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시민생명공학정보자료실의 새 지평을 열며
생명공학정보자료실을 구축하며
(편집자주)시민과학센터에서는 2002년, 시민생명공학정보자료실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 격주간으로 발간하는 생명공학감시뉴스를 보완 개편하면서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많은 정보들과 이전의 활동에서 축적된 자료들을 모아 정보자료실을 만들 계획이다. 아래의 칼럼은 시민생명공학정보자료실장을 맡으실 박병상 인천도시생태연구 소장이 이 정보자료실의 의의와 계획을 담아 쓴 것이다. 정보자료실을 통해 앞으로 생명공학감시운동이 더욱 활발해지기를 기대해본다.
시민생명공학정보자료실의 새 지평을 열며
타까기 진자부로오가 생각난다. 잘 나가는 핵과학자와 교수직을 연거푸 벗어 던지고 스스로 시민운동의 가시밭길을 개척했던 그는 2000년 10월 8일, 직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반핵운동과 시민과학운동을 위해 몸을 바쳤다. 1997년, 환경과 평화운동에 헌신한 공로로 스웨덴 재단으로부터 정치색 없는 ‘대안 노벨상’이라 일컫는 ‘바른생활상 Right Livelihood Award’을 수상한 그는 길잡이가 없어 우왕좌왕하던 일본 반핵운동의 지평을 다진 인물로 평가한다. 반핵자료정보실을 만들어 체계적인 자료를 30년 넘게 일본 전역의 시민단체에게 공급해주었던 것이다.
1998년 유전자 조작 농산물에 대한 문제제기로 촉발한 이 땅의 생명윤리 및 생명안전 운동은 이제 문제의식의 운을 띄웠다. 생명공학에 대항하는 여러 시민단체들은 단체 성격에 맞는 운동판을 열어가야 한다. 여성단체는 여성과 몸이 오염되고 무기력해지는 현상에 대항하는 차원으로, 농산물의 생산자와 소비자 단체는 땅과 먹을거리의 건강과 안전을 염려하는 차원으로 생명공학 문제에 접근해야 하고, 종교단체는 섭리를 거부하는 생명공학의 이념과 맞서 싸워야 한다. 경제단체는 경제정의에 어긋나는 생명공학의 문제를, 인권단체는 생명공학이 초래하는 반인륜적 문제를, 그리고 환경단체는 환경 위해성을 대비해서 생명공학에 대한 문제제기가 강력해야 할 것으로 믿는다.
그런데 현실은 조용하다못해 적막하다. 긴급히 대처해야 할 여타의 문제가 산더미 같지만 생명공학에 대한 시민운동이 중요하고 긴급하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도무지 어떤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고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복잡한 수식이 먼저 떠오르는 “과학기술!”하면 머리가 지끈거리는데, 거기에다 밑도 끝도 없는 “생명공학!” 가지고 운동을 하라니, 고개를 내젓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떨까. 핵을 모르는 보통 시민들이 반핵단체를 잘 꾸려가고 있듯이, 생명공학도 가능해야 하지 않을까.
반핵자료정보실이 가동된 이후, 일본의 반핵단체들은 가히 전국적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일본 전역에 걸쳐 수만 개의 단체가 활동하고 있지만 그보다 더욱 빛나는 가치는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그 많은 단체가 연대의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성장하기까지 반핵자료정보실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고 평가한다. 반핵 뿐 아니다. 유전자 조작 식품에 반대하는 단체를 비롯한 많은 시민단체들도 반핵자료정보실의 경험을 잘 살려 요긴할 때마다 시민연대의 권력을 훌륭하게 행사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인류복지로 위장된 현기증나는 생명공학에 대항하려면 운동감각만으로 부족할 때가 많다. 자칫 잘 못 듣자면 말려들 가능성도 없지 않다. 따라서 정보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보는 넘친다. 뭐가 뭔지도 모를 정도로 빨리 지나간다. 효과적인 생명공학 감시운동을 위해, 제대로 정리된 자료가 필요하다. 정확하고 빠를 뿐 아니라, 여성, 생산자, 소비자, 종교, 경제, 인권, 그리고 환경 차원에서 시원하게 분석해준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번에 계획하고 이렇게 자그마하게나마 선보이는 “시민생명공학정보자료실”과 시민생명공학정보자료실에서 발간 배포하는 ‘생명공학감시뉴스’에 거는 기대는 그래서 크고 기대만큼 가치도 높다. 1,600여 명의 일반시민들, 그리고 400여 명의 사회여론 주도층에게 이미 15차례 전자메일로 전달해온바 있었던 ‘생명공학감시뉴스레터’를 자식 키우는 시민의 관점에서 더욱 체계적으로 그리고 알차게 개편하여 더 많은 시민들에게 전달하겠다는 의지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관심 속에 지속적으로 발간하고 활기찬 논의를 바탕으로 심도 있는 개편작업을 계속할 수 있다면, 브레이크도 없이 무분별하게 질주하는 생명공학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시민사회의 권력을 지금보다 훨씬 강화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시민’에 방점을 찍고 있는 시민생명공학정보자료실과 생명공학감시뉴스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이번에도 열정 있는 활동가 몇 명의 희생적 노력에 힘입은 바 켰다. 일본의 시민사회를 한 단계 성숙시킨 반핵자료정보실처럼, 또는 그 이상, 시민생명공학정보자료실과 생명공학감시뉴스가 성장하기를 바랄 것으로 믿고, 독자들에게 부탁 한마디 드린다. 뜨거운 관심으로 기꺼이 참여해주실 것을 거듭 당부한다. 이제야 운이 띄워진 이 땅의 생명공학감시운동이 우리들의 미래와 후손들의 건강을 위해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생명공학감시뉴스, 2002년 2월,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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