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센터(종료) 미분류 2002-04-29   687

‘ “이공계 위기론”의 본질과 대책’에 대한 논평

최재천 교수님의 오늘 발표는 최근 세간에 떠돌고 있는 “이공계 위기론”에 대한 깊이있는 사유를 바탕으로 한 날카로운 통찰을 통해 우리에게 함께 생각하고 고민할 거리들을 많이 제기하고 있다. 먼저 나는 오늘의 이 발표를 통해 최근에 운위되고 있는 “이공계 위기론”에 대해 좀더 체계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최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싶다. 나는 최 교수님의 발표 내용의 상당부분에 대해 의견을 같이 하지만, 여기에서는 토론의 활성화를 도모해야 하는 토론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의견이 다른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거론해 보고자 한다. 사실 이 발표문에서 최 교수님께서는 “이공계 위기론”에만 국한되지 않는 방대한 영역에 대해 매우 가치 있는 제언들을 해주고 계시지만, 나의 논평은 “이공계 위기론”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분에 한정하기로 하겠다.

내가 최 교수님과 절대적으로 의견을 같이 하는 부분은 우리나라가 제대로 발전하려면 기초를 확실하게 다져야 하며, 교육에 단기적인 시장원리를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 천박하고 근시안적인 시장적 잣대만을 가지고 학문체제와 고등교육기관에 대한 재편을 추진함으로써 학문과 교육의 가일층의 시장화와 자본화를 꾀하고 있는 현재의 “교육개혁”이 안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에 비추어 볼 때 최 교수님의 앞의 진단과 비판은 정말로 시의적절하고 정곡을 찌르는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최 교수님께서 제시한 “이공계 위기론”의 본질에 대한 진단과 대책 중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편의상 “이공계 위기론”의 본질에 대한 진단 부분과 대책 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기로 하자.

1.”이공계 위기론”의 본질 진단과 관련하여

최 교수님께서는 ‘아빠, 나 기분 나쁘면 이과 간다’는 자식의 말이 대덕 단지 박사 아빠들에게 더할 수 없는 협박이라는 소문으로 상징화되는 이공계 기피현상이 위기의 본질이라고 보시는 것 같다. 특히 ‘과학만이 살길임은 너무도 자명한데 우리는 지금 그걸 외면하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공계 기피현상은 진정 “위기”라는 의미일 것이다.

나는 먼저 정말 “이공계의 위기”가 현재 존재하는가에 대해 질문하고 싶다. 올해 입시에서 나타난 일부 이공계의 미달사태는 입시제도상의 변화(즉 교차지원 허용)가 의도치 않게 결과한 일시적 현상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일까? 그리고 현실을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공계 기피”라기보다는 시장적으로 유리한 분야로의, 다시 말해 “돈되는” 분야(경영대, 의대, 약대 등)로의 집중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공계 기피”라고 할 때는 다른 쪽은 기피하지 않는데 유독 이공계만을 기피한다는 뉘앙스가 느껴진다. 주지하듯이 이미 문과 쪽에는 오래전부터 이러한 “기피와 집중” 현상이 전개되어 왔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평균적인 문과졸업생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감은 최근 이공계 졸업생들이 느끼는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현재 위기는 분명히 존재하되, 그 위기의 본질은 “이공계 기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돈되는 쪽으로만 달려가는 이 경박한 시장숭배적 행태에 내재해 있다고 본다.

그런데, 최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과학만이 살 길’이라면(여기서 과학은 자연과학과 공학을 의미하는 것으로 판단됨), 논리적으로 보면 문과쪽의 기피현상보다 이공계쪽의 기피현상이 훨씬 심각하게 여겨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살길인 과학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든다면 결국 우리는 생존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과학만이 살길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물론 나도 과학이 사회의 재생산과 번영, 그리고 사람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크게 기여하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사회의 유지와 번영, 그리고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자연과학과 공학 이외에도 많은 요인들이 상호작용해야 함은 상식이다. 아울러 나는 위의 진술은 사실 약간 과장된 예측에 기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몇몇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현실적으로 볼 때 최근 약간 이공계 미달사태가 벌어졌다고 해서 장기적으로 과학기술자의 전반적인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사태에까지 도달하리라는 우려는 좀 지나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오히려 지금까지 과잉공급되어 왔던 이공계 인력구조가 조정국면에 들어간 것으로 볼 수는 없을까?

2. 대책과 관련하여

최 교수님께서는 앞의 진단에 기반하여 1) 과학기술자의 행복지수 개선, 2)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국가제도와 사회 인프라 구축, 3) 대국민 홍보전략 수립 등의 대책을 제시하셨다. 먼저 최 교수님께서 제시하신 과학기술자의 행복지수의 개선과 관련하여, 나는 기본적으로 행복지수를 높이자는 의견에 동의한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현재보다 훨씬 상향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그러나 최근 떠도는 “이공계 위기론” 혹은 “과학기술자 푸대접론”과 그에 대응한 정부의 “사기진작방안”이, 과학기술자는 다른 직종 혹은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보다 국가적 공헌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에 기초해 있는 것이라면,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누가 더 사회에 공헌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과연 과학기술자들이 상대적으로 푸대접을 받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외적인 경우들은 제외하고, 평균적인 과학기술자들과 평균적인 비과학기술자들을 병역특례와 같은 사회적 특혜, 고용기회, 생애임금수준, 승진기회 등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안타깝게도 이에 대한 엄밀한 노동경제학적 연구결과는 아직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감으로 이야기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두 집단간 비교를 통해 과학기술자 집단이 비과학기술자 집단보다 푸대접을 받고 있다고 단언할 근거가 과연 있는가? 나의 경험세계에 비추어 판단할 때, 나는 위의 질문에 대해 부정적인 답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많은 경우 그 역이 사실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따라서 나는 과학기술자만의 사기진작이 아니라, 자연과학, 공학 및 인문사회과학 중에서 현재의 시장주의적 학문/교육풍토에서 소외받고 있는 모든 기초분야, 돈 안된다는 이유로 기피되고 있는 분야(그러나 이들 역시 장기적으로 국가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에)에 대한 균형감각 있는 사기진작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보다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국가제도와 사회 인프라 구축’과 관련하여 나도 현재 문과출신에 편중되어 있는 고급공무원의 수가 문·이과 균형을 맞출 수 있도록 조정되어야 한다는 최 교수님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그런데, 최 교수님께서는 우리나라 고급 공무원의 90%가 문과출신이라고 하셨는데, <월간조선> 95년 8월호에는 정부 2급 이상 고급공무원들 중에서 문과출신은 77%, 이과출신이 21%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최 교수님께서는 이러한 균형 맞추기 주장의 한 이유로서 문과출신이 국가정책 혹은 사업을 할 경우에 과학 마인드가 없어 보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추진하지 못한다는 점을 들고 계신데, 나는 이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단순히 균형 맞추기의 문제가 아니고 모든 주요 지도자들은 다 이공계출신이어야 한다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여기에서 과학기술적 사고방식의 결핍이 아니라, 지나친 과학기술만능주의, 즉 인간사회도 과학기술적 사고방식에 입각해서 통치·관리해야 한다는 “기술관료주의”(technocracy)가 팽배하게 됨으로써 나타나는 심각한 사회적 갈등과 문제들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나도 평소 최 교수님의 과학대중화 활동으로부터 많이 배우고 있는 사람으로서 여기에 제시된 최 교수님의 제안은 깊은 고민에서 우러나온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여기에서 PUS와 관련하여, 최근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과학기술자가 과학기술 지식이 결핍된 대중을 일방적으로 “계몽”함으로써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와 지지를 끌어내려고 했던 그간의 과학대중화사업은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는 인식에 기반하여 과학기술자와 일반 시민들 사이의 의사소통구조의 민주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고자 한다. 이러한 최근의 추세를 우리가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나라에서도 과학대중화, 혹은 PUS 활동이 단지 과학기술의 중요성만을 일방적으로 홍보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영역으로 여겨지는 과학기술 이슈들에 대한 논의과정에 일반 시민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강구하는 쪽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요컨대, 나는 현재 우리가 당면한 위기의 본질은 “이공계 위기”라기 보다는 시장숭배적 물신주의에 바탕한 학문/교육의 시장화·자본화와, 그로 인한 기초학문의 황폐화, 돈되는 쪽으로의 자원의 과다집중에 있다고 본다. 따라서 결국 이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 모색도 특히 1990년대 후반부터 우리 사회와 대학에 더욱 거세게 몰아닥치고 있는 시장주의적 광풍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고민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오늘 좋은 발표를 해주신 최 교수님께 감사드리면서 논평을 마치고자 한다.

이영희 | 우리모임 제도연구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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