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돌아오기 어려운 강을 건넜다. 노무현 정권은 한·미 FTA 타결을 자축하고, 보수세력은 맞장구치며 환호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 한나라당, 보수언론, 재계, 그리고 시장경제 추종자들은 한·미 FTA 축배를 들며 모처럼 똘똘 뭉쳐 한 몸뚱아리가 되고 있다.
통상독재, 여론조작 그리고 국민선동
‘자유·보수 지배 블록’의 열광, 여론 조작과 국민 선동에 현기증을 느낄 정도다. 더욱 볼만한 것은 대한민국 이념 지형도에서 우파의 극단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김용갑, 조갑제씨 같은 인물들조차 친북 좌파라고 비판하던 그 노무현 대통령을 극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용갑씨는 한·미 FTA의 타결을 ‘경제의 6·29 선언’이라면서 노대통령의 결단을 높이 평가했다.
조갑제씨는 노무현 같은 저항과 도전 정신의 소유자가 용감성과 초인적 능력을 발휘했다고 치켜세웠다. 경제 6·29 선언이라기보다 4·2 신자유주의 보수혁명 선언이고, 박근혜씨는 ‘한국의 대처’라는 역사적 자리를 남성 노무현에게 빼앗긴 것 같다. 이 말은 농담이 아니라 진담이다.
한·미 FTA 타결에 즈음하여 발표한 담화문에서 노대통령은 이렇게 말한다. “철저히 손익 계산을 따져 우리의 이익을 관철했다” “국제적 보편 규범을 존중하면서 최대한 활용했다” “미국의 반덤핑 조사 과정에서 우리 입장을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했다” “한반도 역외가공지역위원회 설립에 합의하여 개성공단 제품도 국내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다”….
이제 노무현 대통령은 1997년 외환위기와 구조조정에 이어, 한·미 FTA ‘통상 독재’를 통해 국민을 배반, 기만하고 2007년 제2차 신자유주의 보수혁명을 선도하는 지도자로서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겠다.
첫째, 나는 이번에 타결된 협상이 그간 노대통령이 주장했던 한·미 FTA의 추진 목적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묻고 싶다. 그는 한국은 제조업에서는 곧 중국에 추격당할 것이기 때문에 서비스 산업으로 승부해야 하고, 이를 위해 한·미 FTA ‘충격 요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 타결 결과를 보고 한국경제가 서비스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어떤 내용을 확보했는지 나는 알지 못하겠다. 좀 아쉽다, 불만스럽다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오히려 서비스업은 그만두고, 제조업의 제약·기계·정밀화학, 그리고 국내시장에서는 자동차업조차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둘째, 개성공단 제품을 국내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다고 떠든다. 과연 사실인가. 카란 바티아 미 무역대표부 부대표가 말하기를, 개성공단 제품은 협정의 느슨한 규정에서도 적용받지 않는다고 확인해 주고 있다. 미국이 딴소리를 하는 건가. 공개된 보도자료 어디에도 개성공단이라는 말은 없다. 무엇보다 비핵화 진전과 노동기준 충족이라는 고약한 꼬리표가 두 개 붙어 있다. 북·미 수교가 되고, 북한 체제의 근본적 개혁이 진행되지 않으면 난망한 이야기가 아닌가.
셋째, 눈을 씻고 보아도 얻은 것이라고는 관세율, 물품 수수료 좀 낮춘 것 외에는 별로 없는 반면, 주권 양도와 공공정책 무력화, 사회·문화·생태적 공공성 파괴, 농업 괴멸, 사회경제 양극화 심화 등 나라를 죽이고 국민을 죽이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또 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도, 어이없게 협상 성적은 ‘수’를 받아야 한단다.
‘서비스 산업 경쟁력’은 어디갔나
왜 그럴까. 청와대 왈,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세계보편적 제도다, 이에 대한 반대는 세계화하지 말자”는 것이다. MBC 100분 토론에서 김종훈 수석대표는 “우리 비관세 장벽은 있으면 안된다, 농업을 지키려 하면 FTA 못한다, 투자와 투기가 뭐가 다른가, 지재권 보호는 우리에게 나쁘지 않다, 개방과 경쟁이 대세”라고 했다. 거의 ‘검은 머리 미국인’ 수준 아닌가. 한·미간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눈에 선하다. 정부는 하루 빨리 협정문과 부속 문서를 공개하고 시민사회와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 이 칼럼은 경향신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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