이다. 이명박 시장이 부수고자 한 희망을 다시 튼튼히 세워야 한다.
뉴타운사업 구상이 발표된 2002년 가을부터 한양주택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이 펼쳐졌다. 주민들은 서울시, 도시개발공사, 은평구청 등의 관련 기관들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한양주택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서울시와 도시개발공사는 주민들의 뜻에 따르겠다며 주민들의 항의를 무마했다. 그렇게 해서 시간이 지나자 서울시와 도시개발공사는 보상과 강제수용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시민사회는 여러 방안을 찾기 시작했다. 국가인권위에 진정하는 것도 좋은 방안일 것으로 판단되었다. 한양주택 주민들은 시민사회의 제안을 받아들여 2005년 10월에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주민들의 주거권과 행복추구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한양주택을 존치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주민들과 시민사회는 국가인권위가 이 당연한 주장을 존중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 믿음은 잘못된 것이었다. 진정서를 접수하고 다섯달이 지난 2006년 3월에 국가인권위원회는 한양주택 주민들의 진정을 기각한다는 놀라운 결정을 발표했다. 국가인권회의 결정은 두가지 내용으로 요약된다. 첫째, 서울시와 도시개발공사는 법적 절차를 충실하게 지켜서 ‘공공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둘째, 주민들의 요구는 ‘차별’ 사안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한양주택 주민들의 진정은 잘못된 것이다. 과연 그런가? 과연 한양주택 주민들이 잘못된 것인가?
국가인권회의 결정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서울시와 도시개발공사가 과연 법적 절차를 충실하게 지켰는가? 오늘날 각종 ‘공공사업’으로 말미암은 갈등은 한국 사회의 가장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갈등의 근원은 사업주체인 공공기관이 ‘공공사업’을 민주적으로 진행하지 않는 데 있다. 대표적인 예가 공청회 등의 절차를 형식적으로 밟는 것이다. 시간은 공공기관의 편이다. 형식적으로 절차를 밟아서 시간을 보내면, 공공기관은 ‘강제수용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서 사업을 강행할 수 있다. 한양주택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한양주택 주민들이 국가인권위에 바란 것은 바로 이러한 반민주성의 문제를 바로잡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는 서울시와 도시개발공사가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국가인권위는 피해자인 한양주택 주민들을 ‘공공사업’을 방해하는 ‘가해자’로 만들어 버렸다. 국가인권위는 정녕 각종 ‘공공사업’에서 발생하는 반민주성의 문제와 이로부터 발생하는 ‘개발난민’의 문제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국가인권위의 존재의의는 과연 무엇인가?
둘째, ‘차별’ 사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 한양주택 주민들의 진정과 무관한 내용이다. 이것은 사실 국가인권위의 ‘편견’과 연관된다. 한양주택 주민들이 진정서를 접수할 때 국가인권위의 직원이 주민들에게 거듭 ‘어떤 보상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주민들은 오직 존치를 바랄 뿐이라고 대답했으나, 거듭 묻기에 할 수 없이 ‘단지 이전’을 말했다. 이 때문에 한양주택 진정서는 ‘침해’ 사안이 아니라 ‘차별’ 사안으로 접수되었다. 이로써 주민들의 존치 요구는 더 많은 땅을 가진 사람들과 대등한 보상을 요구하는 ‘욕심’으로 다루어졌다. 존치를 바라는 주민들이 더 많은 보상을 노린 일종의 ‘투기꾼’이 되었다. 한양주택지키기 시민사회네트워크는 2006년 1월에 국가인권위를 방문해서 차별팀장과 1시간 넘게 면담을 했다. 이 자리에서 진정서 접수 때의 문제가 충분히 논의되었으며, 차별팀장도 이 점을 이해하고 ‘침해’분과에서 다뤄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그날의 면담은 결국 완전히 ‘형식적 절차’였을 뿐이었다. 서울시와 도시개발공사의 공청회와 마찬가지로.
한양주택 주민들의 진정에 대한 국가인권위의 결정은 국가인권위의 존재의의에 대해 깊은 깊은 반성과 회의를 불러 일으켰다. 국가인권위의 결정에 따르면, 한양주택지키기 시민사회네트워크는 아주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셈이 된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모든 사실에 비추어 보았을 때, 아주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시민사회가 아니라 국가인권위이다. 국가인권위는 한양주택 주민들의 정당한 존치 요구에 대해 완전한 무지와 편견으로 일관했으며, 강제수용권에 의거해서 ‘개발난민’을 양산하는 ‘공공사업’의 문제를 도외시하는 반인권의 문제를 드러냈다. 국가인권위는 전면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개발독재는 단순히 개발을 강행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수많은 주민들을 그들이 살던 곳에서 쫓아냈다. 댐 때문에 고향에서 쫓겨난 ‘개발난민’만도 3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듯 개발독재는 ‘개발난민’을 양산하는 과정이었다. 이를 위해 강제수용권이 철저히 악용되었다. 올바른 ‘공공사업’이 아니라면 강제수용권은 ‘합법적 강탈과 파괴의 권리’일 뿐이다. 각종 개발기구들은 이 권리를 악용해서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기도 하다. 한양주택 개발계획도 그런 혐의를 강하게 받고 있다.
한양주택을 지키는 것은 세가지 점에서 이 사회의 인권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것이다. 첫째, 그것은 ‘개발난민’을 양산하는 잘못된 개발주의의 문제를 바로잡는 계기를 열어줄 것이다. 하루빨리 강제수용권 자체를 엄격히 규정해서 시행하도록 개혁해야 한다. 둘째, 그것은 이 사회에서 가장 존중받지 못하는 기본권인 주거권을 한층 강화하는 것이다. 개발과 투기가 아니라 주거권이 우선되어야 한다. 주거권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에서 행복추구권은 제대로 존중될 수 없다. 세째, 그것은 자연과 조화를 이룬 공동체적 주거에서 살고자 하는 생태문화적 권리에 관한 인식을 새롭게 제기한다. 이것은 참된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 권리이다.
한양주택 주민들은 낡은 개발주의의 유산에 맞서서 참된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싸우고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주민들을 ‘보상’ 요구로 몰고가려는 서울시와 도시개발공사의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 처음에 100%에 가까운 주민들이 반대했으나 이제는 절반에 가까운 주민들이 개발에 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절반에 가까운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다. 또한 찬성하는 주민들의 다수도 쫓겨날 수밖에 없다는 불안감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찬성했다. 찬성은 체념과 불안과 공포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그러므로 한양주택을 둘러싼 진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현재의 결과에 이르기까지 몇 년 동안 서울시와 도시개발공사가 강제수용권을 무기로 어떻게 ‘공작’해왔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국가인권위는 대단히 큰 잘못을 저질렀다. 기각 결정의 직접적 주체인 해당 소위원회의 위원들(정강자, 신혜수, 원영은, 김만흠)은 결정과정을 소상히 밝혀야 한다. 회의록의 공개를 거부하는 것은 또 다른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존치를 바라며 몇년째 고통스런 ‘투쟁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한양주택 주민들을 한번이라도 만나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더라면, 그들을 ‘공공사업’의 훼방꾼이자 ‘투기꾼’으로 여기는 그처럼 무지막지한 기각 결정을 발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국가인권위는 반드시 대대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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