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6년 05-06월 2026-05-06   42836

[여는글] 열려 있다는 착각

참여사회 3-4월호 내지 디자인. '에너지 민주주의로 가는 길'이라고 적혀있다.
ⓒ프레임워크

봄에서 여름으로 건너가는 길목입니다. 어디를 가도 좋을 때라 자꾸 집 밖으로 발길을 내딛게 되는 계절입니다. 별다른 목적지 없이 동네를 산책해도 충분히 좋지만 햇살과 바람을 따라 찾게 되는 자기만의 공간이 있다면, 마주한 계절을 만끽하면서 다음 계절을 기대하고 어느새 내년에 다시 찾아올 마음을 품게 됩니다. 이즈음이면 점심시간을 활용해 회사 근처 한강공원을 걷곤 합니다. 휴가를 냈는지 이미 자리를 잡고 편히 쉬는 이들을 부러워하면서 말이죠. 그러고 보니 저는 어느 도시를 가도 공원을 찾는 것 같습니다.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라 그곳을 처음 찾은 이방인에게도 부담스럽지 않고, 계절과 날씨에 따라, 그곳에 머무르는 이들에 따라 매번 분위기와 풍경이 달라지니 지루하지 않으니, 그리고 당장 보이지는 않지만 그곳을 가꾸는 이들의 손길을 곳곳에서 마주할 수 있어, 때로 늦은 밤 공원을 홀로 걸어도 안전하고 포근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공원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공간으로 광장도 떠오릅니다. 저에게는 오랜 시간 광장은 참여보다는 관찰의 대상이었습니다. 그곳에는 늘 무언가 외치는 이들이 있고 그 내용이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국가대표 축구팀을 응원하는 이들이, 때로는 자신이 믿는 종교의 목소리를 드높이는 이들이, 때로는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정치적 신념으로 단결하는 이들이 그곳에 모입니다. 광장은 넓은 빈터를 뜻하지만 광장을 떠올릴 때면 모인 사람 없는 장면은 크게 기억에 남지 않습니다. 공원은 사람보다 배경의 역할이 큰데 광장은 아무래도 밋밋한 배경보다는 그곳에 모인 사람의 모습, 목소리, 움직임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은가 싶기도 합니다. 관찰한 장면보다는 참여한 장면이 강렬하게 남아 있듯, 어느 때 어느 장면에 함께했는지에 따라 광장의 역할과 의미, 가능성에 대한 생각도 다를 거라 짐작합니다. 그렇기에 광장이 이런 다양한 생각이 모이고 이야기가 흐르는 공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광장에서 펼쳐진 두 가지 강렬한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첫째는 지지난 겨울 전국 곳곳 광장에서 윤석열의 탄핵을 외치며 엄동설한 서로의 곁을, 결국 민주주의를 지킨 시민의 힘입니다. 매주 그곳에서 함께하며 광장이 우리의 것임을, 광장이 살아있음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둘째는 얼마 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된 BTS의 컴백 공연입니다. 정말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기대한 복귀였기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큰 관심을 모았고, 그런 만큼 논란도 적지 않았습니다. 광장의 대규모 사용과 과다한 통제, 공공의 지원 등이 주요 논점이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광장은 늘 그곳에 언제나 열려 있는 것으로 여겨질 텐데, 상대적으로 익숙한 전자의 활용과 드물게 벌어진 후자의 활용 사이에서 새삼 광장의 역할과 의미를 짚어보게 됩니다. 또한 두 모습을 잇는 응원봉에서 우리가 찾아가야 할 광장의 빛을 짐작해 보기도 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이러한 최근의 경험과 논의를 담아 ‘공공성’을 탐색합니다. 앞서 공원과 광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중심으로 이야기했지만, 최근에는 올림픽과 월드컵 중계를 둘러싼 보편적 시청권 역시 같은 맥락에서 토론되고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많은, 어쩌면 거의 모든 것이 자본에 포섭되어 같은 논리로 구성되는 상황에서, 그 자본이 생성되고 유지되며 확장될 수 있는 바탕이 무엇인지, 기여와 보상의 기준과 범위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무엇보다 어떤 이들은 이 세계에 진입 가능하고 어떤 이들은 배제되는지 등 본격적이고도 세심하게 살펴야 할 물음이 적지 않습니다. 광장과 중계권 외에도 각자 삶의 영역에서 어떤 지점이 같은 맥락에 놓일지, 더 많은 논의의 주제가 발견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합니다.

근래 인류학, 사회과학 분야에서 ‘커먼즈’라는 개념이 자주 논의된다고 합니다. 그간 공유지, 공유재, 공동자원 등으로 번역되었는데,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의미를 적극적으로 밝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삶과 관계의 방식을 논의하는 장이라고 합니다. 한디디 저자의 《커먼즈란 무엇인가》(빨간소금, 2024)는 ‘자본주의를 넘어선 삶의 주권 탈환하기’를 제안하며 물질에만 얽매이지 않는 관계를 말합니다. 서로가 발화하지만 대화는 참여한 모두의 것이겠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대화 이전과 이후에 서로의 생각과 관계가 달라진다는 것이니, “함께 섞이며 나누는 활동”이 펼쳐지는 공공, 공동의 장으로서 광장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겠습니다.


박태근 〈참여사회〉 편집위원장의 프로필 사진

박태근 〈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책을 만들고, 온라인 서점에서 MD로 책을 팔고, 여러 매체에서 책을 알려왔습니다.〈월간참여사회〉 ʻ읽자’ 코너에서 필자로, 편집위원회에서 편집위원으로 오래 활동하다 편집위원장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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