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가게에 꽂혀있는 수천 개 테이프들, 하루에도 수십 편씩 쏟아지는 영화들. 그 중에 딱 한 개라. 어렵다. 그래도 아무래도 소박하고 평범한 주인공들이 그려내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가 좋을 듯하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영화는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위로와 위안으로서의 도구라고나 할까…. 각설하고 본격적으로 오늘의 주제로 들어가보자. 「바이올린 플레이어」. 94년 극장 한 구석을 조용히 차지했던 아름다운 음악영화. 영화 전편을 휘감는 바이올린의 아름다운 선율이 돋보이는, 또한 우리가 매일 접하는 음악들, 더 나아가 예술의 진정한 의미, 예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곱씹게 하는 영화라 할 수 있다.
천재적인 바이올린 연주자 아르망은 음악적인 견해 차이로 자신이 소속되어 있던 오케스트라를 뛰쳐나온다. 소수의 선택된 청중만을 위해 연주하는 것에 대해 환멸을 느낀 그는 지하철에서 새로운 음악인생을 시작한다. 하루 이틀 연주하면서 매표 창구 여직원인 리디아가 그의 고정팬이 된다. “진실한 건 들리게 마련이죠.” “저런 음악을 연주하고 싶소.” “왜요? 난 안될 것 같소?” “당신은 연주를 하면서도 뭔가를 준다는 걸 알지만 자신이 무엇을 주는지도 모르면서 연주를 하죠.” 순간의 깨달음. 그는 자신을 계속해서 붙들고 있는 과거의 기억들을 차츰차츰 떨쳐버리고 진실의 음표들을 지하철 복도로 흘려보낸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리디아가 소식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아르망은 리디아를 찾아보지만 그녀의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다. 게다가 자리세를 요구하는 깡패들은 그의 바이올린을 부순다. 바이올린도, 청중도 사라지고 절망에 빠진 그는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간다.
대단원. 아르망 앞에 나타난 어두컴컴한 무대. 그곳에는 죽음을 목전에 둔 병든 노인, 일자리를 잃고 신음하는 아버지와 아들,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절망에 지친 댄서, 연인들이 애처로이 울먹이고 있다. 그들은 서로 떨어져 각자 혼자만의 고통에 빠져 있고, 아르망은 “연주는 계속돼야 해”라고 연신 알 수 없는 말만 중얼거리며 악보를 뒤적인다. 그때 그를 찾아헤매던 옛 친구는 그에게 바이올린을 건넨다. 병든 노인은 그에게 연주를 간절히 부탁한다. 그리고 장장 14분에 걸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중 「샤콘느」는 기다렸다는 듯이 주인공의 손끝에서 마침내 터져나온다. 반복되는 소절로 이루어진 3박자의 장중한 리듬. ‘삶의 고통과 슬픔, 환희와 기쁨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인생의 추억…, 수없이 많은 슬픔과 좌절, 고통과 비애가 서려있는 버거운 삶이 결국은 하나의 승화된 형상으로 마치 무거운 짐을 훌훌 털고 난 후의 홀가분함’이라는 어느 음악평론가의 해석처럼 이 곡은 「바이올린 플레이어」가 던지는 메시지와 더불어 삶에 지친 사람들을 위해 그 빛을 발한다. 지그시 눈을 감은 채 그의 연주는 계속되고 어둠침침한 지하에는 차츰 햇살이 떨어진다. 병든 노인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조용히 눈을 감고, 절망에 몸부림치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모여들어 서로를 다독거린다. 지하 맨홀 뚜껑 틈으로 비치는 빛을 온 몸에 가득 받으며 바이올린 플레이어는 진실한 음악을 만나고 자연과 하나되고 역사 앞에 선 민중들과 교감한다. 드디어 연주는 끝나고 눈을 뜬 주인공은 스크린을 조용히 응시한다. 그의 표정은 환희도 슬픔도 아닌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떠한 통찰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그 너머로 다시 지하철은 오가고 분주한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는 지평을 울린다. 삶은 계속되고 앞으로 그의 진실된 연주 또한 계속될 것이다.
영화 「바이올린 플레이어」는 말하고 있다. 예술은 민중들의 삶의 애환과 함께 해야 하며, 바로 그때 진실의 소리들은 온 세상을 관통하며 만드는 이도, 또 그것을 체험하는 이도 하나되어 감동으로 승화된다는 것을….
감독 : 찰리 반담
주연 : 리샤르 베리, 프랑수아 베르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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