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6년 05-06월 2026-05-06   43509

[이슈] 축제와 배제 : 밀려나는 공공성

축제에 참여한 관객들의 사진. 펜스 뒤에 서서 손을 위로 뻗어 공연을 보고 있다.
ⓒMathurin NAPOLY / matnapo, Unsplash

공공성은 더 이상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 공공성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선언에 머물지 않는다. 공공성은 지금도 분명 존재한다. 다만 그것은 더 이상 선언으로 존재하지 않고, 선택과 배제의 구체적인 장치로서 ‘무엇이 누구에게 어떻게 허용되는지’ 결정한다. 구체적인 장치로 작동하는 공공성은 대개 중립을 가장한다. 접근은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이고, 참여는 누구에게나 가능하다고 떠든다. 그러나 실제로는 접근의 조건과 참여의 방식이 정교하게 설계되어 특정 집단을 유리하게 만들고 다른 집단을 배제한다. 이때 공공성은 확대되는 것이 아니라 재편되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참여의 방식과 조건이 점점 더 균질화되고 협소해지기 때문이다.

변형된 공공성, 사유화된 공공재

이 공공성 재편의 핵심에는 공공재의 사유화가 있다. 공공재는 본래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배타적으로 소유할 수 없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어야 하는 자원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현재 공공재는 점점 더 ‘관리되는 자원’으로 변형된다. 관리란 곧 통제를 의미하며, 통제는 곧 선택을 전제한다. 어떤 이용은 허용되고, 어떤 이용은 제한된다. 문제는 이 과정이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둔갑한다는 점이다. 안전, 효율, 질서, 그리고 경험의 질을 관리하겠다는 명목은 공공재의 이용을 제한하는 근거로 동원된다. 그 결과 공공재는 여전히 공공의 이름을 유지하지만, 실제로는 사유화된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러한 사유화는 단발적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문법이다. 접근은 사전 등록이나 추첨을 통해 제한되고, 이용은 특정 시간과 동선으로 통제되며, 참여는 규정된 방식으로만 허용된다. 이러한 조건은 겉으로는 합리적이고 불가피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조건들이 중첩될 때, 공공재는 더 이상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 아니라 조건을 충족한 사람만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로 변한다. 공공성은 여기서 약화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방식으로 재구성된다. 그것은 더 이상 보편적 권리가 아니라 선별된 접근의 결과가 된다.

광장과 중계는 전통적으로 공공성의 핵심 장치로 간주되어 왔다. 광장은 집합과 표현의 공간이며, 중계는 동시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매체다. 이 둘은 모두 ‘함께 있음’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오늘날 이 전제는 점점 더 조건화된다. 광장은 이벤트를 위해 재구성되고, 중계는 권리와 계약을 통해 분절된다. 광장에서의 참여는 안전과 효율을 이유로 제한되며, 중계의 접근은 기술과 비용의 조건에 따라 차등화된다. 그 결과, 동일한 사건을 두고도 누군가는 현장에 있고 누군가는 화면 앞에 있으며, 누군가는 아예 접근하지 못한다. 공공성은 이 과정에서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

이 지점에서 공공성의 개념을 다시 물어야 한다. 공공성은 단순히 공공재의 존재로 보장되지 않는다. 광장이 존재한다고 해서, 전파가 개방되어 있다고 해서, 공공성이 자동으로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공공성은 접근 가능성과 이용 가능성, 그리고 참여의 조건이 어떻게 설계되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라도 실제로는 특정한 시간에 특정한 방식으로만 이용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제한된 공공성이다. 누구나 수신할 수 있는 방송이라도 특정한 플랫폼과 비용을 요구한다면 그것 역시 변형된 공공성이다. 공공성은 물리적 존재가 아니라 작동 방식이다.

축제는 어떻게 배제를 은폐하나

대규모 공연이나 국제 스포츠 이벤트와 같은 축제는 공공성의 이상이 가장 강하게 호출되는 순간이다. 모두가 함께 즐기는 경험, 동일한 감정을 공유하는 시간, 그리고 사회적 경계가 일시적으로 완화되는 장면이 강조된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배제는 더욱 정교하게 작동한다. 축제는 참여의 문턱을 낮추는 대신, 참여의 형식을 제한한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정해진 방식으로만 참여할 수 있다. 그 방식에 부합하지 않는 참여는 비정상적이거나 위험한 것으로 간주된다.

공공성의 작동 방식은 여기서 명확해진다. 공공성은 더 이상 ‘모두에게 열려 있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대신 ‘관리된 열림’으로 재정의된다. 이 열림은 완전히 폐쇄되지 않기 때문에 공공성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조건을 충족한 경우에만 작동한다. 접근은 허용되지만 제한되고, 참여는 가능하지만 규정되며, 경험은 공유되지만 표준화된다. 공공성은 이처럼 부분적으로 유지되면서 동시에 구조적으로 약화된다.

문제는 이러한 작동 방식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다. 공공재의 관리와 통제는 필수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제는 불가피한 결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 ‘불가피성’은 실제로는 특정한 선택의 결과다. 다른 방식의 설계가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방식이 선택된 것이다. 따라서 공공성의 약화는 단순한 시대적 변화가 아니라 정치적·경제적 선택의 산물이다.

축제는 이러한 선택이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장이다. 축제는 본래 일상의 질서를 일시적으로 중단시키는 장치였다. 그러나 현재의 축제는 오히려 질서를 강화한다. 동선은 통제되고, 행동은 규제되며, 감정은 조율된다. 참여자는 자유로운 행위자가 아니라, 설계된 경험을 소비하는 사용자로 위치 지워진다. 이때 배제는 직접적인 금지로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참여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이들이 자연스럽게 탈락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축제는 여전히 개방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선별된 참여자들의 경험으로 구성된다.

방패를 들고 있는 경찰의 모습.
ⓒRicardo Arce, Unsplash

밀려나는 공공성 다시 묻기

이 과정에서 공공성은 주변화된다. 공공성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로 언급되지만, 실제 설계의 중심에 놓이지 않는다. 대신 효율, 수익, 관리 가능성, 그리고 데이터화 가능성이 우선한다. 공공성은 이들 기준을 정당화하는 언어로 사용되지만, 그 자체로 설계를 지배하지는 않는다. 그 결과 공공성은 중심에서 밀려나 주변으로 이동한다.

따라서 공공성을 다시 묻는다는 것은, 이 주변화를 문제화하는 일이다. 공공성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어떤 조건 아래 유지되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약화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특히 축제라는 장을 통해 공공성을 바라볼 때, 우리는 포함과 배제가 동시에 조직되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축제는 공공성의 이상을 가장 강하게 호출하면서도, 동시에 그 이상이 어떻게 제한되는지를 드러낸다.

결국 공공성은 더 이상 자명한 가치가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때로는 축소되며, 때로는 다른 가치에 종속된다. 공공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접근의 조건을 재설계하고, 참여의 방식을 다양화하며, 배제의 구조를 가시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공공성은 계속해서 주변으로 밀려날 것이다.

이 글이 제안하는 문제의식은 단순하다. 축제에서 무엇이 배제되는지를 보자는 것이다. 그 배제가 우연인지, 불가피한지, 혹은 설계된 것인지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공공성은 그 질문 속에서만 다시 구성될 수 있다. 이어지는 논의에서 우리는 광장과 중계라는 두 장치를 통해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드러날 것은 공공성의 부재가 아니라, 공공성이 어떻게 변형되고 있는지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일 것이다.


필자 박미숙의 프로필 사진. 얼굴 사진이다.

박미숙 대중문화 독립연구가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대중문화 연구를 했다. 제주도에서 강아지 5마리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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