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공학감시운동가 미국탐방기③-말로만 아닌 시민행동으로
상아탑에 갇힌 생명공학자들의 한계
(편집자 주)시민생명공학정보자료실 박병상 실장이 미국의 생명공학의 현황과 감시운동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미 국무부의 인터내셔널 비지팅 프로그램(IVP)에 초청받아 약 1달간 미국 방문을 하였다. 3회에 걸쳐 미국의 생명공학의 현황과 감시운동에 대한 탐방기를 연재한다.
생명공학감시운동가 미국탐방기
생명윤리 연구소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워싱턴DC 소재 조지타운대학교의 케네디 센터(Kennedy Institute of Ethics)를 방문했다. 생명윤리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분별 없는 생명공학을 우려하는 르로이 월터스(LeRoy B. Walters)와 매디슨 파워스(Madison Powers, J.D., D.Phil.) 교수에게 한국의 열악한 시민사회의 생명윤리 분위기를 전한 뒤, 시민운동의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전문가의 역할과 그 사례, 그리고 생명윤리의 시민운동을 촉진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여 강연해 줄 용의를 물었다. 그러자, 자신들은 학자이지 행동가가 아니라면서 말끝을 흐린다. 상아탑에 갇힌 학자의 한계를 저리게 느껴야 했다.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시에 위치한 ‘국립 카톨릭 생명윤리센터(NCBC, National Catholic Bioethics Center)’를 방문했다. 세계 최대의 천주교회 생명윤리 연구소답게 풍부한 자료와 한 해 700여 편에 달하는 연구업적을 자랑스레 소개하였지만 회의실에서 만난 신부와 연구자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우리 카톨릭의 입장과 다르지 않았다. 인간 생명은 수정부터이므로 배아복제는 반대하지만 GMO에 대한 문제는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까닭에 강하게 반대할 입장이 못되고, 성인줄기세포의 혜택이 일부 부자에게 혜택이 집중될 것이라는 점은 우려하지만 윤리적 기준으로 연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1972년에 설립할 당시 한 명부터 시작했다는 점을 상기하며 용기를 북돋아주어 감사한 마음이었지만, 지도층의 국제적 연대를 강조하면서도 일선 교회에서 침묵하는 직무유기에는 이렇다 할 언급이 없어 상당히 아쉬웠다.
마이클 고든(Michael Groden) 교수를 보스턴대학교 의과대학 공중보건교실에서 만났다. 의사이자 철학자인 그는 과학기술이 먼저 문제를 일으키면 윤리가 뒷감당하는 현실을 우려하고 수정 후 14일 생명론에 미국이 미쳐 돌아간다고 개탄하면서, 생명공학을 반대하기보다 겸손한 마음으로 천천히 그리고 공개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자의 자세를 요구한다. 생명윤리를 시민운동 차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교육과 열띤 논의가 필요한데 그게 없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그는 말초적인 치료보다 환경 보전과 삶의 반성으로 질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노력이 전재돼야 한다는 내 주장에 그런 시절은 오지 않을 것이라며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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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스턴(매사츄세츠)에 위치한 국립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에서 연구원들과 함께. 이 곳 연구원들은 신부, 신부이면서 의사인 사람, 또는 그냥 의사인 사람 등 구성이 다양하다. |
텍사스 주도인 오스틴의 텍사스대학교와 오스틴 시립대학에서 담당 책임교수들을 이어 만났다. 호화스럽다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인 신축 연구동을 보여주며 ‘우리는 기초만 연구할 뿐이므로 생명윤리가 문제될 게 없다’는 점을 재삼 강조하는 빌 캐서디(Bill Cassady) 텍사스대학교 교수나 학생들의 자율토론으로 생명윤리를 스스로 알게 한다는 시립대학의 리냐 플레처(Linnea Fletcher) 교수 모두 생명윤리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완벽한 장비와 엄청난 연구비가 들어온다는 텍사스대학교에서 앞으로도 기초연구만 집착할 수 있을까. 현장에 투입할 생명공학도를 양성하는 시립대학에서 생명윤리에 관한 과목 하나 없이 생명윤리 교육이 진정 가능할까. 돈 많은 텍사스 주는 생명공학에 거금을 투자한다는데.
미국 최초로 인간복제 반대법안을 상정했다는 텍사스 주 재인 넬슨(Jane Nelson) 상원의원 실을 찾아 보좌관을 만났다. 아직 정식으로 제출되지 않은 법안은 모든 줄기세포를 포함하여 난자를 이용한 연구도 금지하고 있지만 줄기세포의 잠재력을 주장하는 생명공학자의 논쟁에 휘말려 법 제정으로 이어질지 회의적이라고 보좌관은 안타까워한다. 몇 천 달러를 내면 개를 복제해준다는 소문이 텍사스A&M대학교를 진앙지로 퍼져나가는 현실을 우려하는 그는 연방국회에서 관련법이 먼저 통과되어야 일이 쉽게 풀릴 것 같다고 말해, 멀리서 찾아 간 사람을 맥빠지게 했다.
생명공학자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샌프란시스코의 ‘Bay Area Bioscience Center’와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발생학 연구소에서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생명공학자를 만났다. 수 마크랜드 대이(Sue Markland Day) 소장은 샌프란시스코 만에 집중된 800여 생명공학 연구소와 회사의 이익을 위해 자료를 정리하고 투자가와 허가관청에 생명공학의 가치를 홍보하는 역할을 담당한다고 소개하며 홈페이지(www.bayareabioscience.org) 를 소개한다. 하지만, 생명윤리는 그들의 관심사에서 매우 멀게 느껴졌다. 보관된 스템셀로 골수조직 유도를 연구 중인 샌프란시스코 대학교의 매리 퍼포(Mary Firpo)교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인공난자 연구를 자신은 난자를 제공하고 싶지 않다며 우회적으로 비판한 그는 14일 생명론을 꺼내자마자 고개를 완강히 흔든다. 생명윤리에 반하는 연구를 하지 않는다면서 생명윤리 논의를 극구 사양한다. 생명공학자의 책임회피가 아닌가 싶었다.
미국 역시 생명윤리에 관한 이렇다할 시민운동을 찾아볼 수 없었다. 효과적 운동을 위해 적은 인력으로 GMO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시에라클럽과 그린피스조차 문제의식만 공유하는 형편으로, 독일의 그린피스에서 배아복제나 돼지에 인간 유전자 도입하는데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줄 따름이었다. 시에라클럽에서 한 윤리학자의 움직임을 소개해주어 다행이었다.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워싱턴DC에서 만난 동물보호단체 역시 생명윤리까지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학대받는 애완동물을 보호하는 데에도 시간과 인력이 모자란다는 그들에게 생명윤리와 동물보호의 필연적 관계를 생태주의 시각으로 전했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지나친 기대는 금물일 성싶었다.
시에라클럽의 소개로 만난 캘리포니아 주립 버클리대학교의 철학자 리처드 헤이스(Richard Hayes)를 통해 희망을 기대할 수 있었다. 한국으로 떠나기 직전 겨우 만난 그는 “Center for Genetic Society”를 소개해준 것이다. 1년 전에 구상하고 이제 6개월 밖에 안 됐지만 국제연대를 지향하고 있는 신설 단체에는 환경운동을 위시하여 시민권리 여성 사회정의 소수민족 운동을 하는 운동가들이 대거 참여하고, 철학자 과학자 행정가 그리고 의사와 보건전문 변호사들이 망라하는 연합체로 2001년 9월 보스턴 대학에서 첫 컨퍼런스를 개최했다고 한다. 오는 9월에 개최될 예정인 두 번째 컨퍼런스에 한국의 참여를 부탁하며 홈페이지(www.genetics-and-society.org)와 주소(Center for Genetic and Society: 436, 14th Street, Suite 1302, Oakland, CA 94612), 그리고 버클리대학교에 거점을 둔 연락처(전화: (510) 625-0819, 팩스: (510) 625-0874)와 이메일 주소: (info@genetics-and-society.org)를 알려주었다.
제레미 리프킨이 적절히 지적했듯이, 인간은 자신이 개발한 생명공학 기술로 제2의 창세기를 준비하고 있다. 이는 천주교와 개신교를 막론하고 교회의 존립의 근거를 뿌리째 흔드는 행위다. 돌리가 발표되었을 때, 세계 각 국의 교회에서 발표한 성명도 그 점을 강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기독교의 나라를 자부하는 미국은 물론 세계 각 국에서 생명복제 연구는 전혀 그칠 줄 모른다. 게다가 많은 연구자들은 자신이 기독교 신자임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모순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번 여행에서 미국의 유전자 조작 식품 반대운동을 발견했다면 생명윤리 시민운동의 가능성은 약하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만난 리처드 헤이스는 희망을 전했다. 생명윤리를 위한 시민운동의 필요성에 동의할 뿐 아니라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가 행동하는 윤리학자의 유일한 사람이라면? 그럴 리 없겠지만, 이제 상아탑에 머물러 있던 생명윤리학자들은 나서야 한다.
자신의 뿌리를 위해서라도 교회 안에 멈춰 있는 종교인들도 나서야 한다. 과학기술 신화에 중독된 시민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애드벌룬을 띄우는 생명공학 연구자에 비해 양적으로 턱없이 적은 인원일지라도 이제 시민사회에 큰 목소리를 내 놓아야 한다. 연구자 또는 종교인의 공허한 구두선에서 탈피, 시민운동 전선으로 함께 나서자는 뜻이다.
병 주고 약주는 미국을 IVP 기회로 4주 일정으로 방문하면서 생명공학이라는 치명적인 질병의 근원을 파악할 수 있었고 또 그 처방도 생각하게 되었다. 비방은 따로 없었다. 정답은 역시 시민운동이었다. 소로우가 주장한 ‘시민 불복종’ 정신과 간디의 ‘비폭력 무저항’ 직접행동 못지 않은 우리의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후손의 생명가치를 위한 생명윤리 시민운동이 가장 확실한 대안이라는 사실을 되새길 수 있었다. 이제 실천이 남았다. 아무리 험난하더라도 반드시 헤쳐가야 할 가시밭길이 우리 앞에 펼쳐진 것이다. <끝>
박병상 시민생명공학정보자료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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