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3년 08월 2003-08-01   2171

기본원칙도 안 지키는 회계법인들의 부실감사행태

분식회계에서 자유로운 회계법인 있나?


올 하반기 한국경제는 연속적인 분식회계사건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회계장부를 조작해서까지 이윤을 부풀리려는 기업의 도덕적 해이가 1차적인 원인이겠지만 사태가 이토록 악화될 때까지 방치해둔 외부감사인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회계법인들의 부당행태를 지적한다. 편집자 주

<사례1> 회계감사를 앞두고 감사대상인 기업으로부터 공문이 한 장 날아온다. “A회계사와 B회계사는 이번 기말감사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내용이다. 이들의 회계감사를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회사측의 답변은 대개가 “깐깐하다”는 것이다.

<사례2> 기말감사기간은 통상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한 주 동안 이뤄진다. 증빙자료를 대조하며 꼼꼼하게 검토하기엔 촉박한 시일이다. 그러나 회계감사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제시 재무제표’는 감사기간 5일째인 금요일 밤에야 처음으로 받아본다. 회계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일단 회계법인 사무실로 철수해 그때부터 외관을 만드는 것뿐이다. 형식적인 조서를 짜맞추느라 밤샘작업을 하면서 남은 이틀을 보낸다.

<사례3> 제대로 회계감사를 하기 위해 몇 가지 자료를 요청한다. 기본자료인 “업체별 매출채권 연령분석표”를 피감사대상 회사에 요구한다. 회사측의 답변은 “해당 자료는 없으며,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수일이 걸려 회계감사기간 내에 제출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온다. 잠시 회사측 담당자가 자리를 비운 틈에 그가 들고 왔던 서류뭉치를 슬며시 들여다보면 없다던 자료는 이미 뽑아져 있다.

거짓말 같은가. 대단히 유감스럽지만 사실이다. 필자가 대기업을 감사하면서 보고 겪은 일들 중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상황들이 ‘빈번하게’ 그리고 ‘특정 회계법인에게 아닌 일반적으로’ 발생한다는 데에 있다. 도대체 무엇이 회계법인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본분을 망각하게 만드는 것인가. 여러 가지 요건이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의 구조적인 문제가 이러한 회계법인의 못된 관행을 부채질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감사대상이 감사인을 선임한다?

우선 감사받는 대상이 감사인을 선택하게 되어 있는 “감사인 자유선임제도”가 문제다. 1982년 이후부터 시행된 이 제도가 만들어 내는 부작용은 심각하다. 통상적인 계약관계로 말하자면 감사받는 회사가 “갑”이고 감사인인 회계법인이 “을”이라는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갑”과 “을”이 결정된 이상, 그 이후의 상황은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감사선임부터가 이러한데, 어느 “을”이 쉽게 “갑”인 회사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을까.

<사례1>의 경우라면 회사가 거부한 A, B회계사들을 투입할 수 없을 것이다. <사례2>의 경우에서도 “자료가 늦게 나와 감사절차를 전혀 취할 수 없었으니, 감사기간을 일주일 더 연장하겠다”라고 말할 수 있는 ‘간 큰’ 회계법인은 몇이나 될까. <사례3>의 경우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자료 제공이 안 된다면, 감사범위 제한으로 인한 의견제한을 낼 수밖에 없다”며, 피감사인이 요청자료를 거부했을 때 감사인이 취할 수 있는 제재조치를 취할 수 있는 호기를 부릴 수 있을까. 어느 경우에서든 마찬가지다. 가끔씩 ‘제대로 감사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고집을 부리는 회계사가 회사측으로부터 듣는 말이 있다. “이렇게 하면 내년에는 함께 못 하지, 감사인 바꿔야겠네.”

두 번째는 오랜 기간동안 계약관계가 유지되면서 야기되는 “유착가능성”이다. 즉 특정 회계법인이 계속 외부감사인의 역할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유착될 수 있다는 우려다. 잠재된 위험이 아니라 실제로도 이러함이 최근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현대건설 분식회계 건을 보면 삼일회계법인이 17년 동안, SK글로벌 분식회계에서는 영화회계법인이 9년 동안 거의 독점적으로 감사를 해왔으며 이러한 경우는 비일비재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쯤 되면 해당 회계법인은 회계감사 이외에도 각종 컨설팅 용역을 피감사 대상 회사측에 제공하면서 그 대가를 수수하게 되고 점점 ‘감사-피감사’의 관계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 대한 일례가 올해 한국 경제를 위태롭게 했던 SK글로벌과 현대건설 등의 부실감사에 대한 공통점이자 원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 견해이다.

그러나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회계법인들의 부당 관행들이 면죄될 수는 없다. 한번만 다시 생각해도 명확하다. 회계사들이 잘 따지는 ‘이익-비용’ 측면에서부터 보자. 분식회계를 해 회계법인과 기업이 얻는 이익이 해당 기업의 명맥과 체면 유지 정도라고 한다면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끔찍할 정도다. 소액투자자 및 채권은행단의 재산적 손실과 연이은 국민들의 세부담 등을 포함해 금액으로 산출할 수 없는 사회적 충격까지, 어림잡아 산출해봐도 훨씬 크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것만으로도 회계감사기준에 나와있는 감사인의 적격성, 독립성, 신의성실성, 윤리적 책임을 거론하기 전에도 감사인 스스로 부실감사의 유인으로부터 빠져 나와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만연한 관행이더라도 하나부터 풀어야

지난 7월 3일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는 현대건설주식회사에 대한 부실감사에 대한 책임을 물어 삼일회계법인에 대한 특별감리를 할 것을 금융감독원에 요청했다. 이번 삼일회계법인 건은 SK글로벌 등 최근 일어났던 다른 분식회계 사건과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먼저 역대의 부실감사 건들과 비교해 봐도, 이번 삼일회계법인 건은 거의 모든 계정이 망라되어 ‘부실감사 종합선물세트’라고도 빗댈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수법면에서는 대담하기조차 하다. 먼저 건설업 회계처리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현장별 도급금액, 발생원가, 수익 인식 금액’을 파악할 수 있는 기본 자료는 찾아볼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료 없이 감사하기는 불가능하므로 ‘자료파기의 가능성’이 높게 점쳐 진다. 두 번째는 부실채권에 대해 제대로 된 평가도 없었다는 점이다. 세 번째는 재고자산의 규모조차 파악하지 않은 감사였다는 점이다. 문제가 되었던 1998년의 경우 7474억 원의 재고자산 기말 가액에 대해 삼일회계법인은 단 2000만 원에 대해서만 재고 실사를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은행조회서 문제다. 해외 은행조회서 139개 중 125개가 회계감사 기준일인 1998년 12월 31일 이전에 발급된 데다가 발급형식도 감사증빙으로서는 전혀 유효하지 못한 팩스수신 양식이었다. 그러나 삼일회계법인은 2년 후에는 동일한 회사인 현대건설 감사에서 “해외은행조회서의 미회수”를 이유로 한정 의견을 제출했다. 같은 경우에 대해 1998년에는 ‘적정 의견’, 2000년에는 ‘한정 의견’으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감사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부실감사 내용 뿐 아니라 부실내용 적발 후 삼일회계법인이 취한 반응도 문제다. 그동안 부실감사의혹에 노출된 다른 회계법인들이 대체로 부당 행위를 수긍했던 데 반해 삼일회계법인은 “현대건설의 회계감사는 감사기준에 따라 엄격한 감사절차를 실시하였으며, 부실감사라는 주장은 이해할 수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와 같은 부실감사에서의 대담성과 부실감사 이후 대응에 있어서의 뻔뻔스러움이야말로 우리나라 회계법인들이 가진 도덕성의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인 파장과 경제적인 손실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 이미 만연해 있는 관행이라는 이유로 ‘회계법인들의 부실감사’를 관대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이제 거두어야 한다. 세간에 떠도는 ‘회계사 중 분식회계로부터 자유로운 이는 아무도 없다’는 말은 이제 사라져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드러난 문제부터 풀어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삼일회계법인이 부실감사에 대한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김경율 회계사·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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