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사회 2010년 01월 2010-01-01   1210

최성각의 독서잡설_”이렇게 고마운 행성이 또 어디에 있을까”



“이렇게 고마운 행성이 또 어디에 있을까”



최성각 작가, 풀꽃평화연구소장

지난 연말, 개인적으로 참으로 오래 기다리던 책이 나왔다. 어쩌다 한 글쟁이가 되어 몇 권의 보잘것없는 책을 펴냈지만 ‘내 책’을 기다릴 때보다 이 책을 더 기다렸다. 프리먼 하우스라는 야생의 사내가 쓴 연어 이야기가 그 책이다. 필자가 처음 이 책을 만난 것은 ‘풀꽃세상’ 일을 할 때였다. 어느 날, 오십 후반의 한 출판인이 책을 출간하려고 한다며 한 권의 책을 내밀었다. 당시 풀꽃세상에서는 출판은 엄두를 못 내고, 다만 환경책을 기획해 좋은 출판사에 소개하고 있었던 터였다.

“토템 연어『Totem Salmon』라? 재미있겠습니다”. 낯설지만 신선했다

연어책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원서의 앞면에 『야생의 삶』으로 인해 나도 익히 알고 있었고, 내한했을 때 강연회에도 가본 적이 있는 게리 스나이더의 이름이 보였다. 게리 스나이더는 이 책을 “심각하면서도 감각적이고 즐거운 책. 개인적이면서 또한 우주적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다. 게리 스나이더같은 시인이 그런 평을 했다니 더욱 욕심이 났다. 마침 풀꽃세상을 창립했던 정상명 선생님의 따님, 천샘 씨가 미시건대학에 유학 중이었는데 그즈음 휴학을 하고 단체의 활동가로 일하던 중이었던지라 번역은 ‘샘이’에게 맡겼다. 그리고 수년의 세월이 흘렀다. 번역은 한국에서 시작해 샘이가 다시 학업을 마치기 위해 미국에 갔을 때까지 이어졌다. 샘이는 참으로 역부족의 작업이라고 심각한 얼굴로 자주 불평하곤 했다. 20대이가 감당하기에는 북태평양 연어 이야기가 너무나 생경한 세계인데다 드문 행동주의자로서의 필자가 연어의 세계에 몰입한 이후에 얻게 된 정신세계가 너무나 심오하고 풍성했기 때문이었다. 문체는 진저리날 정도로 섬세했고, 멸종에 이른 연어를 살리기 위해 20여 년 세월을 투신한 저자의 구체적 실천의 세부는 지나칠 정도로 꼼꼼했다. “아저씨가 영어를 못한다는 게 이렇게 다행일 수도 있구나, 하지만 너는 영어를 하니 어쩌겠냐? 힘을 내라, 샘아”, 그렇게 나는 끝없이 역자인 샘이를 격려했다.

세 차례 가량 번역작업을 하는 사이에 9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처음 이 책을 발견해 출간하려 했던 출판인은 여러 사정으로 인해 책을 포기하게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지난 연말에 출간된 돌베개판 연어 이야기는 새로이 계약을 해서 출간된 것이다. 책이 출간되자 처음 이 책을 국내에 소개하려고 했던 출판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자신이 펴내지는 못했지만, 그 역시 연어책의 출간을 반갑게 생각하리라 믿는다.


경이로운 자연, 연어

저자 프리먼 하우스가 연어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그것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리먼 하우스는 연어를 정신적 존재라고 여기고 있다. 그뿐인가. 사람이 지니지 못한 ‘신비로운 지성’을 지닌 물고기로 생각한다. 그의 연어 예찬을 직접 들어보자.

“연어의 상류 이동은 연어과 물고기들의 생활환(生活環 : 생물의 개체가 발생을 시작하고 죽을 때까지의 일생을 고리모양으로 그려놓은 것)이 보여주는 경이로움 중 하나이다. 폭포나 다른 장애물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힘과 기품이 필요하고, 홍수로 불어난 물살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요하며, 거대한 통나무들이 가로막고 있는 미로를 헤치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지구력이 필요하다. 연어의 이러한 속성은 너무나 놀랍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자신이 태어난 시내와 나머지 수중 세계의 냄새를 구분할 줄 아는 신비로운 지성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19~20쪽).

저자가 연어에 대해 깊은 애정과 외경의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시각은 사람에게는 결여된 능력을 연어가 지니고 있다는 단순한 이유 외에도 연어의 생이 실현하는 또다른 모성적 헌납, 즉 자연의 오묘함 속의 일원으로서 받아야 할 마땅한 찬사와 관련이 있다.

연어의 일생은 널리 알려져 있듯이 강에서 부화해 대양을 찾아간다. 그리고 대양이 공급하는 풍부한 영양 속에서 삶을 즐기다가 때에 이르면 산란을 위해 태어난 강으로 회귀한다. 대체로 거기까지가 연어에 대한 보통사람의 상식이다. 그 다음에 사람들은 연어의 맛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 십상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연어와 함께 산 저자는 연어가 ‘가는 길’에 대해 매우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교미를 끝낸 암컷과 수컷은 지친 몸을 눕히려 떠내려가서는, 이제는 그 무엇도 피할 일이 남아 있지 않아 통나무나 바위에 걸린 채로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있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이 모든 노력은 육체의 고갈과 상처만을 남기고, 암컷은 자갈을 옮기는 작업으로 소진하여 몸이 너덜너덜해져 있다.… 독수리, 곰, 너구리와 수달 등은 이 기간 내내 하천을 맴돌며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이제 이들은 연어를 잡아 황홀한 향연을 벌인다. 바다 깊은 곳에서부터 풍부한 영양분을 품고 온 엄청난 양의 연어 하천에서 숲으로의 순환을 통해 건강한 숲의 생산력을 높이는 데 이바지한다. 물속에서 부패된 연어의 시체는 훗날 후손들의 먹이가 될 미생물들에게 영양을 공급한다.”(46-47쪽)

연어가 바다와 숲을 연결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프리먼 하우스는 처음부터 연어예찬론자는 아니었다. 예찬론자이기는커녕 그는 남동 알래스카의 한 통조림공장에서 일하던 연어잡이꾼이었다. 어느 날 그는 근처의 한 산맥에 올라간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어느 작은 호숫가에 작은 보트가 한 척 있길래 배를 저어 호수의 중심부로 나아갔다. 가는 동안 보트가 새서 물이 들어왔다. 가라앉지 않으려고 열심히 바닥에 있던 커피 캔으로 물을 퍼냈다. 어느 정도 물을 퍼낸 다음 그는 주변의 눈덮힌 고봉의 경치를 즐겼다. 그리고 무심코 강물을 내려다보는 순간, 그는 강물 밑바닥 전체가 ‘진홍색과 오렌지색의 중간 정도 되는 붉은색’ 천지인 것을 알게 된다. 그 거대한 붉은색은 ‘겁에 질린 듯 굽이치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는 그 놀라운 비현실적인 풍경에 경악한다. 그것은 산란색으로 변한 거대한 홍연어떼의 몸부림이었다. 연어는 방금 합방을 마친 직후였다. 그는 우연찮게 그 장엄한 예식의 증인이 된 것이다. 그는 자연의 이 놀라운 공급체계를 하나의 기적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신음소리처럼 감탄한다. “이렇게 고마운 행성이 또 어디에 있을까?”(48쪽)라고.

그 광경을 목도한 후로 그는 단지 자연을 자원으로만 대하는 난폭한 소비문명에 대해 다른 시각을 지니게 된다. 그는 자연이 보여준 충만함과 자신이 속한 세계의 ‘가슴이 내려앉는 슬픔’이 공존하는 기간 동안 남몰래 자연사自然史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 어느 날, 어선에서 연어를 남획하면서 그는 연어를 단지 ‘돈’으로만 여기는 그 자신을 포함한 동료 어부들, 강철을 장화 앞부리에 댄 한 젊은이가 갑판의 퍼덕이는 연어를 정조준해서 즉살시키는 광경을 목도하자, 아무도 몰래 저장고 한구석으로 들어가 혼자 웅크리고 앉는다. 먹는 자와 먹히는 자의 관계에 대한 존경과 연민이 박탈된 비윤리적인 착취산업, 바다 속 모든 물고기를 싹쓸이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세계가 뭔가 중요한 것을 위반하고 있다는 감각에 휩싸인다. 그리고, 죽어가는 고기들과 사람 사이의 연결고리가 단지 돈이라면, 그것은 고기의 존재뿐 아니라 인간존재의 전체성마저 부정하는 것이라는 자각에 이르게 된다.

그는 무릎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10-12파운드의 홍연어 한 마리의 배를 열고 세 손가락으로 연어의 심장을 찢어 입안에 넣는다. 연어의 “심장을 삼키자 내 안에서 표류하던 두려움은 드디어 이름을 얻고, 허리케인의 강도로 내 안에서 휘몰아쳤다”(148쪽)고 그는 적고 있다. 그 순간은 프리먼 하우스라는 사내가 고용된 연어사냥꾼에서 연어살리기 운동의 주인공이 되는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배에서 내린 그는 생애 전체에서 가장 많이 번 돈 4천 달러를 주머니에 넣고, 산업적 세계로부터 영구히 벗어나 야생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는 산업문명에 오염되고 사냥꾼 시절 동안 몸에 밴 자신의 본능과 감각을 다시 이 세계의 생명체들을 끈기 있고 꼼꼼하게 관찰하려는 헌신과 체계적인 시도, 특히 급하게 멸종에 이른 태평양 연어에 집중한다.


“우리에겐 사태를 바로잡는 시간만이 있을 뿐”

‘생태계 평형’과 같이 어려워 보이는 말에 대한 이해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는 매 순간 지구상의 동물들이 멸종되어 가고 있는 뉴스를 접하고 있다. 육상은 물론이고, 해양 동물 또한 마찬가지다. 하도 자주 접하는 뉴스인지라 그 충격적인 뉴스에도 이젠 덤덤해질 지경이다. 빌 맥키벤이라는 전직 <뉴요커> 기자가 어느 하루 책을 쓰기 위해 24시간 동안 세계 최대의 케이블 TV 시스템에서 나오는 모든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그것은 2400시간의 비디오테이프를 보는 행위로서 우리 시대의 스냅사진을 본 것과 마찬가지 작업이었다. 그 모든 프로그램에서 나온 말들을 압축해보니, “당신은 이 세상의 중심이며, 모든 피조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다”라는 것이었다(빌 맥키벤, <자연의 종말>, 진우기옮김, 양문, 2005년, 21쪽).

빌 맥키벤은 그 압축결과를 접한 뒤, 우리 인간이 너무나 커져버린 것을 우려하면서 인간을 덜 중요하게 만드는 일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역설했다.

연어 또한 한때는 북태평양에 연한 모든 강의 지류에 넘쳤다. 최고령의 한 노인네는 “그들(연어)의 등을 밟고 강을 건널 수 있을 만큼 빽빽했던”(160쪽) 시절을 회고한다. 산란 연어들이 지류를 가득 메운 어느 날, 강을 건너려던 말이 놀라 도망을 쳤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30년 전(1999년 출간일로부터 보면 40년 전)만 해도 “가을에 강어귀가 열리면 연어 무리가 폭풍우처럼 몰아치곤 했다”(160쪽)고 한다. 이 책이 출간되기도 전에 샘이의 초벌 번역물을 보고 내가 펴냈던 산문집 『달려라 냇물아』에 인용했던 감동적인 장면, 즉 하류의 토착 원주민들이 상류의 원주민들을 위해 연어를 일부만 잡았던, 품위 있고 풍요로웠던 계절이 있었다. 강어귀에 서 있기만 하면 마차 가득 연어를 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듯 열정적인 식량 비축작업에 참여할 수 없을 만큼 늙었거나 체력이 약한 이웃집을 지나치면 큰 고기 한두 마리를 그 집 현관에 던져주는 것이 관례”(160쪽)였던 것이다.

그러나 프리먼 하우스가 연어사냥꾼이기를 중지하고 강물 속에 몸을 던지던 즈음에는 이미 대규모의 멸종이 시작되던 때였다. 캘리포니아 북부 메톨강 연안에서 그는 20여 년 동안 연어의 회귀를 위해 동료들과 헌신한다. 그가 동료들과 만든 ‘매톨 유역 연어보호 그룹Mattole Salmon Support Group’과 ‘매톨 복구 협의회Mattole Restoration Council’ 등이 그런 활동을 전개하던 단체들이었다. 때로는 턱없이 부족한 돈 때문에 지역의 벼슬아치들을 찾아가 연어를 살리기 위해 왜 숲을 먼저 살려야 하는지 역설하기도 하고, 때로는 단체 운영비를 조금이라도 보태기 위해 도시에서 택시 운전기사도 한다.

그는 연어에 집중하면서 먼저 숲을 살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연어(자연)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연어의 행복과 인간의 행복은 공통점이 많다는 것을 그는 알아버렸다. 마냥 연어를 기다릴 수만 없다고 판단한 그는 조심스럽게 인공부화 장치를 개발해서 개체수를 늘리는 실험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와 그의 동료들의 지난하고, 끈질긴 노력 끝에 회귀하는 연어들은 서서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결과에 일시적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시간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천년의 시간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뿐더러 다만 사태를 바로잡는 데 걸리는 시간만이 있을 뿐이다” (89쪽)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이 걸어갈 마땅한 길에 대한 서사시”

그러나 사태를 바로잡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일까? 그가 말한다. “잘못된 것은 너무나 거대한 규모로 치밀하게 조직되어 있기 때문에 운동가들은 인간이 쓸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저항해야 할 것”(260쪽)이라고.

모든 에너지? 그렇다. 그래서 이 책은 그냥 남의 나라 연어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집권 3년차를 맞이한 우리 정부는 이상하게도 ‘4대강 살리기’에 목을 매고 있다. 새만금 갯벌을 메우려는 세력들에 대항해 우리는 ‘새만금 살리기’라는 표현을 사용했었다. 4대강을 죽이려는 권력이 이제 ‘살리기’라는 언어를 빠르게 선점했다. 이는 실로 심각한 역전이고, 말의 치명적인 전도현상이다.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우리는 ‘바른 말’을 선점 당했다. 말의 바른 뜻을 서둘러 회복해야 한다. 그것이 빠르게 진행되는 이 나라 산천의 대규모 파괴 작업을 막는 첫 번째 일일지도 모른다.

이 책의 뒷표지에 사용할 추천사 부탁을 받고 나는 “삶의 토대인 자연과 관련된 원초적인 공동체 경험과 토템을 잃어버린 우리 시대는 더 이상 자연에 공손하지도 않고, 인간으로서 끝없이 깊어져야 하고 성장해야 하는 신성한 의무마저도 송두리째 잃었다.

그러나 섬세하기가 연어 지느러미 같고, 고집스럽기가 연어의 회귀본능을 닮은 한 사내는 연어를 땅의 혈맥으로 느끼는 장엄한 상상력을 통해 우리가 힘써 회복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감동적으로 묻고 있다. 사내가 보여주는 자연에 대한 인식은 정교하면서도 깊고, 그 표현은 예민함과 진저리칠 정도의 충실로 일관해 책을 읽는 내내 우리 살갗에 연어의 지느러미가 스치는 듯한 황홀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한다. 이 책은 연어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산과 대양에 대한 이야기이고, 무엇보다도 인간이 걸어왔고, 걸어갈 마땅한 길에 대한 서사시다. 이토록 아름답고 섬세하면서 울림이 큰 매력적인 기록은 단언컨대 참으로 흔치 않다”고 썼다.

책이 발간된 후, 책과의 인연 때문에 너무 넘치는 글을 쓴 게 아닐까, 하는 두려운 마음으로 다시 읽어보았다. 과장한 것이 아니었다.

새해, 「참여사회」애독자들에게 감히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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