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0년 09월 2000-09-01   1270

자기검열이 제일 무섭습니다

만화가 『천국의 신화』이현세

‘철인’, ‘동물의 왕국’, ‘아톰’….

나도 한때는 만화 박사였다. 이미 삼십오 년전 쯤의 일이지만…. 텔레비전은 몇몇 부유층만이 가질 수 있었던 60년대 중반의 우리 같은 아이들에게 만화는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오락거리였던 셈이다. 용돈이 없으면 집에 있던 빈 병들을 내다 팔았고, 더 팔게 없으면 남의 집 병까지 훔쳐서 고물 장수를 찾았다. 그렇게 해서 마련한 푼돈으로 학교 옆 만화가게에 처박혀 하루해를 보냈던가. 내 생각에 나는 너무 초장부터 질리도록 만화에 탐닉했던 모양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서는 한 번도 만화책을 들여다본 적이 없으니까…. 나중에 이른바 성인만화란 것이 나왔을 때도 그랬다. 열몇 살 먹은 이후 나는 만화라는 형식 자체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지내왔다. 이런 주제에 만화가와의 인터뷰라니….

그래도 나는 ‘이현세’라는 이름은 잘 안다. 하긴 우리나라에서 그 이름 모르면 옛날식으로 말해서 간첩이다. 왜 그를 찾았느냐고 물을 독자는 없으실 게다.

지금 항소중이지요?

“네, 항소심이 언제 열릴지는 몰라요. 판사 마음대로니깐…. 1심 끝내는 데에도 3년이나 걸렸잖아요.”

죄명이 뭐였지요?

“미성년자보호법 위반…. 그러니까 원조교제한 사람들이나 포주들이 걸리는 법이지요.” (웃음)

나도 웃음이 나왔다. 세상에 그림 한번 잘못 그리면 그 사람들하고 똑같아지는 것이로구나. 판결 내용은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그가 내놓은 『천국의 신화』가 내용상 일반인의 정서에 반하고, 특히 작가 자신이 영향력 있는 만화가로서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유죄를 인정한다는 것이었다. 벌금 삼백만 원…. 물론 액수가 문제는 아닐 것이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문제의 만화책을 뒤적여 보았다. 굳이 여기에다 그 내용을 묘사하지 않는다고 해서 섭섭해하진 마시길….

저, 이건 애들이 보는 거 아니지요?

“그건 어린이용이 아니에요. 청소년보호법이 나온 이후에는 이렇게 만화책에 빨간 딱지가 붙여져 나옵니다. 무슨 불온서적 같지요. 소설엔 이런 거 안 붙여도 만화에는 붙입니다. 만화가 힘이 없어서 그래요.”

음란작가라는 빨간 딱지

그러고 보니 과연 책의 오른쪽 위에 ‘18세 미만 구독불가’라고 빨간 딱지가 붙어 있는데 그의 말대로 볼썽사납기도 하다.

“청소년보호법 이후에 서점 점원이 사정을 모르고 실수로 한 권만 잘못 팔아도 벌금이 2~3천만 원입니다. 그러니 어느 서점에서 이런 만화를 취급하겠어요? 그 이후로는 지금 모든 서점이 만화를 쫓아냈어요. 만화가게에서도 지금은 취급을 하고 있지만, 만일 함정수사라도 한번 하게 되면 끝입니다. 아직까지 안 하고 있는 건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선 만화가 그래도 부가가치가 높은 문화상품이라고 해놓고 국내 시장을 당장 죽일 수는 없을 테고, 또 지금 기소상태에 있는 『스포츠신문』 연재 작가와 편집국장들이 열두 명이나 있는데 이 사람들은 개인이 아니라 큰 신문사가 뒤에 있으니까 쉽게 어찌할 수도 없고…. 이런 것들하고 물려 있다고 봐야지요.”

그러면 만화방에서는 구독이 어느 정도 자유롭다고 봐야 할 텐데 이 선생께서는 이 만화를 18세 미만이 봐도 큰 문제가 없다고 보시나요?

“저는 그다지 큰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18세라는 것이 임의적인 것이긴 합니다만, 예를 들어서 한창 성적 호기심이 발동하기 시작하는 15, 6세 아이들이 봐도 문제가 없다고 보시는지요?

“사람에 따라서 다르지만 저는 괜찮다고 봐요.”

우리가 보통 표현의 자유를 얘기하는데 저는 이게 어느 정도 상업주의와 손을 잡은 게 아닌가 합니다. 미국에서도 늘 표현의 자유 때문에 좌파와 우파가 갈리지 않습니까? 거기는 사실 정치적 좌우 개념은 이제 거의 없으니까, 남은 건 상업주의밖에 없어 보이는데 표현을 더 자유롭게 한다는 건 결국 더 상업적으로 간다는 걸로 보인단 말이지요.

답변은 잠시 뒤에 옮기겠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그가 나의 인터뷰 내용에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이다. 독자들도 느끼셨겠지만, 내 질문들이라는 것이 본의 아니게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게 많았으므로, 인터뷰 자체가 뭔가 아슬아슬한 느낌이 있었는데 결국 그가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우선 이 인터뷰의 목적이 도대체 무엇인가? 즉, 『천국의 신화』라는 작품을 놓고 얘기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작품에 대해서 내려진 법적 판단에 대해서 얘기하자는 것인지를 분명히 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내 질문들에 대해서 그가 어느 정도 유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을 했는데, 아마도 그렇게 하기엔 이번 사건으로 받은 그의 심적 상처가 꽤 컸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런 것도 일종의 돌발 상황이다. 이런 저런 둘러댐으로 위기를 넘긴 뒤에 다시 인터뷰를 이어갈 수가 있었다. 자, 이제 아까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저는 애초부터 상업주의를 인정하고 들어간 사람입니다. 저는 재미없는 만화는 인정할 수 없어요.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내 식으로 표현해서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만화의 정신적 지주 역할은 다른 사람이 하면 됩니다. 이른바 메시지가 있고, 민중의 삶을 다루는 만화들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하고 있어요. 아마 교육적인 효과만을 생각했다면 『천국의 신화』도 시작하지 않았을 겁니다. 저는 그런 것보다도 내 작품으로 인해서 우리 역사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내가 생각하는 우리 역사의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으면, 다른 비판을 받더라도 만족할 수 있어요.”

사람들이 이 선생을 알게 된 건 역시 『공포의 외인구단』 이후인데 자신의 작품 흐름이 어떻게 변해왔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건 분위기 무마용 질문이다.)

“처음에는 자전적 얘기로 시작했지요. 고향인 경주 얘기라든가 고교생 시절의 얘기라든가…. 그런데 그걸 다 하고 나니 점점 간접적 경험이 들어가기 시작했어요. 스케일이 좀더 커졌다고나 할까요. 예를 들면 『공포의 외인구단』이 그런 겁니다. 그 다음엔 점점 더 민족, 사회로 넓어져 갔습니다. 특히 저는 민족 문제를 파헤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들은 제가 아주 국수주의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하지요. 편협하고 과격하다는 겁니다. 『남벌』이라는 작품도 남북한이 일본과 싸우는 내용이잖아요. 아무튼 평가는 엇갈립니다. 일부에서는 너무 남성 우월주의적이라는 비판도 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우리 아이들에게 꼭 읽히겠다는 사람들도 있고….”

그러면 『천국의 신화』는 언제부터 구상하게 된 겁니까?

“82년에 출판사 사장을 당구장에서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제가 처음 얘기했습니다. 그러니까 18년 전이지요. 그 이후에 자료 수집하는 데에 십 년쯤 걸렸구요.”

상업주의를 인정한다고 했는데, 소재에 구애를 받지는 않나요? 사실 역사물 같은 건 어른이나 아이나 그렇게 좋아할 만한 소재는 아닐 텐데요.

“저는 소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포장이 문제라고 봅니다. 『사자여, 새벽을 노래하라』도 학도병 얘기였거든요. 다시 말해서 소재가 무엇이든 전달 기술의 문제지요. 이건 제가 자신감이 있어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보면 과거, 현재, 미래 등 소재에 제한을 받은 적은 없어요. 『아마게돈』 같은 것은 먼 미래의 S.F물이고 『남벌』도 가까운 미래를 대상으로 삼았지요. 전 사실 나 스스로 내일 뭘 할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천국의 신화』는 물론 그 전부터도 하려고 했지만, 특히 90년에 중국 갔을 때 만주 벌판을 달리는 기마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어서 본격적으로 준비한 것이거든요. 그런데 과거, 현재, 미래를 왔다갔다하다 보니까 사실은 작품에 결점도 많아요. 특히 고증 문제에서 그렇고 역사적 사실에도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남벌』에서는 병기 재원이 틀린다는 지적도 많았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군사문제는 워낙 비밀이 많잖아요. 제가 육군 출신인데 해군, 공군의 신종 병기까지 다 경험으로 알 수는 없는 일이고…. 자료를 요구하면 비밀이라고 안 가르쳐 줍니다.”

이제 만화 그만 둘 것이다

그런데 말이지요, 표현의 문제로 재판까지 받고 그러면 작품이 좀 위축된다거나 하지는 않을까요? 아무리 자기 주장이 있어도 그건 피할 수 없어 보이는데….

“자기 검열이 제일 무섭습니다. 특히 재판이 진행중인데 이런 걸 또 내면 혹시 재판에 영향을 주지나 않을까 하는 거지요. 그런 거 피해가면서 하자니 자존심 상할 때도 많아요. 만화가가 수명이 짧은 이유가 뭔지 아세요? 예를 들어 총각 때는 자기하고 싶은 대로 그리지만, 부모가 되면서 우리 애들이 이런 거 봐도 괜찮을까 하고 따지기 시작하거든요. 그러면 그 만큼 자기 느낌과 주장은 제약을 받는단 말입니다. 하물며 이런 사건이 있으면 자기 검열이 더 강해지는 거지요. 전 지금 스포츠지에 연재하고 있는 거 끝나면 만화 그만 할 겁니다. 애니메이션으로 옮길 거예요. 지금 하고 있는 것도 작년 12월에 한창 기분 안 좋을 때 시작하다 보니까 작품 내용이 암울하게 흐르게 되더군요.”

만화를 그만두다니…. 한국 최고의 인기 만화가가 만화를 그만둔다는 것도 하나의 뉴스라면 뉴스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건 싸움을 포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애니메이션은 만화 하는 사람으로서는 욕심이 나는 분야입니다. 움직이는 그림에 소리를 넣고 색을 쓸 수 있다는 건 더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거니까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거지요.”

그러면 『천국의 신화』는? 그는 내친김에 그냥 얘기하겠다면서 『천국의 신화』 뒷얘기를 인터넷으로 연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올 칼라로 채색해서 전 세계로 내보내겠다는 것이다. 어찌 됐든 그는 만화 그리기에 좀 지쳐 있는지도 모른다. 혼자 하는 작업이 이젠 힘들다는 그의 말도 그런 뜻으로 들린다. 무엇보다도 법적 제재와 서점 유통망의 붕괴 같은 것들이 그를 더 지치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애니메이션이 그에게는 새로운 활로로 비치는 모양이다.

“영화를 하면 ‘당신 만화를 18세 미만도 볼 수 있지 않느냐’ 하는 비판은 더 받지 않아도 됩니다. 만화 작가로서 ‘아동이 볼 수도 있지 않느냐, 그러니 당신의 작품은 문제가 있다’ 라는 얘기는 더 듣고 싶지도 않아요(이 대목에서 그는 잠시 격앙된 표정이다). 저 개인적으로는 폭력이나 섹스에 대해서 거부감이 없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폭력적이고 섹시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합니다. 내 본능과 생각에 충실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얘깁니다. 만화에서는 늘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인 만화를 그리다가 아동 만화를 그리려면 평소에도 열흘쯤은 쉬어야 합니다. 대사도 달라야 하고 그림도 달라야 하니까 그 정도는 쉬어야 성인 만화 그릴 때의 정서를 정리할 수 있어요.”

실제로 그는 애니메이션 제작사를 설립하기 위한 준비를 어느 정도 마친 듯하다. 문제는 소자본을 끌어 들여서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을 하느냐, 아니면 참견을 좀 받아도 대자본을 끌어 들이느냐만 남았단다. 얘기가 여기까지 진전되었으니 이제 마무리도 할 겸 그의 비위를 슬슬 건드려 볼 때가 되었다.

아무리 자기 자신의 주장을 갖고 표현을 한다 해도 이 선생처럼 영향력 있는 만화가라면 사회적 책임도 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지금까지 쌓아 온 명성이 사회로부터 받은 것이라면 거꾸로 그 사회에 책임을 지는 것도 당연한 게 아닌가 하는 겁니다(이거 어째 판결문을 닮아가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선생께서는 만화를 하든 애니메이션을 하든 영원히 그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저도 그걸 생각지 않는 건 아닙니다. 자기 자식이나 사회 규범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그럴 만한 권리가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물리적 공권력이 아닌 대화를 통해서 정리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런 경험이 없었어요. 정치적 이유나 소위 사회정화 차원에서 공권력을 사용해 왔단 말입니다. 작가 자신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에 정직하게 충실할 뿐입니다. 그릴 때 어떤 마음으로 그렸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지요. 말초신경을 자극하겠다고 그렸는가, 아니면 미적 탐구를 한 것인가가 판단 기준이 돼야 합니다.”

재미없는 만화는 용서 못한다

그는 철저하게 작가 중심적이다. 가령 말초신경 자극인가 미적 탐구인가 하는 문제도 사실은 받아들이는 사람, 즉 독자의 느낌에 의해 결정될 문제이기도 하다는 반론이 있을 법하지만, 그에게 그런 반론은 거의 통할 것 같지가 않다. 그의 다음 말은 내가 그렇게 판단하는 데에서 거의 결정적이었다.

“저는 제 충동에 의해서 그리는 겁니다. 도덕, 진리에 대한 탐구보다는 남이 안 가본 것, 지금까지 누구도 넘지 못한 울타리를 넘으려는 충동이 더 큽니다. 제가 이 정도라도 도덕성을 갖게 된 것도 아마 결혼이 큰 역할을 했을 겁니다.”

그에겐 대학 2학년인 딸과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이 있다. 혹시 가족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고 물었더니 “집안 식구들은 나를 ‘민주투사’로 생각한다”며 웃는다. 그게 그에겐 큰 힘이기도 하단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포이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 들어섰을 때 맞은편 책장 위에 ‘포돌이’ 상이 놓여 있길래 저게 왜 저기 있나 했더니 바로 그가 만든 상이란다.

“제가요, 포돌이 상을 만들어서 명예경찰이구요, 육군 교육을 위한 위촉작갑니다. 그리고 세종대 영상만화학과의 겸임교수이기도 하지요. 또 하나가 이번에 얻은 건데 바로 ‘음란작가’입니다(웃음). 어찌 보면 이렇게 다양한 게 바로 만화의 얼굴인지도 모르지요. 내 얼굴이 바로 만화의 얼굴이에요.”

인터뷰 말미에 그는 자기가 너무 멋대로 얘기해서 정리하기가 쉽지 않겠다고 내 걱정을 해주었다. 나도 정리하는 데에는 도가 텄다고 응수를 했지만, 내심 걱정이었다. ‘스스로가 내일 무슨 일을 할지 모르는’ ‘자신의 느낌에 충실한’ ‘충동적인’ 이 당대 최고의 ‘상업적’ 만화가와의 인터뷰는, 그래서 맞대면해 얘기할 때보다 돌아와서 정리할 때가 더 힘들었다는 걸 후기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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