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09년 02월 2009-02-01   994

칼럼_부끄러움의 회복




부끄러움의 회복



박영선『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설 잘 쇠셨는지요? 때 아닌 폭설로 인해 고속도로 정체가 심했다는데, 김 선생은 귀향길이 고되지는 않았는지요. 무난했다구요. 다행입니다. 설 때 친지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니 이렇게 명절이라고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건만 해도 감사한 일이라고 이구동성이더군요. 하긴 귀성객이 물경 반이나 줄었다지 않습니까. 그저 때맞춰, 어쩌면 습관처럼 명절을 맞이하곤 했는데, 어느 틈에 이조차 사치가 되고 마는군요.


그러다보니 새로운 포부와 힘찬 기운으로 시끌벅적해야 할 정초 분위기가 영 아니네요. 이렇게 정초 분위기가 푹 가라앉은 게 물론 경기 탓만은 아니겠지요. 용산 참사만 하더라도 아직 유족들의 슬픔과 시민들의 분노가 조금도 가시지 않았잖아요. 김 선생, 저는 이번 설에 모처럼 만난 식구들과 웃음꽃을 피우다가 텔레비전 화면에서 용산 참사 현장이 나오는 순간 엄습을 당한 듯 대화가 끊겨버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얼음땡’의 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군요. 용산에서 그 몹쓸 일이 일어난 후, 한 후배는 진지한 목소리로 한국이 싫다고 했습니다. 삶의 작은 기쁨조차 맘껏 누리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지요. 동감 끝에 고개를 끄덕이며, 저는 제가 이십여 년 전에 그 후배와 똑같은 말을 했다는 걸 기억해냈습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조세희 작가가 말한 대로 ‘한국에 태어난다는 것 자체가 개개인이 무거운 짐을 갖고 태어’난 것일까요.


알다시피 ‘난쏘공’은 1978년에 쓰여졌습니다. 김 선생은 조세희 선생이 왜 ‘난쏘공’을 쓰게 되었는지 잘 아시지요. 지금도 아픈 몸을 이끌고 카메라 하나에 의지한 채 우리 사회의 난쟁이가 있는 곳이라면 현장을 지키고 있는 것처럼 그 때도 그는 난쟁이들과 함께 있었나봐요. 철거현장에서 곧 쫓겨나고야 말 어떤 가족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고 있었지요. 개도 밥 먹을 때는 안 건드린다고 하던가요. 그는 철거용역들에게 인간에 대한 예의를 기대했던 걸까요. 여하튼 그는 마지막 식사를 마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최악의 공포’를 경험한 그는 ‘난쏘공’을 쓰기 시작했고, ‘난쏘공’이 출간된 지 30년이 넘는 요즈음 다시 비참함으로, 분노로 난쟁이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 사회는 무엇이 변한 걸까요. 저는 이번 참극을 지켜보며 제가 ‘난쏘공’이야기가  30년 전, 그리고 소설 속의 일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수백 곳의 철거 현장에서 삶의 바탕을 송두리째 흔들린 채 갈 곳을 잃고 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망각한 채 말이지요. 희생자 유족들이 “일이 터지고 나니까 비로소 저희들한테 기자들도 오고 국회의원들도 찾아오더군요. 왜 진작 우리를 돌아봐주지 않았는지 너무나 원망스러웠습니다…”라고 말할 때, 어찌나 부끄럽던지요. 많은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토로하였지요. 어떤 이는 스스로를 죄인이라고까지 하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김 선생.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이 태연하기도 하더군요.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말입니다. 그는 대참극이 발생한 다음날 행안위 전체회의에 분홍빛 넥타이를 매고 나왔더군요. 용산 참극은 그의 인생에서만은 빛나는 순간이었던 걸까요. 그의 빛깔 고운 넥타이를 보며, 김중배 선생이 삶 전체로 웅변하고자 했던 ‘부끄러움’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김중배 선생은 ‘부끄러움은 인간의 윤리의식과 창조적 양심의 반영’이라고 했지요. 그가 어느 글에서 맹자의 <이루편>을 소개했는데, 한번 들어보세요. 제나라 시대에 아내와 소실을 한 집안에 데리고 사는 사내가 있었답니다. 그는 날마다 고기와 술을 배불리 먹고 집에 돌아왔다지요. 어느 날 아내가 어디서 그리 배불리 먹고 돌아오냐 묻자, 남편은 날마다 고관대작들의 대접을 받는다고 했답니다. 수상하게 여긴 아내가 남편의 뒤를 밟았는데, 남편이 집을 나서 찾아간 곳은 고관대작의 집이 아니라 묘지였답니다. 무덤 곳곳에 바쳐진 제물들을 먹어치우며 배를 채웠던 것이지요. 그 광경을 본 아내와 소실은 통곡해 마지않았는데, 정작 남편은 의기양양했답니다. 맹자는 이 얘기 끝에 “무릇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부귀영화를 구하는 방법이라는 것도 궁극은 이 제나라 사내와 무엇이 크게 다를 바가 있는가. 만약 이 사정을 세상의 아내와 소실들이 안다면 부끄러워 통곡하지 않는 자가 얼마나 될 것인가”라고 논평을 덧붙였답니다.


짧은 얘기지만, 오늘의 현실에 과녁을 맞춘 듯하지 않습니까. 김중배 선생이 ‘부끄러움’, 특히 ‘염치의 회복’을 강조한 것이 어제 오늘은 아니지만, 특히 요즘과 같은 시대에 마음에 더욱 꽂힙니다. 뒤늦게나마 이제 저도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의 깃발’을 같이 들자고 권해볼 작정입니다. 제일 먼저 저의 동지가 되어줄 분은 김 선생입니다. 그렇게 부끄러움을 회복하고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일깨워주는 틀을 만들다보면, 적어도 조세희 선생이 이런 세상이 다시 없기를 소망하며 써내려갔던 ‘난쏘공’의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제 바람이 너무 허황된 건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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