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0년 09월 2000-09-01   2842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일반적으로 신사회운동이 겨냥하는 민주주의는 참여민주주의 또는 급진 민주주의(Radical Democracy)라 불리고 있다. 참여민주주의와 급진민주주의는 근대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이고 철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이러한 급진민주주의를 다원주의의 정치적 기획으로 정립하여 신사회운동론을 전개해 온 대표적 이론가들로는 에르네스토 라클라우(Ernesto Laclau)와 샹탈 무프(Chantal Mouffe)가 손꼽히고 있다. 아르헨티나 태생의 라클라우와 벨기에 태생의 무프는 영국에서 활동해 오고 있는 자칭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들이다. 이들은 1985년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국내에서는 『사회변혁과 헤게모니』로 번역되었음)을 통해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를 주창하고, 연이어 다른 저작들을 통해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를 적극 부각시킴으로써 커다란 토론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서 주목하려는 것은 라클라우와 무프의 신사회운동론으로, 이들의 신사회운동론은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하니 만큼 커다란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으며, 따라서 매우 논쟁적인 주장이기도 하다.

신사회운동이란 무엇인가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라클라우와 무프는 신사회운동을 2차 세계대전 이후 확립된 헤게모니구성체에 대응하여 출현한 적대들과 이에 따른 투쟁들로 이해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새로운 적대들은 상품화, 관료화, 획일화를 통해 등장해 왔다. 첫째,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일반화는 이제 문화, 레저, 죽음 등 모든 것의 상품화를 촉진하며, 그 결과 환경파괴가 가속화되고 개인이 단순소비자로 전락하게 되었다. 둘째, 케인지언 국가개입은 한편으로는 광범한 사회보장제도 마련이라는 긍정적 결과를 낳는 한편으로, 그에 내포된 관료화의 증대가 상품화와 결합해 새로운 형태의 종속을 초래하였다. 셋째, 대중문화의 확산은 동질화된 생활방식과 획일적인 문화유형을 부과함으로써 개인의 차별성 및 특수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아왔다.

새로운 헤게모니구성체의 확립에 따른 이러한 적대들의 형성은 새로운 저항들을 불러일으켰으며, 이 저항들이 곧 신사회운동이라는 것이 라클라우와 무프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러한 저항운동들이 복지국가 위기의 결과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적대들은 사회의 곳곳에 산재해 형성된다는 점에서 복수적인 형태로 존재하고, 또한 역사적으로 민주주의의 장기적 확장을 통해서 변화되어왔다. 라클라우와 무프에게 이러한 적대들의 복수성과 민주주의의 역사적 확장은 신사회운동의 등장과 성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논거가 된다.

주체의 복수성과 다원주의적 급진민주주의

그렇다면 적대들의 복수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라클라우와 무프의 기본이론적 가정은 고정된 실체로서의 사회(society) 개념을 거부하고 담론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적인 것’(the social)에서 출발한다. 이 사회 속에 놓인 주체는 복수적인 담론으로 구성되며, 따라서 주체 위치는 차이들의 폐쇄된 체계 속에서 고정될 수 없다. 다시 말해, 주체 위치는 상이한 담론들이 교차하는 복수의 가능한 구성물의 소재지이다. 예컨대 한 노동자는 생산영역뿐 아니라 성, 인종, 민족성, 종교 등의 영역에서 복수적 사회관계 속에 놓여 있으며, 따라서 그는 상품을 생산하는 주체인 동시에 남자 혹은 여자, 백인 혹은 흑인, 가톨릭 신자 혹은 개신교도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체 위치의 복수성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무프에 따르면, 특정한 방식에 의해 구성된 집합적 주체가 다른 실천에 의해 자신의 주체성이 부정될 때 적대가 등장한다. 주체 위치의 복수성은 여기서 적대들의 복수성으로 전화된다.

이러한 적대들의 복수성에 대한 정식화를 통해 라클라우와 무프가 겨냥하고 있는 목표는 명확하다. 그것은 기존 마르크스주의가 특정한 담론과 담론 위치, 즉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트를 특권화하는 ‘노동의 중심성’이라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이들은 계급투쟁에 기초한 사회주의 정치 전략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대안으로 급진민주주의 기획을 제시한다. 기존 사회주의 이념은 노동해방이라는 목표를 특권화하는 목적론적 개념이기 때문에 미래의 가능성을 봉쇄할 수밖에 없다. 근대 민주주의혁명은 보편적인 자유와 평등을 성취하기 위한 사회관계의 변형을 위한 담론적 조건의 창출을 목표로 하는 것이며, 따라서 사회주의는 계급해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민주주의의 확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주체 위치가 하나의 통일적인 토대원리에 귀속될 수 없다는 점에서 다원주의는 급진적인 것으로 간주되며, 그에 따라 급진적이고 다원적인 민주주의는 해방을 위한 새로운 정치적 기획이 된다.

이러한 급진민주주의는 ‘노동운동의 중심성’ 이념을 해체하기 위해 특정한 진리 개념을 초월하고 연대의 개념을 중시한다. 이 연대의 개념은 라클라우와 무프에게 매우 중요한데, 그것은 연대가 민주주의적 등가의 연쇄를 형성하는 데 유용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등가란 주어진 이해관계들 사이의 연합을 확립하고 그 연합 안에 참여하는 세력들의 정체성(Identity)을 변화시키는 헤게모니적 접합을 말한다. 예를 들어,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위한 운동이 여성, 이민자, 또는 소비자들의 권리를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이러한 상이한 투쟁들 간의 등가를 확립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급진민주주의는 최대수의 민주주의 요구들 사이에 등가의 체계를 수립해 불평등을 감소시키는 투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신사회운동은 바로 이러한 민주주의 투쟁의 접합을 위한 구체적 장이라 할 수 있다.

상대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러한 라클라우와 무프의 급진민주주의 기획에 대해서는 그 동안 격론이 벌어져 왔다. 특히 기왕의 마르크스주의의 가정에 대한 이들의 비판은 마르크스주의 진영으로부터 격렬한 반비판을 받아왔다. 여기서는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론적 논쟁은 일단 접어두고 신사회운동론에 대한 이들의 공과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라클라우와 무프가 겨냥하고 있는 목표는 주체의 복수성에 기초한 ‘복수적 투쟁’을 이론화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가 특권화하는 계급투쟁론을 역사화하려는 데 있다. 라클라우와 무프에게 이 주체의 복수성 개념은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주체가 복수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면, 복수적인 투쟁의 연대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라클라우와 무프는 연대를 이슈에 따라 유동적이고 열려진 구조로서의 네트워크, 즉 행위주체들 사이에 이루어지는 등가적이고 중층적인 관계망의 형성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대를 통해 자유와 평등이 확장될 수 있다는 유연하면서도 열려진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연대의 개념은 극단적인 상대주의라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 상대주의는 다양한 담론들의 교차 속에서 구성되는 주체의 복수성으로부터 발생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인 것을 구성하는 담화들은 통약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절대적인 기준을 갖는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다. 이에 무프는 담화들 사이에 여러 가지 다양한 접합양식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대를 형성할 수 있는가를 둘러싼 연대의 정치에 대해서 설득력 있는 답변을 제시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노동운동, 환경운동, 평화운동의 경우 현실의 지평에서 상호평등한 등가적인 연쇄가 필요하지만, ‘누가’ ‘어떤 기준으로’ 이 연대를 구축할 수 있는가.

연대의 정치를 둘러싼 이러한 문제는 노동운동과 신사회운동이 공존하는 모든 나라에서 사회운동들이 직면한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이다. 더욱이 이 문제는 사회운동의 정치세력화의 문제를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묘하면서도 섣부른 결론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이슈이기도 하다. 오늘날 사회운동의 정치세력화는 서유럽의 녹색당에서 브라질의 노동자당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연대의 정치와 관련된 이러한 다양한 쟁점과 토론은 이 기획의 마지막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고자 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참여연대 협동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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