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21년 12월 2021-11-30   1652

[보자] 비혼·비출산 권하는 영화?

비혼·비출산 권하는 영화?

 

 

내가 알던 ‘내’가 아냐

 

“지운다고? 우리 애를? 

너 그런 말을 왜 이렇게 쉽게 하냐.”

“나 쉽게 하는 말 아냐.”

 

영화 〈십개월의 미래〉에서 남자와 여자의 대화다. 여기까지 영화를 본 관객들은 여자가 ‘쉽게’ 꺼낸 얘기가 아니라는 데 공감할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영화의 주인공은 국제 기준 28세, 한국나이 29세 여자 ‘미래’(최성은 분)다. 미래는 독립해 혼자 살며 스타트업 회사에 다닌다. 가끔씩 부모와 보내는 시간은 그에게 일의 연장과 다름없다. 잔뜩 잔소리를 듣고 돌아와 지쳐있는 미래에게 애인 ‘윤호’(서영주 분)는 휴식을 주는 “아름다운 생명체”다.

 

독립적인 사회인으로서 그럭저럭 굴려온 미래의 일상에 갑작스럽게 알게 된 임신 사실이 제동을 걸어온다. 이때 스크린 화면에 뜨는 단어.

 

stupidity(멍청함)

 

“임신할 만한 일”을 한 기억이 없는 미래는, 임신 10주가 돼도 알아차리지 못한 스스로의 ‘멍청함’이 믿기지 않아 무려 열다섯 개의 임신 테스트기를 사용하고, 산부인과 전문의를 찾아가 진상처럼 물고 늘어진다. 임신 중절을 할 수 있냐고 묻는 미래에게 ‘저출산’ 이야기를 꺼내는 의사. 미래는 분노한다. “제 인생이 뒤집어지게 생겼어요, 지금. 이렇게 하면 저출산이 고출산 돼요?” 다른 병원을 찾아가보지만, 임신중절 비용은 눈이 번쩍 뜨일 정도. 코딩 프로그래머로서 딱 떨어지는 해답을 찾고 싶지만, 세상이 모순덩어리라는 사실만 확인할 뿐이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12월호 (통권 291호)

십개월의 미래 Ten Months

2020 | 한국 | 드라마 | 96분 

감독 남궁선 출연 최성은, 백현진, 서영주, 류이든  

 

내가 알던 ‘네’가 아냐

 

한편 ‘애 아빠’ 윤호는 정확히 하는 일이 무엇인지, 그걸로 수익은 벌고 있는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책임지겠다”며 미래에게 결혼을 조르고, 미래가 외면하자 부재중 전화 88통을 남긴다. 끝내 미래의 부모 집까지 찾아오자 미래는 윤호에게 화를 내다가 그만 부모에게 임신 사실을 들켜버린다.

 

얼렁뚱땅 결혼 절차를 밟게 된 두 사람. 그러면서 미래는 그동안 몰랐던 윤호와 조우한다. 윤호는 엄마가 음식을 직접 입에 넣어주는 집안에서 자란 남자였다. 예비 시아버지는 “이제 너네 인생은 너희 것이 아니다”, “(시댁에) 들어와 살아” 통보하고, 예비 시어머니는 자애로운 미소로 ‘선물’한 앞치마를 목에 걸어준다. 순간 목이 졸릴 듯한 표정을 짓는 미래. 

 

부친은 채식주의자인 윤호에게 양돈장에서 일하라며 강요하고. 아들이 저항하면 자본으로 구슬리다가, 거슬리면 금새 손을 올린다. 가부장적 폭력 아래 고통 받던 윤호 또한 폭력에 물들고, ‘아름다운 생명체’인 줄 알았던 존재는 이제 없다. 

 

하지만 마냥 우울하지만은 않은

 

“니가 니 생각만 하니까. 넌 엄마잖아.” 임신한 여성에게 엄마로서의 역할만 강요하는 사람들. 그중에 윤호도 있다. 미래가 만든 어플리케이션이 투자를 받게 되고, 회사가 중국 상해로 이전하면서 팀원들도 이주해야 하는 상황에도 윤호는 비협조적이다. 설상가상 미래가 임신한 사실을 회사에 알리게 되고, 회사는 미래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한다.

 

그밖에 임신과 출산에 세상이 주는 모욕들. “임신 어떻게 하는 건지 알만한 나이”라며 의뭉스럽게 미래를 희롱하는 중학생은 임산부 배려석을 ‘질싸(질 내 사정) 인증석’이라 부르며 낄낄 대는 남성 집단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미래는 당하고만 있지 않고, “어디 가만히 앉아있는 임산부한테 시비를 걸어!”라며 일갈하지만, 그런다고 봉변이 없던 일이 될 리 없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감독은 2015년 이 작품을 기획했고, 2018년 촬영했다고 전해진다. 그 다음해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의 헌법 불합치를 선언했다. 이후 영화 속 현실은 과연 얼마나 달라졌을까? 

 

여전히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하는 일은 어렵고, 여성의 경력 단절 문제는 심각하며, ‘노키즈존’으로 상징되는 혐오가 건재한다. 출생률을 높이는 궁극적인 길은 임부, 워킹맘, 아동 등에 포용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뿐이다. 이를 위해 사회구성원들은 ‘이런 경험’을 알고, 공감해야 한다.

 

영화 〈십개월의 미래〉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경험을 통과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마냥 고통스럽고 우울하지만은 않다. 리듬감 있는 편집과 코믹한 터치, 입체적인 캐릭터가 보는 즐거움을 준다. 

 

때때로 미숙하지만 대체로 당찬 ‘미래’ 역을 준수하게 연기한 최성은이 영화의 중심을 잡고, 백현진이 연기한 의사의 독특한 질감은 영화에 매력을 더한다. 첫 인상은 ‘저출산’을 들먹이는 꼰대 중년남성이자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의사처럼 보였지만, 의외로 매몰차지 않고 인간적 빈틈을 보이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무심하고 시니컬하지만 필요한 순간마다 곁에서 도움 주는 ‘김김’ 역의 류이든도 인상적이다.

 

미래는 처한 상황이 혼란스럽다며 태아에게 ‘카오스’라는 태명을 붙였고, 감독은 카오스에는 ‘새로운 우주가 탄생하는 시작’이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그래, 우리 이제 시작해 보자”라는 속삭임 뒤로 새겨지는 문장 “for my mother”는 언뜻 비혼·비출산 권장 영화로 보였던 〈십개월의 미래〉가 진정 전하고자 한 것이 위로와 응원임을 깨닫게 한다. 지난 10월 14일 개봉한 이 영화는 현재 온라인플랫폼에서 볼 수 있다. 

 


글. 최서윤 작가

〈월간잉여〉 편집장으로 많이들 기억해주시는데 휴간한 지 오래됐습니다. 가장 최근 활동은 단편영화 〈망치〉를 연출한 것입니다. 화가 나서 만든 영화입니다. 저는 화가 나면 창작물로 표출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인가 봅니다. 종종 칼럼이나 리뷰로 생각과 감정을 나누기도 합니다. 저서로 『불만의 품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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