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1년 07월 2001-07-01   950

내가 잣나무골에서 사는 이유

내가 잣나무골에서 사는 이유

"냅둬! 이렇게 살 거야!"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면 누가 뭐라든 자기만의 ‘즐거운 고집’을 지켜 가는 사람들이 있다. 온 세상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도 혼자서만큼은 낄낄거리며 만족해하는 유쾌한 비명. 『참여사회』는 자잘한 일상생활에서부터 자기만의 즐거운 고집을 꺾지 않는 ‘신바람 나는 고집불통’들의 상큼한 이야기를 연재한다. 이번 호엔 시골에 둥지 틀고 서울로 통근 중인 ‘전원을 사랑하는 사나이’ 이야기를 들어보자.

유례없는 심한 가뭄으로 요즘 농민들의 가슴은 다 갈라졌으리라. 새벽 6시경 출근길에 나서 우리 가족이 사는 잣나무골을 내려오다 보면 마을에서 제일 부지런한 경수 아저씨가 양수기 옆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장면은 목격할 때는 갑자기 이질감이 느껴지곤 한다. 나도 삽자루 들고 논에 나가야 되는 거 아닌가하는 착각과 함께. 경수 아저씨와는 달리 나는, 회사가 있는 서울 여의도까지 가려면 들판을 가로지르고, 산 고개를 넘고, 공장들이 들어선 마을과 아파트 숲을 지나야 한다. 생활은 도시의존적이지만 마음은 언제나 전원에 머물러 있으니 그 이질감은 나로선 당연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 이질감은 내가 치르는 가장 큰 고통인 셈이다.

경기도 광주시 실촌면 유사리 잣나무골. 나와 내 가족이 사는 곳이다. 이곳으로 이사온 지도 어느덧 6년째다. 이사 와서 2년은 집을 짓는데 보냈다. 신혼 때 잠시 다가구주택에 살다가 곧 아파트로 옮겼다. 경기도 고양시 원당의 서민주공아파트였는데 20평형 이하 아파트 2000가구가 모인 대단지였다. 그곳에서는 17평형에 사는 주부들과 19평형에 사는 주부들이 서로 어울리지 않고 살았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답답한 아파트도 문제지만 직장에서 돌아오면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TV앞에 앉아서 시간을 때우거나 잠을 자는 것 뿐이었다. 그러다 아파트 뒤쪽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 사는 사람들과 사귀면서 생활의 재미를 찾게 됐다. 이웃과 단절된 아파트 살이와 달리 그곳 주민들은 산책하던 나를 이웃처럼 맞아주는 것은 물론 대화를 나누며 사귈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주말이면 가끔 농장에 나가 그들과 더불어 일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날 저녁이면 밭에서 따온 상추며 쑥갓을 펼쳐놓고 숯불에 고기를 구워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별을 보며 마당에서 이웃들과 둘러앉아 나누는 밥이 얼마나 맛있던지…. 평화로움과 여유를 한껏 누릴 수 있었던 시간들, 그 작은 사귐이 나를 끝내 전원으로 내몰았다.

전원에 나와보면 생각과 달리 문화적으로도 풍부해지고 교육여건이 도시보다 낫다. 언뜻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전원에는 문화적인 기능이 많다. 휴식과 놀잇거리가 풍부하다. 정서에 맞기만 하다면 전원은 참으로 많은 것을 준다.

아내와 내가 일구는 텃밭에서는 봄부터 가을까지 채소의 대부분을 얻을 수 있다. 200여 평 정도의 공간이지만 친구들이 찾아오면 채소도 한아름씩 안겨줄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전원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 중의 하나가 잣나무가 울창한 뒷산이다. 나물도 풍성하고 야생화도 많아 나는 뒷산을 ‘보물숲’이라고 부른다. 나는 그 숲 언저리를 어슬렁거리다 간혹 명상에 잠기곤 한다. 도시에서 맛보기 어려운 전원생활의 매력들이다. 그러나 내가 전원을 포기할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내 손으로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손수 집을 짓고, 먹거리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내면의 창조성이 조금씩 일궈진다는 점에 생각이 닿으면 작은 행복감에 빠지곤 하는 것이다.

이규성 『파이낸셜 타임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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