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년4월12일 故 허세욱아저씨 추모2주제 -아저씨 벌써 2주기이네요
찍은이 : 삶을 사랑하며

허세욱아저씨 추모2주년 추도식이 열린 모란공원에 걸린 그림입니다.
다른 분들의 죽음도 애통하지만, 누구보다, 허세욱 아저씨의 분신사망이 가슴아픈것은, 그분이 나와같은 이름없는 평범한 서민, 그리고, 비슷한 삶의 여정이 비슷함에, 그러함에 마음의 아픔이 더한것 같다.

아저씨는 생계를위해, 어린 나이에, 학업을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와, 여러일들을 하셨다고한다.
허세욱 아저씨의 젊은 시절, 그는 생계를위해 열심히 일하고, 땀흘렸고, 어느날 당신이 살던 지역의 재개발시 자행되던 폭력, 서민의 억울한 삶을 겪으며, 사회의 문제에 고민하면서, 직접 참여하는 분으로 인생의 방향을 바꾸셨단다.

가시기 전 , 아저씨는 100만원선의 급여로, 택시운전기사로 일을하시면서, 비번일때,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평화와통일을 여는사람들, 참여연대 및 주위의 더 아프고, 힘든이들을 위해 자신의 생계비를 제외한 얼마안되는 여유돈을 회비내고, 성금내고, 참여하신던 분이시다. 그는 단칸방에 이불몇개, 옷가지 몇개, 신발 몇켤레와 소중한 책들과, 남은 우리들에게 사람에대한 믿음과, 동지들에대한 헌신적인 사랑, 세상을 보다 한걸음 좋아지게 하려는, 소중한 마음을 남겨두시고, 스스로 분신이라는 두번다시 일어나서는 안될 행동으로 삶을 마감하셨다.

나는 아저씨와 같은 평범한 사람일뿐이다, 또한 우리들중 80년대와 ~90년대를 지내왔던 평범한 40대와 30대들중 지금의 중장년층인 이들 역시 아저씨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는 유명한 인사, 언론에 자주나오던 인사, 국회의원이된 인사, 학자, 전문가가 아니였으며, 언론에서, 각종 기록에 수록된 명망가들도 아니였다.
허세욱아저씨는, 우리들의 민주주의가 성공할수있도록 거리를 매워주고, 모금액을 채워주고, 차갑거나,뜨거운 아스팔트와 집회장을 지켜주던, 역사속에 존재하지만 개인으로는 기록이없던 수많은 우리들중 한 분이셨으며, 수많은 서민들중 한분이셨다.
그는 이름없는 노동자, 이름없이 민주주의를 만드는데 노력한 시민, 이름없이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던, 그런, 그러한 우리들의 삶과 비슷한 여정을 살다가신 평범함 이웃 아저시였기에, 그의 분신과 사망, 또한 그의 유서중 적으신 “”자신의 죽음이후 돈도 없는 주변의 친우, 당원,동지,회원들이 자신때문에 성금을 모금하고, 돈을 스지 말라”” 라는 마지막까지 다른이를 걱정하셨던, 참된 사람, 사람내음이 가득한 분이셨다.

아저씨는 50대였지만, 혼자였다. 그래도 그는 그가 계시던 한독운수노조의 대의원으로, 또한 동료와 그가 스스로 가입했던, 각 단체들의 모임에서 아저씨로, 친구로, 형으로, 삼춘으로, 우리들의 곁에 계셨던 분이다.



아저씨 추모제 2주기, 허세욱 아저씨 가실때, 그 뜨거운 화염과, 연기속에서도……..외치시던 절규 간혹 기록된 동영상으로 보곤합니다. 아저씨 얼마나 아프셨을까, 얼마나 고통이 크셨을까, 지금도 느껴집니다.
아저씨 보내던 날 송경동 시인의 적어구조 낭독한 “아저씨 하늘나라로 가셔셔, 푹 쉬세요….”라는 구절처럼 하늘나라에서 차갑거나, 뜨겁지않은 곳에서, 편히 쉬시리라 믿고, 믿고, 그리 알고있습니다.






아저씨, 허세욱아저씨, 내년에는 제 아들이랑 함께 가고싶습니다. 저역시 평범한 가장이자, 서민으로 남아 민주주의,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지도록, 살아가고 싶습니다.
아저씨…………………………………
– 진실을 찾아 안정희 올림 –
* 위 사진과 글은 참여연대 사진영상회원모임 <참여현상소> 회원인 ‘삶을 사랑하며’가 올린 것입니다. 사진, 영상을 통한 시민, 회원 여러분의 많은 참여바랍니다.
– 참여연대 영상모임 참여현상소 http://cafe.daum.net/pspd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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