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1999년 04월 1999-04-01   1272

시민운동가 출신 공무원이 본 관료사회

시민단체 논리 주장하다간 왕따당한다?

청와대 정무3비서관실 임삼진 국장(39세). 그는 불과 반년전만해도 시민운동의 일선에서 정부개혁을 외쳤던 운동가다. 서울대 철학과 재학시절의 학생운동을 포함한 그의 운동 경력은 20여 년. 야학과 위장취업을 거쳐, 86년부터는 노동운동에 직접 뛰어들었고, 서울 노운협 공동의장을 지낸 바 있다. 운수계통의 노동운동 이력을 살려 지난 92년부터 7여 년간 녹색교통운동을 이끌어왔다.

시민단체, 행정 기본원리 터득해야

그런 그가 청와대로부터 ‘구인’ 제의를 받은 것은 지난 해 9월경. 소위 ‘운동권’에서 ‘관료’로의 변신을 요청받은 것이다. 게다가 청와대가 그를 위해 비워놓은 자리는 제2건국위 총괄 지휘본부라 할 수 있는 정무3비서관실. 당시 시민사회 내에는 제2건국위의 추진방식 등이 ‘신관변단체’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 기류가 형성되고 있었다.

“(청와대로 들어오는 것이) 개인적인 결단만을 요구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작게는 제가 몸담고 있었던 녹색교통, 크게는 시민운동가의 정부 진출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고민도 했습니다. 녹색교통 이사회와 운영위원회 등을 거쳤고, 운동권의 선배와 동료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그의 주변 반응은 대체로 호의적이었다. “DJ개혁이 성공하려면 개혁의 주체가 형성돼야 한다” “시민운동의 훼손이 아니라 외연의 확장이다” 등 DJ정부 개혁 완수에 힘을 보태야 한다는 논지다.

임 국장 개인의 생각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IMF체제에 직면한 것은 사회 총체적 시스템의 실패를 말합니다. 이를 개혁하려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제도와 관행, 의식 등 총체적 개혁 작업을 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제2건국위와 같은 형태의 운동이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지요.” 반면 “혹시 제2건국운동이 실패로 돌아가면 그간의 순수한 시민운동가로서의 스타일을 구기는 게 아니냐” “정치진출용이냐”는 등의 우려와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김대중정권 출범 이후 정부와의 관계 설정에 대한 시민운동권의 고민과 일정부분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개혁 깃발을 들고 관료 속으로 진입한 그의 행정경험은 이제 겨우 6개월 남짓. 행정 관료로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지만 그는 ‘인적 수혈’을 통한 행정과 시민운동의 접목을 거침없이 주장했다.

“행정의 장점은 폭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가지 사안이라도 각종 이해집단과 각 영역에 미치는 영향은 직접적이고도 구체적입니다. 이해 준거집단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걸 총체적으로 고려하는 게 행정이랄 수 있지요. 따라서 소란스러움을 피하기 위해 기존 형태로 가려는 관성이 많은 게 또한 행정입니다. 민간의 창의성과 독창성, 변화 의지가 접맥돼야 하는 이유지요.” 시민운동과 정부와의 인적 교류를 시민운동 외연의 확장으로 봐달라는 주문이다.

하지만 시민운동 외연 확장으로 볼 때 전제가 붙어야 한다. 단순히 시민운동가들이 관료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는 게 아니라 초발심을 지켜가면서 개혁을 추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관료들의 저항에 대한 대응논리를 체득하는 것도 관건이다.

이에 대해 임 국장은 “시민단체의 비판 논리를 마구 주장하다간 관료조직에서 ‘왕따’될 가능성이 있다”며 다소 우회적 어투로 시민운동을 겨냥했다. “행정 집행 차원에서 보면 재벌해체 등의 시민운동 구호는 다소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다”는 얘기다.

제2건국운동을 비롯해 특검제, 인권기구 등 정부 입장에 반하는 시민사회의 태도에 대해서도 그는 이와 비슷한 입장이다. 그는 또 “김대중정부 경제개혁은 외신의 평가대로 탁월한 역량을 보여준 것”이라며 시민운동권 내의 부정적 평가와는 이견을 보였다. 그는 물론 “시민운동권에 머물고 있더라도 비슷한 견해를 가졌을 것”이라며 결코 ‘관료적’인 시각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여하튼 임 국장 발언의 요지는 시민사회가 다양한 이해집단들을 아우르는 행정행위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기초해서 시민운동이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할 때 행정과 시민운동과의 논의의 접점이 생길 수 있고, 이게 사회발전의 동력이라는 지적이다.

서울시 서소문 별관 제2건국추진반에 들어서면 시민운동권에서 낯익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팀장을 비롯 4명이 전대협세대인 소위 ‘운동권’ 출신. 지난 1월 신계륜 정무부시장의 구상으로 지방계약직에 ‘패키지’ 채용됐다.

이중 통일맞이칠천만겨레모임과 청년정보문화센타에서 부소장으로 활동했던 박홍근 씨(30세)의 최근 고민을 들어보자.

“제2건국운동에 직접 뛰어든 것은 이를 통해 사회개혁을 이루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물론 시민단체들이 그간 지적했듯이 제2건국운동의 한계에 대한 문제의식도 가지고 있었죠. 하지만 작은 힘이나마 제2건국운동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도록 보탬이 되겠다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재 관주도 시스템이 계속되는 한 당초 취지를 살리기는 어렵지 않을까 우려됩니다.”그의 고민은 시민운동의 개혁적 마인드가 관료조직에 둘러싸인 섬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이다. “관료들은 위에서 지시한 사항을 아래서 추진하는 방식의 사업적 마인드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운동으로 풀어가려 하고 있습니다. 제2건국운동을 통해 시민사회를 활성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것이지요.”총체적 개혁을 표방하는 제2건국위가 단순 자문기구 위상에 머무는 것도 그가 한계로 지적하는 부분. 민관합동기구인데도 중앙과는 달리 지방 제2건국위원회는 정책기획에서부터 집행까지 관료들이 담당하는 것 또한 모순이다. 하다못해 중앙부서와 타부서에서 요구한 자료를 만드는 데도 반나절 이상을 소요해야 하는 실정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인력충원을 통해 행정부서에 개혁마인드를 이식하기 위해서는 민간의 창의성과 개혁성이 살아날 수 있는 구조로 개편돼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 제2건국위 ‘운동권 4인방’

하지만 그 역시 임삼진 국장처럼 시민운동과 정부와의 이같은 인적 교류에 대해 긍정적이다. “행정부서는 대부분 시민운동에서 주장하는 진보적 정책에 대해 검토했습니다. 문제는 이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마인드가 부족한 것입니다. 따라서 오히려 시민단체들은 단순히 정책 개선 요구사항을 구호 정도에 그칠 게 아니라 현실적 추진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게 짧은 기간동안 행정조직에 들어와서 느낀 점입니다.”시민운동이 행정 절차의 문제 등을 이해하고, 관료들이 시민운동의 개혁성과 독창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쌍방향 관계가 정립돼야 한다는 얘기다. 개방형 임용제도 등을 통해 이런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이지만 공무원 교육 프로그램 중 현장실습 교육을 관련 시민단체에서 실시한다든가 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

임삼진 국장과 비슷한 케이스로 정부에 참여하는 인사로는 제2건국범국민추진위 김성수 제2심의관과 여성특별위원회 이상덕 협력조정관이 있다. 김성수 심의관(45세)은 지난 82년 서울YMCA연맹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소비자보호단체협의회 이사, 공선협 상임집행위원 등을 거쳐 녹색소비자연대 사무총장을 지내다 제2건국운동에 합류했다. 이상덕 협력조정관(42세)은 한국여성평우회 문화부장, 한국환경사회정책연구소 교육실장, 한국여성의전화 부대표 등을 역임했다.

이 두 인사는 “아직 평가할 시기가 아니다”는 이유로 인터뷰를 사양했다. 하지만 이상덕 협력조정관은 “행정 집행업무를 하는 직위이기 때문에 개혁을 감히 추진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공무원 사회에 소속돼 있으니까 NGO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보여진다”며 시민운동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시민운동가들의 정부 진출은 아직 실험단계이다. 김영삼정부의 실험은 개혁의 주체세력을 형성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긴 채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 그 뒤를 이은 김대중정부 아래서는 인적·물적 범위에서 보다 대규모의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이 실험이 단순히 한 시민운동가의 공간 이전으로 그칠 게 아니라 개혁의 동력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귀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정부와 시민사회 모두의 몫이다

김병기(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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