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는 어떤 사회문제가 있을까? 대만 사회운동가들은 주저하지 않고 주택문제를 꼽는다. 대만의 주택난은 1940년대부터 시작된다. 1945년 국민당 정부가 대만으로 건너오면서 약 200만 명 이상의 인구가 대만으로 이주해왔다. 당시 근대적인 주거인프라를 갖고 있지 못했던 대만에서 이런 대량이주는 만성적 주택공급 부족을 가져오기에 충분했다. 1974년 이후 국가가 직접 집을 지어 민간에게 분양·임대하는 공공주택정책이 실시됨에 따라 주택보급률이 약간 개선되기는 했지만, 비싼 주택가격은 중상위 계층 정도나 누릴 수 있는 혜택일 뿐 가난한 계층은 여전히 주택난을 겪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1987년부터 대만에서는 부동산투기와 이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방기로 인해 주택가격이 연이어 폭등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홈리스가 되어 거리에 내몰렸다. 이런 상황에서 1989년 8월 26일 타이페이 시내에서는 부동산 투기방지와 정부대책을 요구하는 10만 명의 인파가 밤을 새워 노숙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중산층까지 광범위하게 동참한 이 시위는 계엄(Martial Law) 해제 이후 일어난 최초의 대규모 시위로 대만의 사회운동이 합법화되는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이 집회가 있은 며칠 후 ‘껍질 없는 달팽이’(The Shell-less Snail Organization)라는 이름의 무주택자 단체에서는 하나의 의미심장한 이벤트를 개최한다. 정부의 주택정책에 항의하여 ‘집 없는 100쌍 부부들의 합동 결혼식’을 개최한 것이다. 많은 시민들 그리고 정부를 향해 그들이 처한 곤경을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평범한 주부였던 최마마도 남편, 딸과 함께 이 합동 결혼식에 참여했다. 손수 만든 드레스를 입고 휠체어에 앉아 결혼식에 참여한 그녀는, 이 새로운 사회운동을 지원하고 남편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길 원했다. 당시 폐암 말기였던 최마마는 그로부터 3일 후 사망했다. 그녀를 추모하던 사람들은 이후 ‘껍질 없는 달팽이’ 조직의 이름을 ‘최마마’로 바꾸고 새로운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집값 폭등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
‘최마마’ 서비스센터의 가장 대표적인 사업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값싼 주택의 임대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월세 임대차 제도만 있는 대만에서는 불과 수개월 만에 집을 옮겨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싼 집을 구하는 사람들은 물론 비싼 중개료에 부담을 느끼는 임대인들도 모두 최마마 센터의 고객이 되는 것이다. 최마마센터에 집을 구하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과 연락처, 얻고자 하는 집의 위치와 가격 그리고 화장실의 유무 등과 같은 조건들을 세세히 신청서에 기록한다. 마찬가지로 최마마센터를 통해 집을 임대하고자 하는 임대인들 역시 자신의 정보와 요구사항을 적시해야 한다. 이 같은 수십만 건의 정보는 모두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있으며, 임차인이 원하는 조건에 맞는 집이 나타나면, 그 즉시 연락이 이뤄지고 거래는 성사되는 것이다. 별도의 중개료는 없다. 다만 이곳을 방문해 상담할 때마다 대만 돈 50원(약 2,000원)을 자율적으로 기부하도록 하고 있다. 주말을 제외한 오후 1시부터 5시 그리고 저녁 7시부터 9시까지의 서비스 시간이 되면 최마마서비스센터는 집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과 자원봉사자들로 북적인다.
최근에는 인터넷(www.tmm.org.tw)으로도 이 같은 서비스를 시작했다. 연간 약 40만 건 이상의 접속이 이뤄지는 홈페이지는 지난 99년 대만 경제당국으로부터 우수 URL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마마’의 주거정보 서비스는 타이페이 전체 주택임대차 거래의 50∼60% 가량을 점하고 있다. 가히 기업적이라 할 수 있는 규모이다. 그러나, ‘최마마’는 영리를 지향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주택임대정보 제공
‘최마마’에서 제공하는 다른 서비스 중의 하나는 좋은 이사업체를 선정하고 소개하는 것이다. 이사업체의 폭리근절과 서비스 개선을 위해 서비스 가격과 질 그리고 시민들의 불만사항 등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것으로 시작한 이 일은 이사업체들의 횡포를 크게 줄여 큰 호응을 얻었다. ‘최마마’를 통해 이사업체를 소개받는 시민들이 늘어나자 이사업체들도 앞다투어 등록하고 차별화한 자신의 서비스를 홍보하고 있다. 현재는 타이페이시의 이사업체 중 20% 정도가 여기에 등록되어 있다고 한다. ‘최마마’는 소개비의 5%를 따로 보관하다가 소비자가 만족하면 이를 이삿짐센터에 보너스로 지급하기도 한다. 그 밖에도 ‘최마마’는 변호사들의 조력을 받아 임차인, 임대인을 위한 법률상담을 열고 있다. 매주 2회 무료로 이뤄지는 이 법률서비스는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분쟁을 조정하는 기능을 하며,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이와 관련된 내용을 신청받고 있기도 하다. 또한 세입자를 보호하는 임대차계약서 및 세입자 정보수첩을 제작, 배포중이다. 독거노인들의 주거환경을 돌보는 방문, 상담 활동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최마마’의 모든 서비스의 중심에는 100명 가량의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매일 오후 그리고 저녁마다 방문자들의 상담을 받고,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하는 모든 활동은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이뤄진다. 20명의 유급활동가들이 있지만 이들만으로는 충분한 서비스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원봉사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 ‘최마마’를 통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얻은 가난한 사람들인 그들은 ‘최마마’의 ‘심장’이라 불린다. 최마마는 암탉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의 상징 로고로 갖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을 엄마 품처럼 따뜻하게 끌어안는 것이 ‘최마마’의 정신인 것이다.
자원봉사자가 중심 된 조직
‘최마마’를 방문한 필자는 이 신선하고 재미있는 활동에 매료되었다. 동시에 한 가지 의문도 갖게 되었다. ‘과연 이것을 시민운동으로 볼 수 있는가, 비영리성의 사회사업이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기우에 불과하였다. ‘최마마’는 정보제공 이외에도 각종 주택정책과 도시정책의 개선을 위해 발언하고 있으며, 공원모형 만들기 등 주민과 함께하는 도시환경운동도 벌이고 있다. 또한 각종 현안을 놓고 대만 주택운동 그리고 도시운동 간의 연대를 이끌고 있다. ‘최마마’는 종합적인 주택정보 및 중개서비스인 동시에 대만의 주거현실과 도시문제 개혁을 위한 주거권운동이자 도시개혁운동이다. 우리가 직면한 주택문제와 임대차 구조가 대만과는 다르기 때문에 이 활동을 우리현실에 바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활동에서 얻는 시사점은 적지 않다. 국민주택 한 채 값이 서민 연평균 소득의 7배가 넘는 우리의 주택문제나 개발과 공동체 해체로 인한 도시문제가 대만에 비해 덜 심각하다고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관념적 진보’가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많은 사람들에게 선뜻 비빌 언덕이 되어야 한다는 평범하지만 따끔한 사실이 ‘최마마’가 필자에게 그리고 한국 시민운동에 선사하는 감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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