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3년 07월 2003-07-01   1074

시골 할머니댁에서 만난 군복귀신

해마다 여름이 되면 경남 양산에 있는 할머니댁에 놀러가 한참을 쉬다 온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세운 지 120년이 넘은 할머니댁은 배산임수의 전경아래 그림처럼 자리잡고 있어 언제나 내 마음을 편하게 한다. 뿐만 아니다. 곳곳에 할머니의 체취가 묻어나는 그 집은 어릴 때의 추억을 새록새록 떠오르게 한다.

그 동네에서는 메뚜기를 잡아먹고 더덕도 캐어 먹었는데, 그 별미를 지금은 느낄 수 없어 아쉽다. 거미줄로 잠자리도 잡으러 다녔다. 요즘엔 나무나 플라스틱 막대기에 나이론망으로 만든 잠자리채를 쓰지만, 당시에는 나무 막대기로 삼각형 형태를 만들고 그것에 집안 구석구석에 있는 거미줄을 씌워 만들었다.

어느 여름방학 때의 일이다. 잠이 들었다가 한밤중에 화장실이 급해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요강에 일을 보고 있는데 군복을 입은 남자가 마당을 돌아다니고 있는 게 아닌가? 깜짝 놀라 소변이 멈출 정도였다.

그러나 얼굴을 보고 더 놀랐다. 나와 똑같이 생긴 얼굴.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였다. 한번도 얼굴을 뵌 적은 없었지만 나와 닮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에 나는 한눈에 할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내게 슬쩍 미소를 지으시고는 등을 돌려 바깥으로 나가셨다.

할아버지는 6·25때 오른쪽 다리를 다쳤다. 병원에서는 한쪽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했지만 집안에선 장손을 병신 만들 수 없다며 수술을 거부했고 할아버지는 그 때문에 파상풍에 걸려 돌아가신 것이다.

나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우연인지 오른쪽 다리가 더 많이 불편하다. 내가 태어나자 집안 어르신들은 할아버지의 업보가 내게 왔다며 입방아를 찧었다.

그 해 여름 이후 할머니 댁에 내려가면 간혹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내 꿈에도 가끔 나타나신다. 신기한 일은 그렇게 할아버지를 만나고 나면 내겐 꼭 좋은 일이 생겼다.

요즘 통 할아버지를 만날 수 없다. 올 여름에는 오랜만에 할머니댁으로 휴가를 가야겠다. 그 해 여름은 충격적이었지만 나는 가끔 그날의 할아버지 모습이 그립다.

김형수 장애인편의시설촉진연대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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