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작년 1학기 동안 나는 독일 튜빙겐대학 한국학과에서 강의를 맡았다. 그때 나를 도와준 학생조교가 Anna Rhielmann(한국명: 윤안나)이다. 그녀는 독일에서 대학을 마친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지난 8월에 한국에 왔다. 그녀의 꿈은 한국에서 배우가 되는 것이다. 인사동 홍보벽보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운 처녀가 바로 안나이다. 그녀는 아주 영특해서, 독일대학의 복잡한 행정과 자료수집을 손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나를 많이 도와주었다. 이 예쁜 안나가 연극에 출연한다기에 바쁜 일정을 틈내어 남산 드라마센터에 갔다. 정신없이 11월을 보내다보니, 겨우 이틀 전에야 생각이 나서 간신히 구석자리의 표를 구해 연극을 관람했다.
연극의 제목은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내안의 김수영을 찾아서”였다. 이 연극은 김수영이 살았던 시대와 작가가 살고 있는 지금을 오가면서 진행되었다. 연극 무대에서 이 젊은 작가는 왜 우리는 동회에 가서, 마트에 가서, 은행에 가서 분노하면서, 정말 중요한 일에는 분노하지 않는가를 집요하게 질문한다. 일제의 탄압 하에서 그리고 한국 전쟁의 와중에도 이념논쟁으로 갈등하는 동료문인들을 보면서 절망하고, 인민군으로 강제 징집되었다가 도주하지만 다시 포로수용소로 끌려가는 시인 김수영의 삶을 쫓아가면서, 이 젊은 작가(김재엽)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또한 연극 중간 중간에 이승만과 박정희 그리고 이들에 아부하는 무리들의 자기 합리화 발언을 교차시킨다. 지금의 심란한 정치현실에 대한 풍자도 간간히 배치해서 청중으로 하여금 폭소를 터뜨리게 하였다.
이 연극에서 안나는 한국에 관광 온 독일 젊은이로 출현한다. 그러나 극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녀는 유창한 한국어로 나치독재와 이후의 치열한 과거청산 과정을 소개한다. 그녀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2005년 동·서독 분단의 경계선(베를린)에 새로 설치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의 (유태인의 죽음을 상징하는) 2711개 시멘트기둥이 배경화면으로 지나간다. 그리고 연극의 마지막은 김수영의 시 <절망>의 영상자막으로 마무리된다.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1965.8.28)
절망은 게으름이다
이 연극을 보면서 놀랐던 것은 젊은 관객들이 빈 자리 없이 극장을 꽉 채웠다는 점이다. 50, 60대는 거의 다섯 손가락으로 셀 정도였다. 연극의 내용은 현재의 정치와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었고, 젊은 청중들은 때로는 박수로, 때로는 환성으로 응답하고 있었다. 나는 안나를 지켜보면서 세계화의 시대를 실감했다. 이렇게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는 소통과 정보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거기에다가 연극이라는 예술장르가 주는 정치적 동력을 새삼 실감한 것도 또 다른 성과였다. 내 안에서 무언가 희망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 연극과 김수영의 시는 우울한 연말연시를 견뎌내야 할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자원외교 문제, 통진당 해산, 정윤회 사건, 민변 변호사들에 대한 해악질에 이르기까지 심란하기 짝이 없는 정치현실 앞에서 모두들 절망하고 있다. 절망 끝에 오는 분노가 아래로부터 거대한 힘으로 다시 치솟아 오르는 그런 희망의 싹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박정희 군부독재가 시작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에 씌여진 김수영의 시를 보면서, 지금 우리 모두가 엄살을 부리고 있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가난과 우울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절망을 꾸짖던 우리 선배들을 다시 생각해보라.
역사가들은 역사를 단기지속, 중기지속, 장기지속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짧은 국면에서 드러나는 절망적인 상황은 중기지속에서 보자면, 희망의 출발일 수도 있다. 그리고 좀 더 긴 주기에서 보자면 우리 역사는 꾸준히 전진하고 있다. 평범한 서민으로 살아가던 세월호 유가족들이 저렇게 긴긴 싸움을 통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는 것을 보라. 시민들이 경제민주화를 요구하는 것을 보라. 이 모두가 희망이 아닌가? 절망은 우리의 게으름이다.
정현백
참여연대 공동대표.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절망하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희망의 전도사를 자임하고 있다. 정말 계속 낙관적일 수 있을지 명확한 자신감도 없으면서 말이다. 그래도 새해는 희망으로 시작하고 보자는 생각이 확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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