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6년 05월 2006-05-01   2159

당신이 재벌과 결혼할 확률

한국의 멜로드라마는 대충 4가지 코드만 이해하면 쉽게 따라 잡을 수 있다. 첫사랑, 불치병, 출생의 비밀, 재벌이다. 여기에 결혼과 이혼까지 추가하면 의외로 많은 경우의 수가 나온다. 여자는 신데렐라와 캔디를 적절히 버무리고, 남자는 왕자와 바보온달을 오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재벌과 사랑에 빠지는 여자들의 이야기는 많은 이들의 숨겨진 욕망을 자극하고 있다.

문득 케빈케이컨 법칙이 생각났다. 6단계만 거치면 서로 아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드라마에서 재벌과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에 이르는 스토리가 어쩌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정말일까? 계산을 해보았다.

일단 재벌의 기준을 정하느라 힘들었다. 통 크게 우리나라 100대 부자로 잡았다. 포브스코리아가 발표한 ‘2005년 한국의 100대부자 리스트’를 보니 100위만 따져 봐도 NHN 이해진 최고전략위원으로 재산이 943억 원이다. 요즘은 자식 숫자가 부의 상징이 아니던가. 그들의 가족 중 결혼적령기 남자가 10명 씩 있다고 쳤다. 그러니 나와 결혼 가능한 재벌 남자는 총 1,000명이다. 여기에 나는 1,000명을 모두 사랑하고, 그들과 결혼하고 싶어한다는 전제가 있다. 안 그러면 계산이 너무 복잡해진다.

그 다음 고민은 재벌을 만날 수 있냐는 문제다. 여기서는 케빈 케이컨을 믿었다. 만날 확률을 빼고 계산해보자. 사랑이 문제다. 그러나 사랑한다, 안한다 두 종류 밖에 없으므로 확률은 50%다. 다음은 결혼이다. 이것도 결혼을 한다, 안한다 밖에 없으므로 50%다. 그렇다면 내가 1,000명 중 한 명과 결혼할 확률은 최소 0.025%, 최대 25%다.

그럴리가 없다. 이번에는 만날 확률을 포함시켰다. 드라마처럼 ‘우연히’ 재벌과 만나 ‘진정으로’ 사랑에 빠지고, ‘결혼’ 할 확률이다. 우선 결혼적령기 남자 중 재벌의 비율이 필요하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남자들의 초혼 평균 나이는 30세다. 25~35세 남자인구를 찾아보니 2003년 현재 412만 5,523명이다. 0.024239350986529466%는 재벌집안 아들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내가 만난 남자가 재벌이고, 사랑하고, 결혼 할 확률은0.0060598377466323665%다.

힘이 빠졌다. 과연 시간은 얼마나 걸릴까? 재벌과 결혼할 때까지 결혼적령기의 남자를 모두 만나보기로 했다. 하루에 1,000명씩 만나면 약 4,125일이 걸린다. 11년이다. 그동안 그들도 나이를 먹는다. 그들과 사랑에 빠질 확률은 더욱 줄어들 것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드라마가 다시 보였다. 재벌드라마가 ‘드라마틱’한 이유에는 이런 엄청난 확률이 숨어 있었다. 첫사랑과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질 확률이나 평범한 사람들에게 출생의 비밀이 있을 확률, 사랑하는 사람이 불치병에 걸릴 확률까지 계산하고 나면 내가 미쳐버릴 확률이 너무 높아 참았다. 판타지는 충분히 충족됐으니, 이제 제발 다른 색의 드라마에 빠지고 싶다.

황지희(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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