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모욕이건, 모욕이건, ‘모욕 행위’ 자체는 차이가 없다. 모욕은 말이나, 글, 몸짓 등 일체의 의사소통 수단으로 행해질 수 있다.
형법상 모욕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수사를 개시하고, 처벌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이 제안하는 사이버 모욕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수사를 개시하고 처벌 절차를 진행하되, 판결 확정 전 어느 시점이라도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즉시로 절차가 모두 종결되게 하자는 것이다.
이 제안을 두고 모욕죄 자체가 이제는 폐지돼야 한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인터넷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격론, 정치적 악용 가능성에 대한 논란도 일고 있다. 어느 한 견해가 틀렸다거나 맞다거나 선뜻 단정짓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이버 모욕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더라도 수사와 처벌을 개시할 수 있도록 ‘절차’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좀 우스운 데가 있다. 모욕 행위는 인터넷으로 하건 그렇지 않건 여러 사람이 알 수 있게(공공연히) 해야 성립한다. 따라서 모욕 행위 피해자의 신원은 반드시 여러 사람이 알 수 있도록 이미 노출된다. 그렇지 않다면 모욕이 아니다. 그러므로 고소를 하면 ‘신원이 노출될까 꺼려서’ 고소도 못하는 피해자가 있을지 모르니 고소 없이도 수사할 수 있게 하자는 주장은 애초부터 성립될 수 없다.
절차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논거는 다른 데 있다. 신원은 이미 노출되었지만, 고소를 하면 더 큰 모욕과 조롱을 당하거나 불이익을 입을까 부담스러워 고소를 못하는 피해자를 위해 국가가 가해자 처벌 절차를 스스로 개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 한 것도 같은데, 만일 필자와 같이 전혀 유명하지 않은 사람이 인터넷 게시판 어디에선가 모욕을 당한 경우, 경찰이나 검찰이 그것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사이버 수사대 소속 경찰관들이 인터넷 게시판들을 24시간 샅샅이 지켜보면서 혹시 우리 국민 중 누가 누구를 모욕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한다면, 필자 같은 사람이 인터넷에서 모욕을 당하고 고소를 안해도 경찰이 가해자를 체포, 소환할 수는 있겠지만, 막상 이런 사태는 더욱 끔찍하다. 사이버 모욕죄를 제안하는 정부·여당도 경찰력이 이렇게 행사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고소가 없어도 사이버 모욕죄 처벌 절차를 개시할 수 있게 하자는 제안은 모욕을 당한 경우 경찰·검찰이 당장 알 수 있는 고명한 지위나 신분에 있는 ‘귀하신 분’들을 위한 것 같다. 아니면 막강한 인맥을 통해서 은근히 귀띔만 하면, 경찰·검찰이 알아서 나서줄 수준의 인사들을 위한 것도 같다.
우리 같은 일반 서민이야 억울하면 고소하면 되겠지만, 귀하신 분이 고소를 하고 어쩌고 하면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것이 정부·여당이 제안하는 ‘사이버 모욕죄’ 법안의 핵심이다. 이런 법안을 제안하면서 짐짓 고상한 척 인터넷의 역기능이 어떻느니, 피해자 보호가 어떻느니 심오한 담론을 늘어 놓는 것은 좀 비겁해 보인다.
* 이 글은 2월 9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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