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활동✨ 1994-2024 2024-08-26   7458

박근혜 정부 퇴진 운동

2016.10.~2017.3.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의 열기로 가득찬 광화문 광장. 참여연대는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수백번의 징후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유례없는 대통령 탄핵에 이르기까지 이명박·박근혜 집권 시기 이미 수많은 징후가 있었다. 박근혜 정권만 보더라도 집권 첫해부터 민영화와 노동개악 정책으로 노동자들의 파업과 투쟁이 일어났다. 이듬해 세월호 참사에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300명이 넘는 인명이 희생되는 것을 보면서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러나 성난 민심에게 돌아온 것은 경찰의 물대포와 국정원의 사찰, 공작 같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이었다.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 참여했던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져 끝내 목숨을 잃었고, 국제사회가 한국 정부에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일까지 생겼다.

재벌과 정치권력의 결탁으로 발생한 일련의 부정부패 사건들도 명백한 징후였다. 삼성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의 합병이 삼성물산 1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묵인 하에 강행됐는데, 합병을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등 불법 행위를 벌인 것이 드러났다.

언론의 자유 역시 후퇴를 거듭했는데, 박근혜 정부 시기 MBC 내 블랙리스트, 보도지침 부활 등 낙하산 인사를 통한 언론 통제 시도들이 끊임없이 벌어졌다.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밀실에서 진행하고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려고 시도하는 등 외교와 교육 분야에서도 후퇴는 계속됐다.

사회 모든 영역에서의 퇴행과 후퇴로 시민사회의 저항과 국정기조 변화 요구가 계속됐지만 박근혜 정권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6년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고, 2016년 7월 미르·K스포츠 재단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더니 10월 24일에는 문제의 태블릿PC 보도로 국정농단 사건의 스모킹건이 드러나게 됐다. 당초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규명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실세는 최순실이고, 청와대 비서관 등을 통해 대통령 연설문 등 각종 청와대 문서를 사전에 보고 받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정세 속에 보도 4일만인 10월 28일, 참여연대를 포함한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첫 간담회를 갖고 공동 행보를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10월 29일과 11월 5일 민중총궐기투쟁본부가 주최한 두 번의 촛불집회를 거쳐, 공동 대응기구인 ‘박근혜정권퇴진비상행동(이하 퇴진행동)’이 주최한 세 번째 촛불집회로 이어졌다. 이 즈음 매주 촛불집회 참가자는 폭발적으로 늘어 벌써 백만이 넘는 인파가 모이게 됐다. 이렇게 불이 붙은 촛불집회는 매번 예상 인원을 훌쩍 넘어 탄핵 인용 결정과 대선을 앞둔 시점까지 총 23차에 걸쳐 개최됐다.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누적 인원은 약 1,700만 명에 달했다.

10월 24일, 태블릿PC 보도가 있기 전부터 이미 청와대 비선 실세와 연관된 의혹들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2016년 5월 말 박근혜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에서 발표된 ‘코리아 에이드’ 대외원조 사업은 그러한 의혹 중 하나였다. 코리아 에이드가 발표되자마자 참여연대는 입장 발표와 토론회 등을 통해 해당 사업이 정부 연간 계획에도 없는 급조된 엉터리 원조 사업이라는 점을 밝혀내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어 9월에 최순실의 개인 회사로 알려진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 등을 통해 청와대 비선실세가 코리아 에이드 사업을 주도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참여연대는 관련 이슈리포트를 발표하며 대통령 측근 인사가 국정운영에 개입하여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을 벌이고 있는지 지적했다.

이윽고 참여연대는 10월 태블릿PC 보도 직후 최순실게이트가 더 이상 개인비리가 아니라 청와대, 특히 대통령과 뗄 수 없는 사건으로 확정되었다고 규정하고, 국민들이 이 사태를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 경고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무엇보다 국가 최고 권력자의 자리는 주권자가 투표로 부여한다는 믿음을 배신한 것에 분노했다. 어떠한 공식적 직책도 없는 최씨가 국가 최고 권력인 대통령의 문서를 사전에 받아보고 관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해소되거나 해명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이러한 충격과 분노는 주권자 시민과 시민사회 전반을 뭉치게 했다. 단체들은 10월 28일 간담회에 이어 30일 시국모임을 열고 촛불 운동의 기조를 ▲박근혜 대통령 퇴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철저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요구로 합의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는 사상 초유의 헌정파괴이자 민주공화국을 사라지게 만든 국가비상사태입니다. 이러한 비상 시국에 국민들은 즉각적인 박근혜 퇴진, 하야를 촉구하고 거리로 나서고 있습니다. 박근혜 퇴진과 모든 책임자들의 전원 사퇴와 처벌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수습될 수 없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리로 나서고 주권 회복을 강력히 요구하는 국민과 함께 책임을 다하고자 합니다. 각계에 비상 ‘시국회의’를 제안드리며 그 자리에서 서로의 의견을 확인하고 범국민적 공동행동을 지향하여 이를 성원하고 함께 하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고자 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2016년 11월 2일 비상시국회의 제안서 중

11월 2일 열린 비상시국회의에서는 1,5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국정농단과 헌정파괴, 엄중한 주권 침해사태로 규정하고 박근혜 정권 퇴진을 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촛불 집회는 서울만이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확산됐다. 11월 5일, 박근혜 퇴진 1차 대구시국회의가 대구 2.28공원에서 열렸는데, 당시 평생 새누리당을 지지했고 18대 대선에서도 박 대통령을 뽑았다는 60대 어르신들이 처음으로 집회에 참여해 촛불을 들었다.

2016년 11월 9일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발족 기자회견에서 퇴진행동은 야당에 대해 “국민은 루비콘강을 건넜는데, 국민을 선도해야 할 야당이 강가에 서성이고 있다”고 성토하며, 대통령 퇴진을 위한 국민의 행동에 야당이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특히 “총궐기로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키고, 지난 4년간의 실정을 일소해 민주, 민생, 평화가 숨쉬는 새 나라를 만들자”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백남기 농민에 가해진 국가폭력의 책임자 처벌, ▲노동개악-공공부문성과퇴출제 저지, ▲사드배치 저지, ▲위안부야합-한일군사정보협정 분쇄, ▲대화와 협력에 기반한 남북관계 정착,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지진지역 원전가동 중단, ▲가습기살균제 사태 해결, ▲농업살리기 기조로의 전환, ▲노점탄압과 여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중지 등을 실현 과제로 제시하였다. 박근혜 정권 집권 시기 내내 쌓여왔던 분노와 열망이 국정농단 사건을 계기로 분출되는 순간이었다.

촛불 집회가 본격화되고 상황이 숨가쁘게 돌아가게 되면서 참여연대는 다른 주요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상근자들을 퇴진행동에 대거 파견했다. 공동운영위원장, 대변인을 비롯해 퇴진행동 산하의 각 팀과 위원회에 참여하면서 매주 촛불 집회를 기획하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활동에 힘을 보탰다. 또 2016년 11월부터 대선이 있던 이듬해 5월까지 매주 토요일, 전체 상근자가 총 출동해 집회 스태프와 안전요원 등으로 함께 했다. 수 많은 회원들이 매주 집회에 참여했고, 23차 촛불 집회에 모두 참석한 회원들도 상당수였다.

광장은 분노의 함성과 촛불의 뜨거움으로 가득했지만 그 자체로 민주주의 축제의 장이기도 했다. 집회때마다 시민들의 기지 넘치는 깃발과 손피켓이 가득했고, 시민들의 자유 발언은 솔직하면서도 날카롭고 가슴 절절했다. 각양각색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광장이었다.

참여연대는 시민들의 집회시위의 자유가 경찰에 의해 제한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도 집요하게 해나갔다. 촛불집회 초기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행렬은 광화문 일대에서 경찰 폴리스라인에 막혀 더 이상 청와대 가까이 갈 수 없었다. 법률 상 제한 거리인 청와대 담장 100미터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었지만, 경찰은 과도하게 시민들의 집회시위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었다. 참여연대는 11월 5일, 촛불집회의 행진 금지통고에 대한 첫 번째 가처분신청 소송을 시작으로 주말 집회 때마다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맡았다. 이 소송에서 내리 다섯 번을 승소했는데, 12월 3일에는 드디어 재판부가 퇴진행동이 신고한 6차 촛불집회 및 행진에 대한 금지통고와 조건통보를 대부분 집행 정지시켜, 헌정사상 청와대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집회와 행진이 보장되게 되었다. 이날 6차 촛불집회는 전체 촛불집회 중 가장 많은 인원인 232만 명이 모인 것으로 기록됐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둔 주말, ‘더 이상 국민 뜻을 외면하지 말라’는 목소리를 모아내기 위해 수 많은 시민들이 강추위에도 집회에 참여했다. 결과적으로 국회는 234명 의원의 찬성 표결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켰다. 이후로도 촛불집회는 매주 이어져 2017년 3월 10일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이 내려지는 원동력이 됐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말이 생중계로 울려퍼지자 시민들은 헌법재판소 앞에서,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새로운 대한민국이 될 것이라는 기쁨과 기대가 섞인 함성이었다.

참여연대는 광장에 나온 시민들 하나하나의 외침과 요구가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에 중요한 시작점이라고 보고, 개혁의 열망을 쏟아놓을 장을 마련하는데에도 힘을 쏟았다. 퇴진행동 내 시민행동팀을 두고 ‘소원종이배’ 만들기, 모바일투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주관했다. 헌법재판소 판결을 앞둔 2월 18일에는 ‘한국 사회 개혁을 위해 어떤 것이 바뀌어야 할지’ 토론하는 시민대토론 “2017, 대한민국, 꽃길을 부탁해”를 개최하기도 했다. 무려 2,201명의 시민들이 장충체육관에 모여 모듬별 토론을 통해 다수가 공감하는 개혁요구안들을 추리고, 테이블에서 뽑힌 시민대표들이 2월 25일과 3월 4일 두 차례에 걸친 추가 토론을 거쳐 요구안들을 다듬어진 문장으로 정리했다. 이러한 숙의의 과정을 통해 탄핵결정 직후 촛불 집회에서 토론 참가자들이 직접 ‘2017 촛불권리선언’을 발표하는 뜻깊은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참여연대는 그동안 의혹을 제기해왔던 여러 ‘대통령 연루’ 사건들을 감시하는 일에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최순실의 국정운영 개입이 드러나면서 맞춰진 퍼즐들을 통해 박근혜 정부에서 이뤄진 부당한 정책 결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문제제기 할 수 있었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출연금 외에 최순실 모녀에 직접적으로 자금을 제공했다는 정황이 알려지면서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이재용, 최순실, 박근혜 삼자 간 비밀 거래가 있었다는 것도 서서히 드러났다.

참여연대는 박근혜 정부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삼성의 손을 들어줬던 사실에 주목해 관련자 세 명을 뇌물공여죄·업무상배임·뇌물수수죄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게 되었다. 또 삼성-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이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된 것에 대해 1만 2천명 시민 서명을 받아 삼성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 국민청원을 제출하기도 했다.

약 6개월에 걸친 촛불집회와 1700만 명 시민들의 참여는 결국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또 박근혜, 최순실, 이재용은 모두 구속되어 재판을 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오로지 시민의 힘으로 평화적으로 국정농단의 책임자들에게 책임을 묻고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민주주의의 승리의 경험이었다.

매주 1백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광장에 모여 사고나 혼선 없이 집회를 안전하게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배려와 협조, 또 한국 시민사회 운동의 연대의 경험 덕분이다. 오랜 기간 다양한 의제와 사안에 대한 공동행동의 경험과 신뢰 덕분에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조기에 만들고 작동케 할 수 있었고, 23차에 걸쳐 1,700만 명이 참여한 촛불 집회를 끝까지 무사히 진행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담장 100미터까지 평화로운 행진을 가능케한 참여연대의 가처분 소송은 그동안 경찰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금지되었던 집회시위의 자유를 극적으로 향상시킨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히 기록할만하다.

범국민적인 퇴진촛불 운동을 통해 우리는 시민의 참여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현실화했다. 지금은 비록 한 걸음 후퇴하는 듯 하지만,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확신으로, 역사는 전진한다는 믿음으로, 모두 함께 승리했던 연대의 경험으로 다시 힘을 모아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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