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호] 생명과 진화에 대한 통찰
편집자 주
이번 호부터 다양한 주제별로 관련된 책들을 소개하고 짤막한 서평을 붙여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나 관련활동가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서평꼭지를 마련하였다. 이번 호에는 얼마전 타계한 미국의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의 진지했던 삶과 학문적 궤적을 그의 굵직한 저작들을 통해 따라가본다.
지난 5월 20일 신문에 "과학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스티븐 제이 굴드 별세"라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제목 하에 짤막한 그의 부음 기사가 실렸다. 향년 60세, 아직도 한창 학문적 활동을 벌여야 할 나이에 세상을 떠나다니. 신문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그는 오랜 기간 동안 암으로 투병했다고 하는데 지난 1월 하바드 대학에서 르원틴을 만났을 때 굴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에도 그가 아프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두 사람 사이가 벌어졌던 것인가? 하여튼 여러모로 그에게 빚진 것이 많았고 평소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로서는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안타까운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는 한 해에 한 권의 저서를 쏟아낼만큼 다산(多産)의 저자였고, 왕성한 입심과 다방면에 걸친 관심으로 높은 대중적 인기를 누렸고 그 때문에 지식인들 사이에서 질시와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뉴욕 양키즈의 열렬한 팬이기도 한 한마디로 멋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사랑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그가 과학의 탈신비화에 앞장섰고, 생명과 진화에 대한 가장 깊은 통찰력을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 Gould)는 1963년에 안티오크 대학을 나와서 1967년에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 이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하바드 대학에서 계속 고생물학과 진화생
물학을 연구했다. 그는 전형적인 68세대로 공공연하게 밝히지는 않았지만 그의 사상에는 사회주의적 색채가 짙게 깔려있다. 70년대 중엽에 케임브리지 보스톤을 중심으로 급진적인 성향의 과학
자들이 모여서 결성한 전국조직 "민중을 위한 과학(Science for the People)"에 참여했으며, 작고할 때까지도 진보적인 생물학자들의 비영리단체인 "책임있는 유전학을 위한 회의(Council for Responsible Genetics)"의 자문위원직을 유지했다.
사회생물학 논쟁
그는 같은 대학의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과 치열한 논쟁을 벌인 일로도 유명하다. 윌슨은 1975년에 <사회생물학; 새로운 종합(이병훈, 박시룡 옮김, 민음사)>이라는 주목받을만한 저서를 발표할 당시 사회학자를 비롯한 인문, 사회과학 분야 학자들의 반발을 가장 우려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앞에서 언급한 "민중을 위한 과학"의 주요 멤버인 같은 하바드 대학의 생물학자 리처드 르원틴(Richard Lewontin)과 굴드에게서 직격탄이 날아왔다. 한솥밥을 먹는 생물학자, 더구나 바로 아래층에 연구실이 있는 '사회생물학 연구그룹'의 동료 교수들에게서 뒤통수를 맞은 꼴이었다. 그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윌슨은 그의 자서전 <자연주의자(이병훈, 김희백 옮김, 민음사)>의 "사회생물학 논쟁"이라는 장(章)을 거의 굴드와 르원틴에 대한 이야기로 채울 정도였다. 당시 상황을 윌슨의 입을 통해 직접 들어보자.
"매카시 시대에 공산당원으로 고소된 학자들에게 하버드 대학은 비록 불완전할지는 모르지만 유명한 성역이었다. 그곳은 사람들이 정치적 공론가들의 명예훼손으로부터 보호되어 정중하게 상호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이 들끓는
다는 사실 자체가 이러한 고상한 목표를 위험 속에 빠뜨렸다.:
"사회생물학"이 출간된 이후 보스턴 지역의 과학자, 교사, 학생 15명이 모여 "사회생물학연구그룹(Sociobiology Study Group)"을 만들었다. 이 모임은 1960년대에 정치적으로 위험한 사상에 빠져있는 사람을 포함해서 과학자와 기술자들의 비행을 폭로하기 위해 시작된 급진파들의 전국조직인 "민중을 위한 과학"에 가입했다. 사회생물학 연구그룹은 대부분 하버드 대학의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신좌익학자들로 이루어졌는데 가장 유명한 사람 중 둘은 스티븐 제이 굴드와 리처드 르원틴이었다.(<자연주의자> 번역본 338쪽)이 그룹은 1975년 11월 13일자 <뉴욕 리뷰 오브 북스(New York Review of Books)>에 서신을 보내서 사회적 행동의 생물학적 기초를 확립하려는 모든 가설은 "현상유지와 일부 집단에서의 계급, 인종, 성에 따른 특권을 유전적으로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적으로 강대국이나 강대국의 지배집단들은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거나 확장하기 위한 지지를 이러한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로부터 얻어냈다 . . . 이러한 이론들은 1910년과 1930년 사이에 미국에서 시행된 단종법과 이민제한법의 시행 뿐아니라 결국에는 나치 독일이 가스실을 만들게 유도한 우생학 정책의 중요한 기초를 제공하였다"라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윌슨은 스스로도 고백했듯이 이 비판으로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 집단의 공격을 반박하기 위해 새롭게 사회주의와 인문학에 대한 공부를 시작해서 <인간본성에 대하여(이한음 옮김, 사이언스북스)>라는 책을 써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극히 사적인 견해이지만, 이 책은 퓰리처상을 받을만한 책이 결코 아니다. 아니면 퓰리처상이 원래 그런 수준이든지. 그리고 인문학이란, 그리고 인문학적 사유란 몇 년 공부해서 얻어질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인문학적 정신은 유전자 결정론과 생물학적 결정론을 적당히 장식하는 수사(修辭)나 양념은 더욱 아니다.
생명과 진화에 대한 통찰
그의 저서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것은 <다윈 이후(홍동선, 홍욱희 옮김, 범양사)>이다. 이 책의 부제는 "생물학 사상의 현대적 해석"이고 이후 발간된 <판다의 엄지(김동광 옮김, 세종서적)>,
(이외에 서평을 모아놓은 "An Urchin in the Storm, Essays about Books and Ideas(1987)"도 흥미로운 책이다)
물론 각 권에서 강조되는 초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사실 어느 생물학자가 다윈주의를 쉽게 극복할 수 있을까?
흔히 다윈이 진화와 진보를 동일시한 것처럼 오해되지만 실제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다윈은 자연선택이론의 가장 급진적인 특징은 보편적인 진보를 부정하고 국소적인 조정(local adjustment)이라는 개념을 채택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윈은 1872년 12월 4일자 편지에서 미국인 고생물학자 알피우스 하이야트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오랜 숙고 끝에 저는 진보적인 발전을 향한 내적 경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이 글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After long reflection, I cannot avoid the conviction that no innate tendency to progressive
development exists.) 그러나 또 다른 측면도 있었다. 굴드는 <원더풀 라이프>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윈은 제국주의적 팽창과 산업혁명에서 거둔 승리로 그 절정에 도달했던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비판자이면서 동시에 그 수혜자였다. 진보는 다윈을 둘러싼 문화의 슬로건이었고, 다윈은 그처럼 중심적이고 매력적인 개념을 공공연히 버릴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다윈은 국소적인 조정으로서의 변화라는 자신의 급진적인 관점에 대해 이전에 느끼던 안락함이 동요하는 와중에서 생물의 전체적인 역사 속의 한 주제로서 진보를 용인하는 견해를 표명했다."
따라서 굴드의 지적처럼 다윈은 진보라는 큰 주제에 대해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요동하고 갈등했다고 보는 것이 옳은 것 같다. <판다의 엄지(1980)>는 진화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비판하는데 초점을 맞추면서 진화론에 대한 사회문화적 오
해들을 지적한다. 그는 책 제목에 동물 이름을 하나씩 넣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 책에서 판다를 부상시킨 전략은 아주 훌륭했다. 판다는 사람과 흡사한 손을 가지고 있다. 즉, 엄지 손가락이 나머지 손가락들을 마주보는 형상을 하고 있어서 대나무 가지를 쥐고 다른 손으로 훑어서 잎을 먹는데 아주 유리하다. 그런데 판다의 손가락을 자세히 관찰하면 사람과 달리 엄지를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의 숫자가 4개가 아니라 다섯 개인 것을 알 수 있다. 굴
드는 판다의 엄지가 원래 손가락이 위치를 바꾼 것이 아니라 손목뼈의 돌기가 손가락과 흡사한 형태로 변형된 것임을 알아차린다. 판다의 엄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진화가 미리 세워진 목표를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는 무엇이 아니라 당장의 필요에 의해 임시방편으로 대응하는 무엇"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연은 뛰어난 땜장이이기는 하지만 성스러운 공장(工匠)은 아닌" 셈이다. 그는 이 책에서 진화를 인간의 근대적 인식이라는 틀 속에 가두거나 인간의 관점에서 "휘그식"으로 해석하는 것을 훌륭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는 그의 유명한 진화의 "단속평형설(punctuated equilibrium)"을 기반으로 한다. 그는 현대의 "종합설"이 진화를 지나치게 협애한 틀 속에 가두면서 진화를 국부 개체군이 환경의 영향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여 누적적이고 점진적인 적응적 변화를 하는 과정으로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는 진화가 "대부분의 계통이 각각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거의 변화하지 않지만, 이따금 급격하게 일어나는 종분화라는 사건에 의해 그 평형이 단속(斷續)되는 것이며, 진화는 이러한 단속의 전개와 생존이 뒤섞여 교차하면서 진행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이론은 "우연성(contingency)"이라는 주제를 정면으로 다룬 드문 과학서인 그의 주저 <원더풀 라이프>에서 충분한 의미와 메시지를 획득한다.
<원더풀 라이프>는 많은 상과 숱한 찬사를 받았고, 고생물학자로서의 자신의 전공을 충분히 살린 저서이다. 이 책의 중심 내용은 캄브리아기 폭발이라고 알려진 생물 진화의 매우 독특한 현상을 다루고 있다. 이 시기에 엄청나게 다양한 생물종들이 폭발적으로 진화했고, 이후 대격감을 거쳐 오늘날에는 불과 5퍼센트에도 못미치는 생물들만이 살아남았다. 이야기는 그 무렵에 남아있는 중요한 화석인 "버제스 혈암"의 발굴과 이 화석에 대한 고생물학자들의 다양한 해석에서 시작된다. 굴드는 이 책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분량을 찰스 두리틀 월코트(Charles Doolittle Walcott)의 전통적인 해석과 이후에 이루어진 해리 휘팅턴(Harry hittington), 데렉 브릭스(Derek Briggs), 그리고 사이몬 콘웨이 모리스(Simon Conway Morris)의 새로운 해석에 대한 분석에 할애하고 있다. 거기에는 월코트라는 대과학자의 과학에 대한 고정관점과 당시 사회의 이데올로기 등이 배어있고, 굴드는 과학사회학자 뺨치는 사례분석을 통해 풍부하고 날카로운 관점을 과시하면서 두 해석 사이의 차이를 지적한다. 이 책은 과학사회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사례연구가 될 수도 있다. 굴드는 서문에서 생명과 진화에
대한 원뿔형 도상(다양성이 원뿔처럼 퍼져나갔다는 생각)과 진보의 사다리 도상이라는 두 가지 도상(圖像, iconography)을 제시하고 집요하게 이 도상들을 비판해나간다. 또한 그는 "내러티브"(narrative)를 중심으로 한 역사적 과학이라는 접근방법을 채택하면서 기존의 과학적 방법을 이렇게 비판한다.
우리의 언어는 과학에 대한 가장 한정적이고 고약한 고정관념을 나타내는 어구들로 가득차 있다 . . . 우리는 "과학적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학교에서는 자연 지식에 도달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단일한 경로라도 되듯이, 마치 하나의 공식으로 경험적 실재에 얽힌 잡다한 수수께끼를 모두 풀 수 있기라도 하듯, 학생들에게 과학적 방법에 대해 가르친다 . . . 편견이 없는 사람들에게 발휘하는 평범한 호소력을 넘어, "과학적 방법"이라는 말에는 실험실에서 흰 가운을 입고 계기를 조정하고 있는 남자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개념과 절차들의 집합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절차들
은 강력하지만 자연의 다양성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 결과들, 즉 그 미세한 부분까지 고려하면 오직 단 한차례만 일어날 수 있는 엄청나게 복잡한 사건들을 설명하려고 시도해야 하는 과학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 . . 그 적절한 방법은 흔히 생각되는 것처럼 실험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러
티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과학적 방법"이라는 정형화된 관념은 환원불가능한 역사에서는 설 자리가 없다.
그가 이 책에서 중심적으로 다룬 우연성의 주제에서도 그는 다윈에서 출발점을 구한다. 다윈은 "배경의 법칙"과 "세부사항의 우연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캄브리아 대폭발과 그 이후의 격감(激減)에서 현생생물로 이어지는 생물의 역사에서 우연성이라는 흔히 과학에서 인정하기 싫어하는 요인이 중심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제기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만약 현재 사용되는 생물 분류체계가 적응적 향상에 의한 진보적인 다양화의 최종 결과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격감이라는 복권추첨에서 운좋게 살아남은 몇 안되는 생존자를 기록하는 것이라면, 생명의 테이프를 재생했을 때 완전히 다른 해부학적 집합이 남게 될 것이고, 이후 역사는 그 자체로서는 충분한 의미를 가질 수 있겠지만 우리가 알
고 있는 역사와는 전혀 다른 무엇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만약 생명의 테이프를 되감아서 버제스 시대부터 다시 돌렸을 때 과연 인간이 나타날 수 있을까?"라는 유명한 질문을 던진다. 그는 버제스 혈암에서 발견된 수십억년 전의 초기 생물들의 놀라운 다양성과 그 이후의 진화 양상에 대한 논증을 통해 생명에는 미리 정해진 목적이나 계획이 존재하지 않으며, 지능을 가진 존재, 즉 호모 사피엔스가 태어났어야 할 어떤 필연성도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작은 개체군에서 불안한 출발을 한 후, 운좋게 성공을 거두었을 뿐이며 전지구적 경향이 낳은 산물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의 사건(a thing), 역사의 한 항목일 뿐 보편원리의 구현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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