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네덜란드 과학상점을 찾아서
서울에서 암스텔담까지
편집자주
지난 7월 초반, 우리 모임 이영희 대표와 김병윤 회원은 과학문화재단의 ‘한국형 과학상점 모형 연구’ 프로젝트를 위해 네덜란드의 과학상점들을 방문했다. 과학상점에 대한 논의 뿐만 아니라 실제로 방문한 결과를 담고 있어 회원 여러분들에게 생생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병윤 회원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길 이 기획은 2달 전부터 계획되었으나 필자의 개인사정으로 이번 호부터 3회에 걸쳐 연재될 계획이다.
7월 7일 일요일 아침, 부랴부랴 짐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제대한 지 1주일만에, 그것도 한 번도 외국에 안 나가본, 게다가 칠칠치 못한 작은아들이 미덥지 못했던 지 어머니는 버스타는 곳까지 따라나섰다. 가방을 굴리면서 가는데 “이런” 내 왼쪽으로 지나가는 버스, 저것은 내가 타야하는 버스가 아닌가, 약간 여유있게 나왔는데 왜 이러지. 저건 30분에 한 대씩 오는 데. 후루룩 달려서 겨우 탑승. 이제 인천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어쨌든 약간 불안하다.
인천공항에서 이영희 선생님을 만나서 탑승 수속 및 환전을 하고 비행기에 탔다. 날씨도 그 날따라 좋았고 좌석도 편한 자리였다. 출발. 지겨운 11시간의 비행. 이영희 선생님과 나는 계속 위스키, 와인, 맥주를 먹어가며 지루한 시간을 달랬다. 암스텔담 스키폴 공항. 비행기에서와는 달리 점점 우리 말이 안들리더니 짐을 찾아서 입국수속을 밟고 나가니 더욱 난감해졌다. 이렇게 복잡할 수가! 이영희 선생님을 놓치면 나는 졸지에 국제미아가 되겠구나, 선생님 저를 버리지 말아주세요.
스키폴 공항은 역과 공항이 같은 건물에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기차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기 위해 암스텔담 중앙역으로 갔다. 중앙역에서 내리니 ‘아, 유럽에 왔구나’라는 생각이 물씬 들었다. 최근에 양빈때문에 텔레비전 뉴스에 가끔 나온 허란춘같은 네덜란드 도시의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3∼4층의 오래된 건물들, 좁은 길, 아스팔트보다는 보도블럭, 전차 등은 충분히 이국적이었다. 다만, 동양인 아니 한국인이 마이너리티인 사회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동시에 긴장되기도 했다. 이제는 숙소로 가야 한다.
숙소인 호스텔로 갔더니 아, 조금 둔해보이는 청년이 접수를 보고 있었다. 첫인상은 틀리지 않았다. 우리 일정이 암스텔담→그로닝겐→위트레히트→트웬테대학→암스텔담이었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 말고 나중에 다시 올 건데, 그거 알고 있냐,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예약을 할 수 있냐, 결제는 이번에 한꺼번에 하겠다는 등의 설명을 했더니, 이 친구가 처음에는 이해를 못하는 것이었다. 이영희 선생님의 반복되는 설명 끝에 겨우 이해한 이 친구, 이제 돈계산에 들어갔다. 쉽지 않았다. 그 일을 처리하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우여곡절 끝에 문제를 해결하고 짐을 풀고 나서 암스텔담 관광에 나섰다. 아, 그런데 엄청나게 졸리기 시작했다. 11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서 수속을 마칠 때까지 2시간 정도 걸렸으니 한국시간으로는 한밤중인데 서울과 8시간 차이가 나기 때문에 현지 시간으로는 이제 겨우 오후 5시 정도인 한창 시간이었다. 일단 다시 번화가인 중앙역으로 나서서 암스텔담 운하를 배타고 쓰윽 한바퀴 돌고 거리를 돌아다녔는데, 정말 말그대로 암스텔담은 국제화된 도시였다. 여행객도 많고 인종도 다양했다. 그런데 거기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건 그렇게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돌아다니다 보니 특징적이었던 것은 교통수단이었다. 네덜란드 전체가 그렇지만 암스텔담도 평평하기 때문에 전차교통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자전거가 아주 많았다. 그러나 자전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타는 것과는 수준이 달랐다. 기어가 있는 자전거는 찾아보기가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산악용 자전거나 경기용 자전거같이 생긴 것도 거의 없었고 대체로 평범하고 낡은 자전거들이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주워가지도 않을 수준의 자전거들을 암스텔담 시민들은 타고 다니고 있었다. 이게 유럽인들의 검소함인가?
저녁을 먹고 나서는 거리구경 후속편을 나섰다. 8시가 넘었지만 아직 해가 지지는 않았고 암스텔담의 유명한 곳의 하나인 섹스박물관으로 갔다. 박물관은 중앙역 앞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고 보통 집같은 곳을 전시공간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주요 전시물은 옛날부터 지금까지의 춘화나 포르노사진들, 성을 소재로 한 조각품, 중세의 정조대, 페티쉬·동성애·관음증 등 성과 관련된 여러 행태들에 대한 전시물들이 있었다. 이런 전시가
공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문화가 네덜란드를 유럽에서 가장 개방적인 곳으로 만들었던 하나의 계기였을 것이다. 이어서는 또하나의 명물인 홍등가로 향했다. 홍등가로 가는 길은 역시 범상치 않았다. 마약을 한 듯한 사람들도 눈에 더 많이 들어왔고 번화가와는 또다른 분위기였다. 이렇게 도착한 홍등가는 역시 관광명물답게 고객들보다는 관광객들이 더 많아 보였다. 매춘부들은 자신의 영업장에서 나오거나 호객행위를 하지 않고 고객이 들어가
서 흥정을 해야하는 듯했다. 운하를 따라 길 양편에 주욱 늘어선 홍등가는 기대만큼 화려하거나 거대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게 나름의 관광명소가 될 수 있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었다. 하나 아쉬웠던 것은 김동광 선생님이 함께 오실 수 있었으면 아주 좋아하셨을 텐데, 같이 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정말 많이 즐거워 하셨을 텐데.
8일 아침, 첫번째 목적지인 자유대학(Vrije Universiteit)으로 갔다. 네덜란드는 주별로 하나의 대학이 있는데, 암스텔담에만 암스텔담 대학과 자유대학, 두 개의 대학이 있다. 전차를 타고 자유대학으로 가서 만나기로 한 건물의 로비로 향했다. 잠시 기다리니 만나기로 한 캐스퍼(Marlijn Caspers)와 리어담(Guido L.J. Leerdam)을 만났고 과학상점 사무실로 찾아갔다. 리어담은 매우 친절하다는 인상을 주는 호리호리하고 별로 크지 않은 아저씨였으며 캐스퍼는 동양적인 느낌이 약간 드는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리어담은 국제협력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캐스퍼는 과학상점 코디네이터로 리어담으로부터는 자유대학에서의 계약연구(contract research)에 대한 얘기와 “살아있는과학(living knowledge)”에 대한 논의를 듣고 캐스퍼로부터는 과학상점의 운영에 대한 것을 주로 듣기로 했다.
과학상점 사무실은 우리나라의 교수사무실 정도의 크기였으며 두 명이 같이 일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자유대학의 과학상점은 대학본부 커뮤니케이션과 산하의 지식이전부 아래있는 세 개 부서 중 하나로 되어 있는데, 그리 좋은 환경으로 보이지는 않았다(다른 두 곳은 리어담이 있는 국제협력과 산학협력을 담당하는 기술중개소(transfer point)다). 캐스퍼는 예산절감을 이유로 과학상점을 폐쇄하거나 산학협력을 하는 부서와 통합하려는 움
직임이 자유대학에서도 있다면서 자신들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유대학의 과학상점은 집중형이라서 하나의 과학상점에서 지역사회나 시민들로부터 연구의뢰를 받아서 연구를 수행한다. 간단한 자문이 아닌 연구는 1년에 30건 정도를 수행하고 있으며 우리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20명의 학생이 11개의 프로젝트를 진행중이었다. 여기에서 코디네이터는 대학, 학생, 고객들 사이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할 뿐만 아니라 연구의 수준까지 보장해야 하는, 여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방학기간이라서 다른 사람은 없었지만 학기 중에는 다른 한 명과 함께 2명이서 코디네이터 역할을 한다고 했다.
2시간 정도의 인터뷰를 마친 후에는 자유대학 캠퍼스를 잠시 둘러보고 내부의 식물원을 들른 후, 국제무역센터 ― 여기도 WTC였다
― 에서 점심을 먹고 캐스퍼와 리어담의 환송을 받으면서 암스텔담 남부역에서 우리의 네덜란드 출장계획을 조정해준 헹크 물더르
(Henk Muldur)가 있는 그로닝겐으로 향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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